정묘년(1447) 4월 20일 밤, 내가 막 잠이 들려고 할 즈음에 정신이 갑자기 아련해지면서 잠이 깊어지고 이내 꿈을 꾸게 되었다. 홀연히 인수(仁叟, 박팽년)
와 함께 어느 산 아래에 이르렀는데, 산봉우리는 겹겹이 있고 골짜기가 깊어 산세가 험준하고 그윽하였다. 수복숭아 꽃이 핀 나무 수십 그루가 있고, 그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는데 숲 가장자리에 이르러 갈림길이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던 터에 마침 소박한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도원(桃源)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인수와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갔는데, 절벽은 깎아지른 듯 우뚝하고, 수풀은 빽빽하고 울창하였으며, 계곡물은 굽이쳐 흐르고 길은 구불구불하여, 거의 백 번이나 꺾이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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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 들어서니 명산(名山) 승경(勝景)이 탁 트여 2, 3리 정도 되어 보였다. 사방에 산 절벽이 우뚝 서서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서려 있고, 멀고 가까운 곳 복숭아나무 숲에는 햇빛이 비쳐 연기 같은 짙은 노을이 일고 있었다. 또한 대나무 숲 속에는 띠풀로 엮은 집이 있는데, 사립문이 반쯤 열려 있고, 흙으로 만든 섬돌은 이미 다 부스러졌으며, 닭이나 개·소·말 등은 없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내에는 오직 조각배 한 척이 물결 따라 흔들리고 있을 뿐이어서 그 정경이 고요하여 마치 신선이 사는 곳인 듯싶었다. 이에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오래도록 바라보다 인수에게 말하기를 “암벽에 기둥을 엮고 골짜기를 뚫어 집을 짓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니겠는가? 정녕 이곳이 도원의 동네로다”라 하였다. 곁에 몇 사람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정보(貞父, 최항)·범옹(泛翁, 신숙주)
등이 운을 맞춰 함께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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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함께 신발을 가다듬고 걸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돌아보며 즐기다 홀연히 꿈에서 깨어났다. 아! 대도시와 큰 고을은 실로 번화하여 이름난 벼슬아치들이 노니는 곳이요, 절벽이 깎아지른 깊숙한 골짜기는 조용히 숨어 사는 은자(隱者)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런 까닭에 화려한 옷을 걸친 자는 발걸음이 산림(山林)에 이르지 못하고,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닦는 자는 또 꿈에도 높고 큰 집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모두 고요함과 시끄러움에서 길이 다른 것이 필연의 이치이기도 한 것이다. 옛사람이 “낮에 행한 바를 밤에 꿈을 꾼다”고 하였다.
나는 궁궐에 몸을 의탁하여 밤낮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터에 어찌하여 꿈에서는 산림에 이르게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도원에까지 이를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거늘, 도원에 노닒에 있어서 나를 따른 사람이 하필 이 몇 사람이었는가? 생각건대 성정이 그윽하고 궁벽한 곳을 좋아하며 본래부터 산수·자연을 즐기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아울러 이들 몇 사람과 교분이 특별히 두터웠던 까닭에 함께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가도(可度, 안견)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일컬어지는 도원이라는 것이 진정 이와 같았을까? 뒷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옛 그림을 구하여 나의 꿈과 비교하게 되면 무슨 말이 있을 것이다. 꿈을 꾼 지 사흘째에 그림이 다 완성되어 비해당의 매죽헌에서 이 글을 쓰노라.
「몽유도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