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유(鄭東愈, 1744~1808) 어른께서는 격물(格物)에 뛰어나셨는데,일찍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네는 언문의 묘함을 아는가? 대저 자음(字音)으로써 자음(字音)을 전하는 것은 이것이 변하면 저것이 따라 변해서 옛날과 오늘날의 운을 맞추는 것이 자주 어긋나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이것을 언문으로 표기하면 영원히 전할 수 있으니, 어찌 참됨[眞]을 잃을 염려가 있겠는가. 더구나 문장은 반드시 간결하고 심오한 것을 숭상해야 하지만 간결하고 심오한 뜻을 소통하면 잘못 해석하는 것을 금할 길 없다. 이것을 만일 언문으로 써서 왕복한다면 만에 하나도 의심할 것이 없다. 자네는 언문이 부녀자의 학문이라 하여 경홀히 하지 말라” 하였다. 또 탄식하기를, “양성 모음과 음성 모음이 나뉜 것은
【ㅏ, ㅓ와 ㅑ, ㅕ를 가리킨다】
『광운(廣韻)』1)
이 나오기 이전이었고
【서역(西域)에서 자모가 처음 왔을 때를 가리킨다】
청음과 탁음이 혼돈된 것은
【겹자음과 초성이 폐지된 것을 가리킨다】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2)
이 나온 뒤였으니
【박성원(朴性源, 1697~1757)의 때를 가리킨다】
, 내가 어찌 『화동정음통석운고』이 나온 뒤의 사람과 함께 『광운』이 나오기 이전의 글자를 논하겠는가” 하셨다. 나는 마침내 함께 뜻을 풀이하기를 몇 달 동안 한 다음 돌아와서 한 책을 편찬하고는 『언문지(諺文志)』라 하였는데, 먼저 초성, 중성, 종성에 대하여 전서(前書)의 연혁을 열거하였고 논단을 붙였으며, 끝에는 온전한 글자를 나열하여 1만 250자를 가지고 종횡으로 행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한번 보고도 다 알 수 있게끔 하여 후배들에게 보여 주었으나 이해해 주는 자들이 적었다. 마침내 책상 속에 넣어둔 지 15~16년 만에 분실하고는 홀로 서글퍼하였다. 그 후 5~6년이 지난 오늘에 『사성통해(四聲通解)』3)
를 빌려 다시 옛날 기억한 것을 생각해 내고 간간이 새로운 견해로 바꾸어 다시 한 책을 완성하였다. 글자 도표를 만드는 데 이르러서는 너무 지리하여 삭제하였다. 갑신년(1824) 중하 상순에 비 내리는 서파(西陂)에서 쓰다.
1)
북송대 진팽년(陳彭年)·구옹(邱雍) 등이 칙명(勅命)에 의하여 1008년 저술한 운서(韻書)
2)
조선 후기 학자 박성원(朴性源)이 1747년(영조 23) 저술한 운서
3)
1517년(중종 12) 최세진(崔世珍)이 편찬한 책으로, 한자(漢字)를 운(韻)으로여 분류한 자서(字書)이다.
『문통』권19, 언문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