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1월 27일 임금이 대신과 의정부당상을 불러 입시하였을 때에 우의정 정범조(鄭範朝)가 아뢰기를
…(중략)…
또 아뢰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백성을 보호하는 방도는 수령이 책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근래 수령들의 태도는 예전과는 매우 달라서 관아를 오다가다 들르는 여관쯤으로 여기고, 장부나 문서는 아전이나 서리들에게 맡겨두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을 으레 있는 일로 여기며, 관아에 있은 지 몇 달 며칠인지만을 헤아리며 봉록 받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달리 하는 일이 없습니다. 다만 이럴 뿐이니 백성들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심한 경우 강제로 백성들에게서 돈을 토색질하고 민호(民戶)와 결수(結數)를 더하여 세금을 거두고, 장시(場市)나 포구(浦口)에서는 새로 세금을 만들어 거두니 마침내 백성들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찌 고을마다 다 그렇겠습니까마는 곳곳에서 이와 같다고 소문이 전해지는데, 이는 한갓 수령만 허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전조(銓曹: 이조와 병조)에서 주의(注擬: 관원을 뽑기 위해 후보자를 선정하는 일)를 할 때 일찍이 얼마나 공명정대하게 하고, 관찰사가 전최(殿最: 관찰사가 각 고을 수령의 실적을 조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는 일)할 때 얼마나 엄격하고 명백하게 하였겠습니까. 주의가 공정하지 못하였으므로 요행의 문에 뇌물을 주고받게 되는 구멍이 열리고, 전최가 엄정하지 못하니 탐관오리가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습성이 조장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과 고을에 관계되는 일을 마치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 혹은 관직을 제수 받고도 몇 달 만에 고을에 당도하고, 혹은 고을에 당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즉시 말미를 받습니다. 이러니 아전들은 그 수령의 얼굴도 모르고, 백성들은 그 수령의 이름조차도 들어보지 못한 경우가 생깁니다. 이러고서야 서로의 사정을 어찌 알리며 법을 어떻게 시행하겠습니까. 이와 같은데 민생이 곤궁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우리 전하께서는 일념으로 백성들을 걱정하시어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마음을 쓰시므로 때로는 얼굴빛에 드러나기도 하고, 신하나 백성에게 내리는 말씀에 그 마음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신들 또한 삼가 직접 보았습니다. 성심(聖心: 임금의 마음)이 이렇게도 간절하건만 백성들의 고충을 없애고 소생시키기는 저다지도 어렵단 말입니까. 이는 모두 수령이 적임자가 아니어서 그런 행위를 근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조와 병조로 하여금 자리가 비면 즉시 차출하고, 이미 차출하였으면 부임하기를 재촉하고, 이미 부임하였으면 오래 그 일을 맡기게 하되 차출하고 의망할 때에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관찰사가 쉽게 말미를 내주지 않게 하여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일을 없게 하며, 근무에 관한 평가를 엄하게 하여 청렴한 관리와 탐오한 관리를 구별함으로써 잘 다스린 자가 권면될 수 있게 하고 불법을 저지른 자가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여러 고을의 많은 목민관이 각기 책무를 다하여 백성들은 절로 제 삶을 기뻐하며 제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게 되어 다시 태평하고 융성하는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인이 백성을 보살피는 정사를 펴는 것을 어찌 급하고도 간절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아뢰는 바대로 이조와 병조 및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단단히 경계하도록 이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다스림의 요체는 백성을 보살피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백성을 보살피는 방도는 진실로 사람을 택하는 데에 있으니, 상주문에서 아뢴 대로 별도로 더욱 신칙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근래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고 초췌하여 도탄에 이른 것은 또한 까닭이 있으니, 결역(結役: 결세에 포함된 아전의 급료)과 집집마다 거두는 세금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을 잡비(雜費)라고 하며 전에 없던 규례를 새로 만들고, 한번 보태고 늘인 후에는 마치 정해진 제도처럼 만들며, 각 항목의 쌀과 나무를 시가(時價)대로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지나치게 거두므로 쌀독은 모두 텅 비고 맙니다. 그러니 하소연할 데 없는 불쌍한 저 백성들이 어떻게 목숨을 보전하여 살아가겠습니까. 만약 고을을 다스리면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백성을 아꼈다면 분명 이렇게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가(結價)를 보고하여 마감하는 것을 형식적인 일로 여기고 호구별로 분배하여 조처하는 것을 일상적인 규례처럼 여깁니다. 이른바 백성이 원하는 데에 따른다고 하는 것은 간사한 향리가 힘 있는 자에게 아첨하려는 계책에 불과하며, 이른바 고을의 폐단을 바로잡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교활한 아전들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근래 백성들의 근심이 어느 곳이든 모두 이것에 말미암는데,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가 더욱 심합니다. 근년에 들어서는 결역(結役)과 호역(戶役: 집집마다 부과되는 부역)에다 새로운 명목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즉시 적발하게 해서 일일이 조사하여 감해 주소서. 감영에 보고하여 정하는 미가(米價)와 목가(木價: 무명의 가격)는 반드시 시가(時價)를 따라서 혹시라도 지나치게 책정하는 일이 없게 하여 백성들의 힘을 펴주어 생업에 안주하게 하라는 내용으로 먼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관찰사에게 엄하게 신칙하소서. 이렇게 신칙한 후에도 만일 혹 한결같이 지나치게 거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수령은 해당 형률로 다스리고, 검사하고 규찰하지 못한 관찰사도 엄하게 경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법을 제정한 의미를 무시한 채 마음대로 지나치게 거두니,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엄한 내용의 관문(關文)으로 신칙하여 속히 일일이 조사하여 감하도록 하라.”
하였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다스림의 요체는 백성을 보살피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백성을 보살피는 방도는 진실로 사람을 택하는 데에 있으니, 상주문에서 아뢴 대로 별도로 더욱 신칙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아뢰기를
“근래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고 초췌하여 도탄에 이른 것은 또한 까닭이 있으니, 결역(結役: 결세에 포함된 아전의 급료)과 집집마다 거두는 세금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을 잡비(雜費)라고 하며 전에 없던 규례를 새로 만들고, 한번 보태고 늘인 후에는 마치 정해진 제도처럼 만들며, 각 항목의 쌀과 나무를 시가(時價)대로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지나치게 거두므로 쌀독은 모두 텅 비고 맙니다. 그러니 하소연할 데 없는 불쌍한 저 백성들이 어떻게 목숨을 보전하여 살아가겠습니까. 만약 고을을 다스리면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백성을 아꼈다면 분명 이렇게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가(結價)를 보고하여 마감하는 것을 형식적인 일로 여기고 호구별로 분배하여 조처하는 것을 일상적인 규례처럼 여깁니다. 이른바 백성이 원하는 데에 따른다고 하는 것은 간사한 향리가 힘 있는 자에게 아첨하려는 계책에 불과하며, 이른바 고을의 폐단을 바로잡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교활한 아전들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근래 백성들의 근심이 어느 곳이든 모두 이것에 말미암는데,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가 더욱 심합니다. 근년에 들어서는 결역(結役)과 호역(戶役: 집집마다 부과되는 부역)에다 새로운 명목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즉시 적발하게 해서 일일이 조사하여 감해 주소서. 감영에 보고하여 정하는 미가(米價)와 목가(木價: 무명의 가격)는 반드시 시가(時價)를 따라서 혹시라도 지나치게 책정하는 일이 없게 하여 백성들의 힘을 펴주어 생업에 안주하게 하라는 내용으로 먼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관찰사에게 엄하게 신칙하소서. 이렇게 신칙한 후에도 만일 혹 한결같이 지나치게 거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수령은 해당 형률로 다스리고, 검사하고 규찰하지 못한 관찰사도 엄하게 경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법을 제정한 의미를 무시한 채 마음대로 지나치게 거두니,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엄한 내용의 관문(關文)으로 신칙하여 속히 일일이 조사하여 감하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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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등록』 273책, 고종 29년 1월 27일(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