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임대신(時任大臣)과 원임대신(原任大臣) 이하를 인견(引見)하였다. 【의정(議政) 심순택(沈舜澤), 특진관(特進官) 조병세(趙秉世),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 민영규(閔泳奎), 장예원 경(掌禮院卿) 김영수(金永壽)이다.】
상이 이르기를,
“경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려는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의 모든 예(禮)가 다 새로워졌으니 원구단(圜丘壇)
에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원구단(圜丘壇)' 관련자료
하니, 심순택(沈舜澤)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의 옛날에 봉(封)해진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하였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모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
에 행할 고유제(告由祭)의 제문과 반조문(頒詔文)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원구단' 관련자료
하였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1일(양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