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5. 조선의 커리어우먼, 기생

[필자] 이민주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고 복식은 그 신분을 구분짓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런데도 기생의 복식이 조선 후기 새로운 유행 스타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복식의 특혜를 누렸기 때문이다.

『경국대전』에는 사족의 부녀자와 아동, 경기(京妓)의 경우에는 잡다한 장식에 금, 은, 주옥을 쓰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에도 사족의 부녀자로서 수놓은 의상을 입는 자는 가장을 아울러 논죄하며, 사대부의 첩과 서자, 의원, 역관, 잡직 등에 있는 사람의 처로서 교자를 쓰는 자, 초피 여모를 쓰는 자, 상한(常漢)의 계집으로서 사라능단을 착용하는 자도 이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녀와 기생은 금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기생은 장신구와 비단, 고급 직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 제한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기생에게도 신분의 차이가 있어 내의원(內醫院)에 소속되어 기업을 겸행하는 약방 기생과 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어 기업을 겸행하는 상방 기생이 최고였다. 그 중에서도 상방(尙方)은 왕과 왕비의 의복을 지어 바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게다가 수를 놓고 누비고 하는 데는 솜씨가 좋아야 하니 뽑히기도 어렵지만 일하기도 어려워서 상방 기생들의 손가락에는 바늘 에 찔린 자국이 1년 열두 달 아물 때가 없었다.321)

<기생도>   
유운홍(劉運弘, 1797∼1859)이 그린 풍속화이다. 기녀들이 툇마루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담배를 피우고 아기를 업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았다. 저고리 길이가 극도로 짧아져 허리말기와 겨드랑이 사이로 젖가슴이 보이고 있다.

또한, 기생은 사대부와 교제가 가능하였으며, 미모와 재주가 뛰어난 엔터테이너로 남성 사회의 관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한평생 남자들의 노리개와 같아 가치가 없어지면 냉혹하게 버려지는 비운을 감수해야만 하는 묘한 신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기생은 그들의 직업상 다른 사람들에 비해 패션에 더 관심이 많고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좀 더 먼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는 새로운 복식 구조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들의 직업적인 특징뿐 아니라 심리적인 면까지 반영하여 예술성 높은 복식을 표현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다음에서는 기생들의 복식 구조 중 어떠한 요소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져 당시의 유행으로 확산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 이민주
321)가와무라 미나토, 윤재순 옮김, 『말하는 꽃 기생』, 소담출판사, 2002, 50∼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