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삼사의 기능
고려의 삼사의 기능에 대하여≪高麗史≫백관지에는 모든 중외 전곡의 출납 회계의 사무를 관장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삼사가 전국 재정의 수입과 지출을 관장하여 고려의 일원적인 재무기관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고려의 삼사는 천하의 財計를 관장한 송 삼사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실제로 고려의 삼사가 관장한 기능은 송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고려의 삼사가 실행한 직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租稅와 貢賦에 관한 사무였다.≪高麗史≫식화지 조세조에는 삼사가 조세의 수납과 감면 등에 관한 사무,0092) 또 歲貢을 관장하였음을 보여준다.0093) 즉 삼사는 전곡 수입의 주요 세원인 조세와 공부의 일을 맡았던 것이다.
또한 삼사는 전곡의 지출도 관장하였는데, 그 중요한 것은 녹봉과 賜穀이었다.≪高麗史節要≫예종 2년(1107) 4월조에는 실제로 삼사에서 녹봉을 급여한 사례가 보인다.0094) 給祿 자체는 左倉(뒤의 廣興倉)에서 담당하고 삼사는 祿牌만을 급여하는 사무를 보았을 따름이지만 녹봉의 주무관청은 어디까지나 삼사였던 것이다. 또한 삼사는 졸거한 중신에 대해 賜穀을 하고0095) 多産한 백성에게도 역시 사곡을 하였으며,0096) 또 기근 때 농민들에게 곡식을 주어 진휼하기도 하였다.0097)
이상 삼사가 실제로 집행한 기능을 보면 조세수취·조세감면·세공, 그리고 녹봉·사곡·賑恤·物價折米法 등을 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수입으로서는 조세·세공이 주가 되었고 지출로서는 녹봉·사곡이 중요하였다. 이렇게 보면 고려의 삼사는 백관지에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중외 전곡의 출납 회계를 관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려의 삼사는 명실공히 일원적인 최고재정기관의 기능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고려에서는 6부의 하나인 戶部와 그 밖의 재정관서(寺·署)가 정상적인 기능을 행사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삼사는 유명무실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의 삼사가 송과 같은 3부제도 아니며 그 관원 구성도 방대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백관지에는 호부가 戶口·貢賦·錢粮의 사무를 관장하였다고 하였는데, 실 제로 호부는 토지·호구·공부·전량·농상 등 전반적인 경제사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고려에서는 삼사보다는 호부가 실질적으로 재정사무의 주무 관청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종 4년(1050) 11월 判에 의하면 주현이 水旱蟲霜으로 화곡이 부실할 때 수령이 호부에 신고하면 호부는 삼사에 이를 송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호부가 삼사의 하부기구가 아닌가 생각케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삼사와 호부는 그 인원 구성도 병렬적으로 동등하였고 관원의 관품과 대우는 오히려 호부가 우세한 편이었다. 다만 삼사가 회계담당의 이속의 수만 많았던 것으로 보아 삼사는 회계를 담당한 이른바 計司로서의 역할만을 맡았던 것 같다.
이와 같이 고려에서는 호부가 재정사무의 주무 관청 노릇을 하고 있었고 삼사는 권력기구가 아닌 단순한 회계기관이었을 뿐이었다. 고려는 비록 송제의 삼사를 채용하였지만 3성·6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기형적인 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고려 삼사의 기능이 송의 그것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