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2. 실학의 발전1) 실학사상의 성립(1) 실학개념의 정립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실학사상의 특성

 조선 후기 실학사상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시작된 195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학사상의 개념은 다양하게 규정되어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실학을 經世學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를 ‘근대지향적 사상’이나, ‘탈성리학적 사상’으로 규정하려 했다.393) 또한 일부의 연구자들은 실학의 범위를 북학사상만으로 제한하여 부르기를 제안했다.394) 이처럼 실학사상의 특성 내지는 개념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됨으로 인해서 실학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들 가운데 먼저 ‘탈성리학적 사상’이라는 규정을 중심으로 실학사상의 특성을 살펴보겠다.395)

 탈성리학적 사상은 朱子註를 유일한 근거로 하여 유교경전을 해석해 왔던 조선성리학의 관행을 거부하고, 경전의 해석에 새 기준을 모색하는 사상경향을 총칭한다. 그리고 조선 후기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을 나타내는 사상을 실학으로 규정했다. 이 견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주자 내지 주자학에 대한 조선 후기 실학자의 태도를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학자들이 남긴 주자나 주자학에 관한 언급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유형원은 주자의 견해를 ‘氣强理弱’이라고 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주자를 크게 존신하고 있었다.396) 이익도 “程朱가 孟子 이전에 있었다면 반드시 성인으로 지목되었을 것이다”라고397) 말할 정도로 주자에 대한 존숭을 지속하고 있었다. 홍대용도 “주자학은 中正하여 편벽되지 않으니, 참으로 孔孟의 正脈이다”라고 말하여398) 주자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주었다.

 정약용도 “주자는 六經을 깊이 연구하여 진위를 판별하고 四書를 드러내어 심오한 뜻을 闡發했다”고 말하며 주자의 학적 권위를 전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399) 또한 그는≪春秋≫의 해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자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역대 선유의 논의를 살피건대 주자의 설만이 참으로 확실하고 평정하다.≪朱子語類≫에 실린 천만 가지 말마디 모두가 要諦에 들어맞으니 내가 무엇을 덧붙이겠는가(丁若鏞,≪與猶堂全書≫ 1-12권, 詩文集, 春秋考徵序).

 이러한 언급들을 통해서 볼 때 실학사상은 주자학을 굳이 배격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실학자들의 사상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여 출발했고, 그들의 사고에서 부분적으로는 성리학적 사고와 새로운 사고들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었다.400) 그들이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개혁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이론이라면 주자를 비롯해서 누구의 이론이라도 수용했기 때문이었다.401)

 그러나 실학자들은 주자를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는 아니했지만, 유학의 해석상 적용되어 오던 주자 유일기준을 거부하면서 주자설에 대한 맹종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주자설에 대한 맹종의 거부는 허목이나 이수광 단계에서부터 이미 드러난 일이었다. 이 점은 유형원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자학의 왕도정치론을 극복하고 원초유학으로 회귀해 가는 과정에서 주자학의 理氣人性論을 극복했다.402) 이익은 주자성리학의 연장에만 머물지 않고 이에 대한 반성과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403) 홍대용은 성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그 인간론의 전개에 있어서도 자신이 속한 洛論系의 성리학자들과는 다른 同論을 주장했다.404) 박지원의 철학에서 드러나는 특징도 주자 유일기준에 대한 반발했고 인식론에 있어서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제시했다.405)

 이 점은 정약용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정약용은 성리학의 氣質之性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여 기질을 선천적 제약으로 해석했던 성리학의 입장을 거부하고,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天은 인간의 마음에 자주권을 부여해 주었다고 했고, 이로써 인간은 그 자아의 주체적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새롭게 규정되었다.406) 이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실학자들은 朱子註를 기준으로 한 성리학의 유학 해석방법을 벗어나서 새로운 철학을 구성해 갔다.

 실학자들은 주자를 존숭하기는 했지만 朱子集註에 맹종하기를 거부하고 선택적 입장에서 주자의 가르침까지 객관화하여 이를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주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실학적 사유의 본령이었고, 이를 탈성리학적 현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탈성리학적 현상은 실학을 비롯한 조선 후기의 여러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탈성리학적 경향은 주자성리학에 대한 비판에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실학을 탈성리학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출현했던 이른바 탈성리학으로 일컬어지는 사상들은 상당히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다. 주자 유일기준에 입각한 성리학과는 계통을 달리하는 학문사상의 경향 중에는 유학의 범위에 드는 陽明學이나 訓詁學·詞章學 등이 있고 道家思想 등 유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가진 사상을 탈성리학이라는 한 가지 측면을 기준으로 하여 실학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난점이 따른다. 그렇게 할 경우에는 그 사상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실학이란 용어에도 개념적 다양성이나 모호성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탈성리학이라는 소극적 개념을 구사하여 한 시대의 정신을 대변하는 적극적이고 명확한 사상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그러므로 탈성리학적 사상 일반을 실학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탈성리학적 사상 가운데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특정 사상만을 분리해 내야 한다. 학술용어는 그 개념이 명확해야 하며, 적용범위가 분명히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학사상은 조선성리학의 학문풍토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던 사상 가운데 선진유학 내지 원초유학의 입장에서 제기된 王政論 혹은 王道政治論으로 제한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407)

 실학자들은 자신의 왕도정치론이 현실사회에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중세 사회 해체기에 처하여 국가재조론의 입장에서 왕도의 강화와 실천을 주장했다. 그들은 이 주장을 통해 당시의 현실사회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실학사상은 바로 이 측면에서 볼 때 제한적 의미에서나마 현실참여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실학사상을 실천성이 결여된 이념이었다거나 중세체제의 단순한 유지 강화론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요컨대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즉자적 사상의 형태로 실학사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실학사상은 유학의 해석에 있어서 주자설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기를 거부한 탈성리학적 사상으로서, 선진유학 내지는 원초유학에 입각하여 왕도정치론 혹은 왕정론에 기반을 두고 변법적 개혁을 추진하던 國家再造의 사상이었다. 그리고 실학자는 성리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원초유학의 이상형으로 제시되고 있는 왕도정치의 政論에 따라 古法과 古制를 조선 후기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사회에 구현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실학파는 실학자 상호간에 있어서 직접적인 유대나 연결관계와는 큰 상관없이 조선 후기의 지적 운동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경향성을 공유했던 학인들의 무리를 뜻한다.

 이 실학파에 속하는 학인으로는 유형원을 비롯하여 李瀷을 거쳐 홍대용이나 정약용 등 흔히 북학파 사상가로 불리는 일단의 인물들을 모두 포괄하게 된다. 19세기 중엽 헌종대에 활동했던 이규경이나 최한기의 경우에도 실학자의 범위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393)千寬宇,<韓國實學思想史>(≪韓國文化史大系≫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70), 967쪽.

尹絲淳,<탈성리학적 실학>(≪한국유학사상론≫, 예문서원, 1997), 367쪽.
394)池斗煥, 앞의 글, 146쪽.
395)實學의 개념과 관련하여 제시되어 왔던 ‘經世論’·‘近代志向’·‘北學’ 등에 관한 견해는 이 글 3)-(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에서 약술하겠다.
396)金泰永,<조선 후기 實學에서의 현실과 이성>(≪韓國思想史方法論≫, 도서출판 소화, 1997), 233쪽.
397)李 瀷,≪星湖僿說≫권 17, 程朱聖人.
398)洪大容,≪湛軒書≫외집 3, 杭傳尺牘 乾淨錄後語.
399)丁若鏞,≪與猶堂全書≫1-11, 詩文集, 五學論 一.
400)박학래,<홍대용의 실학적 인간관>(≪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사연구회 편, 예문서원, 1996), 270쪽.

김형찬,<박지원 철학사상의 실학적 기반>(위의 책), 315쪽.
401)金泰永, 앞의 글, 233쪽.
402)金駿錫,<柳馨遠의 變法觀과 實理論>(≪東方學志≫75, 延世大 國學硏究院, 1991), 94쪽.
403)송갑준,<이익의 경학관>(≪실학의 철학≫, 한국사상사연구회 편, 예문서원, 1993), 183쪽.
404)박학래, 앞의 글, 271쪽.
405)김형찬, 앞의 글, 313쪽.
406)琴章泰,<茶山의 天槪念과 天人關係論>(≪哲學≫25, 韓國哲學會, 1986), 57∼59쪽.
407)최근 실학의 범위를 脫性理學이라는 규정 대신에 先秦儒學의 王政論에서 구하는 견해가 있다(金泰永, 위의 글, 232쪽). 실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왕도정치론의 특성에 관해서는 이 글 2)-(1)의 ‘실학적 왕도정치론’에 서술되어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