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5권 조선 후기의 문화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2. 실학의 발전2) 실학사상의 전개(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2) 인물성논쟁의 쟁점과 전개
          • 3) 경학의 심화
          • 4) 의리론의 전개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천주교의 수용과 전파
          • 1) 천주학과 보유론적 천주신앙
          • 2) 천주신앙 실천과 초기교회의 발전
          • 3) 천주교박해와 지하교회로의 발전
          • 4) 역사적 변인으로서의 조선천주교
        • 4. 불교계의 동향
          • 1) 승단내의 수학경향
          • 5) 국가적 활동
        • 5. 민간신앙
          • 1) 도교·도참신앙
          • 2) 기타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1. 학술의 진흥
          • 3) 규장각의 학술활동
            • (1) 설치와 조직
            • (2) 학술활동
        • 2. 실학의 발전
          • 1) 실학사상의 성립
            • (1) 실학개념의 정립
            • (2) 실학사상의 형성 배경
          • 2) 실학사상의 전개
            • (2) 정치개혁론
            • (3) 대외인식과 역사관의 변화
            • (4) 경제·사회사상의 특성
          • 3) 실학의 연구과정과 성격
            • (1) 연구의 전개과정에 대한 검토
        • 3. 국학의 발달
          • 1) 국어학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3) 지리학
            • (1) 지리학 발달의 배경
            • (2) 공간관의 변화와 지도학의 발달
            • (3) 지역연구와 계통지리학의 발달
            • (4) 자연지리학의 발달과 환경에 대한 인식
          • 4) 역사학의 발달
          • 5) 백과전서학의 발달
        • 4. 과학과 기술
          • 1) 조선 후기의 전통 과학기술
          • 2) 실제 과학기술의 발달상태
          • 3) 근대 과학기술의 수용-실학과 과학기술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1) 시조
            • (2) 가사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2) 국문소설
        • 2. 미술
          • 1) 회화
            • (2) 새로운 화법의 수용과 전개
          • 2) 서예
          • 3) 조각
            • (1) 홍성기의 조각
          • 4) 공예
            • (1) 도자공예
            • (2) 목칠공예
          • 5) 건축
        • 3. 음악
          • 1) 궁중음악의 변천과 새 경향
          • 2) 민속악과 민간풍류의 새로운 전통
            • (1) 성악의 발전
            • (2) 기악의 발전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1) 궁중무
            • (3) 민속무
          • 2) 체육
            • (1) 편사
          • 3) 연극
            • (1) 산대나희
            • (4) 민속극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다. 사회개혁론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경제사상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던 왕도정치의 이념과 조선사회가 직면해 있던 현실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일련의 사회개혁론을 전개했다. 즉 왕도정치의 이념을 제시한≪孟子≫의<滕文公 上>편에서는 “百工의 일은 본래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여, 勞心者와 勞力者를 구별해서 사회적 분업개념의 원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봉건사회 해체기에 처해 있었던 조선 후기 당시의 사회구조에서는 사회적 분업이라는 측면보다는 신분제도가 적용되는 사회적 불평등이 엄존하고 있었다. 실학자들은 이와 같은 당시의 신분제도의 모순성을 지적하고, 고착적 신분제에 의해서 사회를 설명하기보다는 사회적 분업에 가까운 개념으로 조선사회를 재편하고자 했다.

 우선 실학자들은 당시 신분제도의 모순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능력보다는 문벌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양반이 아닌 中庶나 노비들은 차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신분간의 차별에 대해 그들은 조선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특유하게 형성된 인습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당시의 성리학에서는 箕子가 창시한 정당한 법으로 간주하였던 노비제도에 대해 이익은 이를 뒷날에 형성된 그릇된 규정으로 단정했다. 그는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병폐로서 科業·閥閱·技巧·僧尼·遊惰와 더불어 奴婢를 들었다. 특히 관직도 없는 양반층이 노비를 부려 놀고 먹는 구조적 악습을 지적하고 노비법이야말로 인습 중의 인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노비의 世傳法과 매매를 반대하는 등 노비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노비소유의 상한을 정하고 從母法을 시행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도 노비제도 자체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고,481) 현실적인 관행의 불합리를 개선하는 수준에서 신분제도의 모순을 제거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익은 풍속의 타락으로 인한 향촌신분질서의 동요를 사림파의 인륜회복 노력을 원용하여 극복해 보려 하였다. 그는 悌라는 횡적인 사회윤리의 회복을 통해 풍속교화 및 국운회복까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주자학의 명분론적 관념을 여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유수원은 신분제도 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문벌을 폐지하고 학교제도와 과거 및 관리임용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모든 이에게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후보자인 士를 선발하자는 것이다. 이는 문벌에 의해 유지되었던 사회질서를 거부하고, 능력을 중시하는 인식태도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그는 사농공상이라는 四民體制의 개편에 기초한 전문화된 분업의 수행만이 부국안민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홍대용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양반들이 빈궁해도 다른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놀고 먹는 무리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신분이 아니라 재능과 학식의 여부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4민의 자식들이 모두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인정하는 四民皆學論을 내놓았다. 귀천의 신분이 제도적으로 고착되어서는 안되며 교육을 바탕으로 한 능력에 따라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재주와 학식이 있는 자는 農賈의 자제로서 廊廟에 앉더라도 참람하다 여길 것이 아니며, 재주와 학식이 없는 자는 公卿의 자제로서 下人이 되더라도 한스러이 여길 것이 아니다(洪大容,≪湛軒書≫내집 보유, 林下經綸).

 그러나 그는 四民平等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언급하지는 못했다.482)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의 경우에도 사회신분제의 개혁논의에는 미진한 점이 많다. 그는 모든 신민을 士·農·工·商·圃·牧·虞·嬪·走의 九職으로 나누어 배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직역에 대한 종래의 신분적 파악에서 사회 분업에 따른 직능적 파악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의 농·공·상에의 참여와 농·공의 과학기술적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農六科제도와 工匠의 技藝경영을 통해 우수한 농·공인을 행정직에 발탁하는 일종의 직업별 과거제를 주장했다.483) 하지만 이러한 9직은 공동체적 필요에 의해 국가에서 배정하는 것으로 자유로운 선택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며 四民九職을 수평적·직능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신분제의 철저한 혁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한 인간의 본질적 평등에 관해서는 인정을 하였지만 신분간의 위계질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국가에서 의지하는 것은 사족인데 그들이 권리도 세력도 없어지면 위급 할 때 小民의 난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丁若鏞,≪牧民心書≫, 禮典 辨等條).

 그는 양반사족의 지도나 통솔 없이는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는 신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관에도 드러나 양반자제와 서민은 교육기관이나 교육내용을 엄격히 구분하여 양반은 지도자로서 修己治人의 전인교육을, 일반 백성은 孝悌의 윤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양반은 통치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배우고 평민은 피지배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배계급의 선천적 우월과 피지배계급의 선천적 열등을 합리화시키는 운명론을 부정하고 인명을 중시하는 민본주의사상에서 계층간 격차를 좁혀 보려 했다. 그러나 정치의 담당자는 양반임을 내세우는 고정된 신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완전한 신분제의 타파로 나아가지도 못했다.484)

 결국 당시의 실학자들은 만민평등의 원리를 객관적으로 이론화하는 단계에 나아가지는 못했고 신분제도의 철폐를 주장한 것도 아니었다. 유교적 계층관념이 그만큼 완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며, 실학자 자신이 모두 사족출신이어서 그같은 관념의 벽을 온전히 허물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그들은 신분제도의 불합리성에서 오는 현실모순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개혁을 도모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던 향리에 대해서도 실학자들은 그들의 직임을 너무 소홀히 하여, 어떠한 사회적 진출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정식 보수조차 책정하지 않은 것에 폐단의 원인을 두었다. 이는 실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로 유형원은 그들에게 전지 혹은 봉록을 책정해야 한다고 보았고, 정약용은 나아가 그들을 엄연한 하나의 관리직역으로 독자성을 갖도록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리들에 대한 실질적인 대우를 통해 부정과 대민침학을 근절시키려 한 것이다.

 또한 군현의 面任까지도 사실상 책임을 지고 업무를 수행할 현지의 職官으로 충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유형원은 面里의 鄕正에 사족을 동원하여 직무를 맡겨야 된다고 했고, 홍대용은 면임을 종9품의 정식 관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정약용은 정전제의 시행과정에서 有産의 유지를 동원해 응분의 직임을 맡기도록 하고, 그 재능에 따라 정식관원으로 발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座首·別監 등 향임에 대해서도 정식관직을 부여하고 사족으로서 응분의 대우를 할 것이며 반드시 승진기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정약용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의 실학자들은 기술개발의 최종 통로를 관직의 수여에 귀착시키거나, 성공적인 독농가나 향촌지도자의 경우에도 그 최종 귀착점을 관직에 두고 있었다. 이는 당시 사회문제가 되고 있던 유식양반들에게 皆職을 보장하고, 그들을 지방행정의 하급담당자로 삼아 행정의 운용 효율을 높이고, 사회풍속의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학에서는 사회신분제도 자체를 인습적 관념에 매달리지 않았고 직능적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사회적 분업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사회구조를 논했던 것이다. 그들은 성리학적 견지에서 제시되던 선천적 불평등성에 입각한 인간불평등성론에는 분명한 반대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만민평등의 원리를 개관적으로 이론화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고, 신분제를 철폐하여 사회적 평등을 이루어야 함을 선명히 주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학자들은 왕도정치의 이념에 따라서 자신들이 살고 있던 조선 후기 사회의 불평등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그들은 향촌제도의 개편과 연결하여 향직을 정식 관직화하기를 제안했고, 향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같은 그들의 개혁안은 유식양반들에게 개직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481)金泰永, 앞의 글, 258쪽.
482)趙 珖, 앞의 글(1979), 85쪽.
483)金泳鎬,<丁茶山의 職業觀-四民九職論을 중심으로->(≪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1985), 736쪽.
484)李培鎔,<茶山의 身分觀에 대한 再檢討>(≪朝鮮身分史硏究-身分과 그 移動≫, 法文社, 1987), 246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