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동국사략 권3근세사 - 조선기(朝鮮記) 상(上)임진왜란[壬辰亂]

기유(己酉) 조약

통상 조약의 경우는 광해군(光海君) 원년(1609) 기유(己酉), 지금으로부터 297년 전1)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해졌는데, 이것을 기유 약조(己酉約條)라 한다.

이때에 조선(朝鮮)이 일본(日本)에 대한 원한이 매우 심하여 복수할 생각이 심히 절절하였으나 힘이 없어서 거사하지 못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임진(壬辰)년에 쳐들어왔기 때문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한다. 전쟁이 일어난 지 전후 8년간에 팔도가 유린당했다. 무릇 조선이 개국 이래로 성종(成宗) 때까지 100년간은 점점 진보하더니, 그 후 100년간은 기강과 풍속이 차례로 무너졌다. 또 이 대란을 당함에 따라 기근과 전염병이 횡행하여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가득하니 실로 전에는 없던 대참화였다. 명(明)나라는 수십만 군사를 잃고 수백만의 군비를 썼으나 마침내 승산이 없었고, 다만 조선을 위하여 노력함이 컸다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적병이 돌아간 후 선조(宣祖) 33년(1600)까지 명나라 군대가 주둔하여 때때로 위세와 횡포를 부렸다. 또 그들의 식량을 공급하기가 곤란하여 자못 싫고 괴로웠다. 그러나 임진왜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명나라가 망한 후까지 잊지 않았다.

무릇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켜 이웃 나라를 유린하여 100년이 가도 풀 수 없는 원수를 맺었다. 명나라의 경우는 조선을 구하다가 마침내 온 나라 백성이 모두 곤란에 빠져 몇 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하였다.

1)원문에는 298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297년 전으로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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