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평백제국비명
현경(顯慶) 5년(660) 경신(庚申), 8월 15일, 낙주(洛州) 하남(河南) 사람 권회소(權懷素)가 짓다. ……(중략)……
사지절(使持節) 신구우이마한웅진(神丘嵎夷馬韓熊津) 등 14도(十四道) 대총관(大摠管)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상주국(上柱國) 형국공(邢國公) 소정방(蘇定方)은 증성에서 여러 번 모함을 당하고 위수(委水)에서 긴 파란을 일으켰으며, 뛰어난 계획은 무장(武帳)
를 삼가고 주(酒), 색(色), 재물의 세 가지 유혹[三惑]2)
을 물리쳐 빙천(氷泉)을 고요하게 해서 깨끗함을 드러내고 서리 맞은 잣나무를 품고서 정절을 굳게 하니, 말하지 않아도 『시경』⋅『서경』에 부합하고 행하지 않아도 법도에 들어맞는다. 흰 구름을 거느리고서 상쾌함을 함께 하고, 푸른 소나무와 더불어서 고고함을 다투면서도 멀리 앞 사람을 생각하여 모두 덕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이 있었다. ……(중략)……
군막 안에 무기를 두는 방
에서 맞추었고 빼어난 기개는 문창성[文昌]
학문을 맡은 북두의 첫째 별
에 나타냈으니, 한 무제 때의 흉노를 쳐서 용맹을 날린 위청과 곽거병을 능가하면서도 따라잡지 않으며, 한 고조를 도왔던 팽월과 한신을 굽어보면서도 높게 여긴다. 조운(趙雲)은 일신의 담력으로 용맹이 삼군(三軍)의 으뜸이 되었고 관우(關羽)는 만인(萬人)을 대적할 만한 능력으로 명성이 백대(百代)에 떨쳤다. 자기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죽을 뜻을 가지고 유적을 무릅쓰면서도 더욱 더 견고해졌고 목숨을 가벼이 하고 의를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앞장을 섰어도 그 마음을 빼앗기는 어려웠다. 마음은 얼음처럼 투명한 거울에 드러나 있어 귀신도 그 형상을 감출 수 없고, 바탕은 절개를 힘써 바람과 서리도 그 색을 고칠 수 없었다. 사졸을 길러 변방 오랑캐를 어루만짐에 이르러서는 사지(四知)1)
1)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안다는 뜻으로, 비밀은 은폐할 수 없으므로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후한서』권54 「양진전(楊秉傳)」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 양진(楊震)이 왕밀(王密)이 뇌물로 바친 금을 거절하면서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2)
『후한서』권54 「양병전(楊秉傳)」에서 유래되었다. 청렴한 관리였으며 태위(太尉)까지 올랐던 양병(楊秉)은 “나는 세 가지 미혹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술, 여색, 재물이다[我有三不惑:酒,色,財也]”라는 말을 남겼다.
부대총관(副大摠管) 좌령군장군(佐領軍將軍) 김인문(金仁問)은 기량이 온화하고 아담하며, 기국과 식견이 침착하고 굳세어서 소인배의 자잘한 행위는 없고 군자의 고매한 풍모만 있었으며, 그의 무(武)는 싸우지 않고도 드러났으며 문(文)도 부드럽고 원대했다. ……(중략)……
그 왕 부여의자 및 태자 융 이외 왕자 (여)효 13인은 대수령 대좌평
사타천복, 국변성 이하 700여 인과 함께 이미 궁궐에 들어가 있다가 모두 사로잡히니, 말가죽을 버리게 하고 우차에 실어다가 잠시 있다가 사훈(司勳)
'대좌평' 관련자료
주(周)나라 때 논공행상의 일을 맡은 벼슬
에 올리고 이에 청묘(淸廟)
주나라 문왕의 종묘
에 드렸다. ……(중략)…… 모두 5도독 37주 250현을 두고 호(戶) 24만, 구(口) 620만을 각각 편호로 정리하여 모두 오랑캐의 풍속을 바꾸게 했다. ……(하략)……「대당평백제국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