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천문도 석본(石本)은 옛날 평양성에 있었는데, 병난으로 말미암아 강에 잠겨 없어졌다.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인본(印本) 또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오직 우리 전하(즉 태조
)께서 천명을 받은 처음에, 어떤 이가 한 권을 올리는 자가 있었는데, 전하께서 보배로 귀중하게 여겨서,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분명하게 돌에 새기게 했다. 그러자 서운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그림은 세월이 오래되어, 별의 도수(度數)가 차이가 나니, 다시 도수를 측량하여 사시 중월(四仲)
'태조' 관련자료
음력 2·5·6·11월
의 초저녁과 새벽 적당한 시간을 정하여서, 새 그림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임금께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지난 을해년(1395) 6월에 서운관에서 새로 중성기(中星記) 한 편을 만들어 올렸다. 옛 그림에는 입춘에 묘성(昴星)
을 고쳐서 돌에 새겨 마침내 끝마치고는 신 권근
에게 명하여 그 뒤에 기록하라 하시었다.
별 이름
이 혼(昏)에 맞는데 지금은 위성(胃星)이 되므로, 24절기(氣)가 차례로 어긋나는지라. 이에 옛 그림에 의하여 중성(中星)1)
1)
중성(中星) :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 정남(正南) 쪽에 보이는 별 혼중성(昏中星)·단중성(旦中星)이 있다.
'권근' 관련자료
신이 가만히 생각하니, 예부터 제왕이 하늘을 받드는 정사는 날짜로써 시각을 보이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다. 요(堯)임금은 희(羲)·화(和)2)
에게 명하여 사시의 차례를 조절하고 순임금은 기형(璣衡)3)
을 살피어 칠정(七政)4)
을 고르게 하셨는데, 이는 하루빨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부지런하게하기 위해서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성무인명(聖武仁明)하셔서, 선양(禪讓)으로 나라를 세웠다. 내외가 안연하여 태평하게 된 것은, 즉 요·순의 덕이요, 먼저 천문을 살피어 중성(中星)을 바르게 하신 것은, 즉 요·순의 정치였다. 그러나 요·순이 상(象)을 보고 그릇을 만드는 마음을 구하면, 그 근본은 다만 공경하는 데 있을 뿐이었으니, 전하께서는 또한 공경으로 마음을 가지시고 위로는 하늘의 때를 받들며,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부지런히 하시면, 신성한 공이 또한 요·순과 같이 높아질 것인즉, 하물며 이 그림을 옥돌에 새기어 주시니 길이 자손 만세의 보배로 삼으실 것임이 분명할 것이다.
2)
희(羲)·화(和) : 요(堯)임금 때 천문과 역법을 관장했던 관직이다. 요임금은 희중(羲仲)·희숙(羲叔), 화중(和仲)·화숙(和叔)이라는 두 쌍의 형제에게 명하여 해와 달, 별, 날씨를 관측하고 역법을 만들게 하였다다. 이들의 후손이 대대로 그 벼슬을 맡으면서 희(羲)·화(和) 두 개의 관직으로 나뉘게 되었다고 한다.
3)
기형(璣衡) :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천체(天體)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기계로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온다.
4)
칠정(七政) : 일월(日月)과 수, 화, 금, 목, 토의 오성(五星)을 말한다.
『동문선』권105 「지」 천문도지
- 중성(中星) :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하늘 정남(正南) 쪽에 보이는 별 혼중성(昏中星)·단중성(旦中星)이 있다.
- 희(羲)·화(和) : 요(堯)임금 때 천문과 역법을 관장했던 관직이다. 요임금은 희중(羲仲)·희숙(羲叔), 화중(和仲)·화숙(和叔)이라는 두 쌍의 형제에게 명하여 해와 달, 별, 날씨를 관측하고 역법을 만들게 하였다다. 이들의 후손이 대대로 그 벼슬을 맡으면서 희(羲)·화(和) 두 개의 관직으로 나뉘게 되었다고 한다.
- 기형(璣衡) :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천체(天體)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기계로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나온다.
- 칠정(七政) : 일월(日月)과 수, 화, 금, 목, 토의 오성(五星)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