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곡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노래는 대부분 음란하여 족히 말할 것이 없다. 「한림별곡(翰林別曲)」과 같은 부류는 글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으나, 교만하고 방탕하며 겸하여 점잖지 못하고 장난기가 있어 더욱 군자가 숭상해야 할 바가 아니다. 오직 근세에 이별(李鼈)의 6가(歌)
조선 중기 문인 이별(李鼈)이 지은 연시조 「장육당육가(藏六堂六歌)」를 말함
가 세상에 성대하게 전하니 오히려 그것이 이보다 좋다고는 하나, 그래도 세상을 희롱하고 공손하지 못한 뜻만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두터움
한 내용이 적은 것을 애석하게 여긴다. 도산 노인은 평소에 음률을 알지는 못하나 그래도 세속의 음악은 듣기 싫어하였다. 한가롭게 살면서 병을 돌보는 여가에 무릇 정성(情性)에 감동이 있는 것을 매양 시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는 있어도 노래하지는 못한다. 만약 노래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시속말로 엮어야 되니, 대개 나라 풍속의 음절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일찍이 이씨의 노래를 모방하여 도산 6곡이란 것을 지은 것이 두 가지이니, 그 하나는 뜻을 말함이요, 그 하나는 학문을 말한 것이다. 이 노래를 아이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익혀서 노래하게 하여 안석에 기대어 듣기도 하고,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고 뛰기도 하게 한다면 비루한 마음을 거의 씻겨버리고, 감화되어 분발하고 마음이 화락해져서 노래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유익함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나의 처신이 자못 세상과 맞지 않으니, 이 같은 한가한 일이 혹시나 말썽을 일으키는 단서가 될는지 알 수 없고, 또 이 곡조가 노래 곡조[腔調]에 들어가며, 음절에 화합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스스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당분간 한 부를 써서 상자에 넣어 놓고, 때때로 내어 스스로 반성해 보고 또 훗날에 열람해 보는 자의 취사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가정(嘉靖) 44년 을축 늦봄 16일[旣望]에 도산 노인[山老]이 쓴다.
『퇴계선생문집』권43, 발, 도산십이곡발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시골에 파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 어떠하겠는가?
하물며 자연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이 병을 고쳐서 무엇 하겠는가?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 가네
이러한 가운데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고자 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순박하고 좋은 풍속이 죽었다 하는 말이 진실로 거짓말이로구나
사람의 성품이 어질다 하는 말이 진실로 옳은 말이구나
천하에 허다한 영재를 속여서 말씀할까
그윽한 향기의 난초가 골짜기에 피어 있으니 자연이 듣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봉우리에 걸려 있으니 자연이 보기가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에서 저 한 아름다운 분(임금)을 더욱 잊지 못하는구나
산 앞에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흐르는구나
떼를 지어서 갈매기들은 오락가락하는데
어찌하여 새하얀 망아지는 멀리 마음을 두는가
봄바람이 부니 산에 꽃이 가득 피고, 가을밤에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구나
사계절에 흥취는 사람과 같은데
하물며 물고기가 뛰고 솔개는 날고 구름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햇빛이 온 세상에 비추는 자연의 아름다움이야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천운대를 돌아서 완락재가 맑고 깨끗한데
많은 책을 읽는 인생으로 즐거운 일이 끝이 없구나
이 중에 오고가는 풍류를 말해 무엇 할까
벼락이 산을 깨쳐도 귀먹은 자는 못 듣나니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어도 장님은 보지 못하나니
우리는 눈도 밝고 귀도 밝은 남자로서 귀먹은 자와 장님같이 되지는 않을 것이로다.
옛 성현도 나를 보질 못했고 나도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고인을 뵙지 못했어도 그분들이 행하던 길이 내 앞에 있네
그 가던 길(진리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
그 당시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행하던 길을 몇 해나 버려두고서
어디에 가서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다른 곳에다 마음을 두지 않으리라
청산은 어찌하여 항상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를 아니하는가?
우리도 저 물과 같이 그치지 말아서 영원히 높고 푸르게 살아가리라
어리석은 사람도 알며 실천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성인도 못 다 행하니, 그것이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쉽거나 어렵거나 간에 (학문 수양의 생활 속에서) 늙어 가는 줄을 모르노라.
「도산십이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