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신재형(申在亨)의 상소
에 아뢰기를,
“무(戊)와 기(己)는 천간(天干)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되고, 축(丑)과 미(未)는 지지(地支)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됩니다. 천간과 지지가 합하여 기미(己未)가 되었는바, 기와 미는 모두 토에 속하는데, 토는 농사의 근본이 되고, 농사는 먹는 것의 근본이 되며, 먹는 것은 백성들의 근본이 됩니다. 백성들을 농사에 힘쓰도록 이끌고 농사일을 절기에 맞추도록 힘쓰는 것은 오로지 다음해인 기미년에 달려있습니다.
대개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지리(地利)를 다 이용하고, 지리를 다 이용하고 나서 천시(天時)를 기다려야 하는 법입니다. 수리 사업을 일으키고 토질에 맞는 것을 잘 살피며, 농기구를 잘 정비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응당 하여야 할 일들입니다. 천시(天時)에 있어서는 3년 동안 가뭄이 들고 3년 동안 홍수가 지며, 10년에 한 차례 크게 가뭄이 들고 10년에 한 차례 크게 홍수가 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가뭄의 피해가 홍수의 피해보다 더 심하니, 우리나라는 논이 많아서 일단 가뭄을 만나기만 하면 농민들이 속수무책입니다. 이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모판을 만들었다가 모내기를 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성(箕聖)이 처음에 정전법(井田法)을 가르친 때부터 높고 건조한 곳은 마른 땅에 씨를 심고 낮고 습한 곳에서는 물을 대고 씨를 뿌렸는데,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그것을 일러 마른씨뿌리기[乾播], 물씨뿌리기[水播]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중기부터 비로소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
(移秧法)이 생겨났습니다. 세속에서 전하기를 이 이앙법
은 임진왜란
때에 비로소 생겨났다고 하는데, 이 법이 한 번 유행되자 농사를 망치는 백성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절기가 곡우 때가 되어서야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데 이때 만약 유행하는 재해를 만나면 아무리 부지런한 농사꾼이더라도 매번 하늘의 구름만 쳐다보다가 시기를 놓친 다음에야 볍씨를 뿌리게 됩니다. 또 하지 때에 가서는 모내기를 할 수 있지만 하늘이 이때에 가뭄을 내리면 번번이 비가 적은 것을 걱정하는데, 한 번이라도 제 시기를 놓치기만 하면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씨를 심는 부종법(付種法)의 경우에는, 겨울에 쌓인 눈이 녹고 봄비가 촉촉히 내릴 때에 올벼는 일찍 심고 늦벼는 늦게 심으며, 마른 땅에는 마른씨뿌리기를 하고 물이 있는 곳에는 물씨뿌리기를 하므로, 종자가 싹트고 줄기가 서는 데 있어서 가뭄과 홍수가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만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김매는 데 있어서 이앙법
의 경우에는 두어 차례만 김을 매주면 그만이지만 부종법의 경우에는 적어도 3, 4차례 이상 매주어야만 합니다. 부유한 백성은 토지 겸병(兼幷)에 힘쓰고 농사를 많이 짓는 것에 욕심을 내어 적게는 3, 4석씩, 많게는 6, 7석씩을 한꺼번에 모를 부어 노동력을 줄이고 한꺼번에 모내기를 하여 수고를 줄입니다. 비록 어쩌다가 가뭄을 당하더라도 대부분 좋은 논을 소유하고 있어서 수확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은 볍씨를 뿌리고 모내는 일을 맨 나중에 하므로 가뭄을 만나 흉년이 들면 입에 풀칠할 길이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내년부터 모 붓는 법을 폐지하고 부종법을 쓴다면 비록 한때의 수고로움은 있을지언정 한 해 동안 먹을 것은 넉넉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오로지 고식적인 것만 좋아하고 영구적인 계책은 세울 줄을 모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삼농(三農)의 일에 힘쓰고자 하신다면 만대를 두고 전해질 법을 세우소서.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이미 있는 큰 제언(堤堰)부터 착수하여야 한다.’고 하교하셨습니다. 대개 산에 가까운 곳은 제언을 만들어서 물을 가두고, 들에 가까운 곳은 보(洑)가 있어서 물을 끌어대며, 바다에 가까운 곳에서는 제방을 쌓아서 바닷물을 막습니다. 이 둑과 보, 제방 세 가지는 수리(水利)를 일으켜서 가뭄과 재앙에 대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산과 들판을 낀 고을들이 수놓은 것처럼 뒤섞여 있고 호수와 바다를 낀 고을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는데, 옛사람들이 수축해놓은 것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언은 모래에 막히고 보는 돌에 파괴되고 제방은 조수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이를 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언사(堤堰司)에서 감사와 수령들에게 신칙하여 작은 곳은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큰 곳은 관가의 힘을 들여 초봄에 역사를 시작하여서 물을 끌어다 채우게 하되, 혹 부지런히 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과(考課)하여 징계합니다. 또 새로 쌓을 만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늠료(廩料)를 출연하고 인력을 내어 역사를 시작하며, 그러고서도 또 힘이 모자라면 국곡(國穀)을 내어 공사를 끝내게 합니다. 그리고 만약 부유한 백성이 재물을 출연하고 힘을 내어 백성들이 그 이익을 입게 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특별히 상을 내려서 다른 백성들을 흥기시키는 방도로 삼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산간 고을이나 바닷가 고을이 어찌 올해와 같이 크게 흉년이 들겠습니까.
토질에 잘 맞는 것을 살피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하교하시기를 ‘남쪽 지방에 잘 맞는 것은 북쪽 지방에 맞지 않고 산골짜기에서 잘 자라는 것은 들판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토질을 잘 살피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조그마한 땅뙈기마저 모두 다 양안(量案)에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진 들판이 지금 혹 묵어가고 넓디넓은 습지가 지금 혹 버려진 채 있으니, 누군들 그것을 개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봄에 개간을 하여 경작하기만 하면 가을에는 세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토지를 개간하고 백성들을 모여 살게 하라.’고 책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개간할 만한 토지는 백성들에게 개간하게 하고, 경작할 만한 토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경작하게 한 다음, 토질이 기름지고 메마른 정도에 따라서 세금의 많고 적음을 정하되, 6, 7년이나 혹 4, 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는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넓은 은혜 아래에서 배부르고 따스히 지내게 한다면, 토질에 맞는 것을 살피는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상소' 관련자료
“무(戊)와 기(己)는 천간(天干)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되고, 축(丑)과 미(未)는 지지(地支)에 있어서 토(土)에 해당됩니다. 천간과 지지가 합하여 기미(己未)가 되었는바, 기와 미는 모두 토에 속하는데, 토는 농사의 근본이 되고, 농사는 먹는 것의 근본이 되며, 먹는 것은 백성들의 근본이 됩니다. 백성들을 농사에 힘쓰도록 이끌고 농사일을 절기에 맞추도록 힘쓰는 것은 오로지 다음해인 기미년에 달려있습니다.
대개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지리(地利)를 다 이용하고, 지리를 다 이용하고 나서 천시(天時)를 기다려야 하는 법입니다. 수리 사업을 일으키고 토질에 맞는 것을 잘 살피며, 농기구를 잘 정비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응당 하여야 할 일들입니다. 천시(天時)에 있어서는 3년 동안 가뭄이 들고 3년 동안 홍수가 지며, 10년에 한 차례 크게 가뭄이 들고 10년에 한 차례 크게 홍수가 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가뭄의 피해가 홍수의 피해보다 더 심하니, 우리나라는 논이 많아서 일단 가뭄을 만나기만 하면 농민들이 속수무책입니다. 이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모판을 만들었다가 모내기를 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성(箕聖)이 처음에 정전법(井田法)을 가르친 때부터 높고 건조한 곳은 마른 땅에 씨를 심고 낮고 습한 곳에서는 물을 대고 씨를 뿌렸는데,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그것을 일러 마른씨뿌리기[乾播], 물씨뿌리기[水播]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중기부터 비로소 모내기를 하는 이앙법
'이앙법' 관련자료
'이앙법' 관련자료
'임진왜란' 관련자료
씨를 심는 부종법(付種法)의 경우에는, 겨울에 쌓인 눈이 녹고 봄비가 촉촉히 내릴 때에 올벼는 일찍 심고 늦벼는 늦게 심으며, 마른 땅에는 마른씨뿌리기를 하고 물이 있는 곳에는 물씨뿌리기를 하므로, 종자가 싹트고 줄기가 서는 데 있어서 가뭄과 홍수가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만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김매는 데 있어서 이앙법
'이앙법' 관련자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내년부터 모 붓는 법을 폐지하고 부종법을 쓴다면 비록 한때의 수고로움은 있을지언정 한 해 동안 먹을 것은 넉넉해지리라 생각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오로지 고식적인 것만 좋아하고 영구적인 계책은 세울 줄을 모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삼농(三農)의 일에 힘쓰고자 하신다면 만대를 두고 전해질 법을 세우소서.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이미 있는 큰 제언(堤堰)부터 착수하여야 한다.’고 하교하셨습니다. 대개 산에 가까운 곳은 제언을 만들어서 물을 가두고, 들에 가까운 곳은 보(洑)가 있어서 물을 끌어대며, 바다에 가까운 곳에서는 제방을 쌓아서 바닷물을 막습니다. 이 둑과 보, 제방 세 가지는 수리(水利)를 일으켜서 가뭄과 재앙에 대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산과 들판을 낀 고을들이 수놓은 것처럼 뒤섞여 있고 호수와 바다를 낀 고을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는데, 옛사람들이 수축해놓은 것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언은 모래에 막히고 보는 돌에 파괴되고 제방은 조수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이를 수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언사(堤堰司)에서 감사와 수령들에게 신칙하여 작은 곳은 백성들의 힘을 빌리고 큰 곳은 관가의 힘을 들여 초봄에 역사를 시작하여서 물을 끌어다 채우게 하되, 혹 부지런히 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과(考課)하여 징계합니다. 또 새로 쌓을 만한 곳이 있을 경우에는 늠료(廩料)를 출연하고 인력을 내어 역사를 시작하며, 그러고서도 또 힘이 모자라면 국곡(國穀)을 내어 공사를 끝내게 합니다. 그리고 만약 부유한 백성이 재물을 출연하고 힘을 내어 백성들이 그 이익을 입게 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특별히 상을 내려서 다른 백성들을 흥기시키는 방도로 삼습니다. 이렇게 할 경우 산간 고을이나 바닷가 고을이 어찌 올해와 같이 크게 흉년이 들겠습니까.
토질에 잘 맞는 것을 살피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하께서 하교하시기를 ‘남쪽 지방에 잘 맞는 것은 북쪽 지방에 맞지 않고 산골짜기에서 잘 자라는 것은 들판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토질을 잘 살피고자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조그마한 땅뙈기마저 모두 다 양안(量案)에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진 들판이 지금 혹 묵어가고 넓디넓은 습지가 지금 혹 버려진 채 있으니, 누군들 그것을 개간하고 싶지 않겠습니까마는, 봄에 개간을 하여 경작하기만 하면 가을에는 세금을 매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토지를 개간하고 백성들을 모여 살게 하라.’고 책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개간할 만한 토지는 백성들에게 개간하게 하고, 경작할 만한 토지는 백성들로 하여금 경작하게 한 다음, 토질이 기름지고 메마른 정도에 따라서 세금의 많고 적음을 정하되, 6, 7년이나 혹 4, 5년간 세금을 면제해주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없는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넓은 은혜 아래에서 배부르고 따스히 지내게 한다면, 토질에 맞는 것을 살피는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후략)…
『정조실록』권50, 22년 11월 30일 기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