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시
이번 단발은 위생에 이익이 되고 일을 할 때 편하기 위하여 우리 성상 폐하께오서 정치 개혁과 국가의 부강함을 도모하고자 솔선하여 표준을 보이심이라. 무릇 우리 대조선국 인민은 이와 같은 성의(聖意)를 본받되 의관 제도(衣冠制度)는 다음과 같이 고시함.
개국 504년 11월 15일
내부대신서리 내부협판 유길준
'유길준' 관련자료
1. 나라의 의복이 몸에 있으니 의관은 국복(國服) 기한 전의 전례대로 흰색을 이용함.
1. 망건(網巾)은 폐지함
1. 의복제도는 외국 제도를 채용하여도 무방함.
오늘 [11월] 15일 대군주 폐하께서 내리신 조칙에서 “짐이 신민(臣民)에 앞서 머리카락을 자르니, 너희들은 짐의 뜻을 잘 본받아 만국과 나란히 서는 대업(大業)을 이루라”라고 하시었으니, 지금 경장하는 때를 맞아 크게 분발하신 조칙을 엎드려 읽어보니 무릇 우리 대조선국 신민인 자가 누가 감읍하지 아니하며 진작하지 아니하리오. 한마음으로 덕을 같이하여 경장하시는 폐하의 뜻을 받들기를 몹시 바람.
개국 504년 11월 15일
내부대신서리 내부협판 유길준
'유길준' 관련자료
『관보』 제214호, 건양 1년(1896) 1월 4일
15일, 주상(主上)이 먼저 단발한 후 내외 신민들에게 명을 내려 모두 단발하도록 하였다. 두루마기를 착용한다는 법을 반포한 이래 단발한다는 소문이 점차 퍼지더니, 10월 중 일본 공사가 주상을 위협하여 조속히 단발할 것을 재촉하니, 주상은 인산(因山)1)
을 마친 후로 날을 잡았다.
1)
명성황후
의 장례를 말한다.
'명성황후' 관련자료
이때 유길준(兪吉濬)
, 조희연(趙羲淵) 등이 일본인을 인도하여 궁궐을 포위하고 대포를 설치한 후 단발하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고 선언하였다. 주상은 긴 탄식을 하며 정병하(鄭秉夏)를 돌아보고 “네가 내 머리를 깎으라”라고 하므로, 정병하는 가위를 들고 주상의 머리를 깎고, 유길준
은 태자의 머리를 깎았다.
'유길준(兪吉濬)' 관련자료
'유길준' 관련자료
단발령이 내려지자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였다. 사람마다 분노하며 죽으려는 기색을 보이며 곧 무슨 변이라도 일으킬 것 같아 일본인들은 군대를 빈틈없이 하여 대비하였다.
경무사 허진(許璡)은 순검들을 지휘하여 가위를 들고 길을 막고 있다가 사람만 만나면 갑자기 머리를 깎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인가에 들어가 모두 단속해 찾아내므로 깊이 숨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머리를 깎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중 서울에 온 시골 사람들은 문밖을 나섰다가 상투가 잘리면 대개 그 상투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통곡을 하며 도성을 빠져 나왔다. 무릇 머리를 깎인 사람들은 모두 깨끗이 깎이지 않았는데, 단 상투가 잘리고 머리카락이 드리워져 그 모습이 긴 머리를 한 중과 같았다. 오직 부녀자들과 아이들만 머리를 깎이지 않았다.
“요즈음 내각에서 두 개의 제안을 제출하여 대신들에게 서명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연호 개정에 관한 것이며, 하나는 단발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신은 조용히 생각해 보니 임금을 높이는 자는 그 명분을 중시하지 않고 실상을 중시하며, 백성을 교화하는 자는 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내란이 빈번하게 일어나서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워 위아래가 한마음으로 실상에 힘을 기울여도 오히려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연호를 개정한 것은 빈껍데기의 명분으로 꾸민 것입니다. 앞으로 수년이 지나 나라가 부유하고 군사가 강해져 동양을 호시탐탐 노려보는 날에는 한번 예를 살펴 거행할 겉치레의 일에 불과한데, 오늘 왜 이것을 급하게 서두르십니까?
그리고 단발령에 있어서도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련한 신의 의견을 말씀드리면, 단군과 기자 이후로 머리를 닿는 풍속이 상투를 트는 풍속으로 바뀌어 머리카락 사랑하기를 귀중한 물건 아끼듯 하였는데, 지금 하루아침에 머리를 깎았습니다. 4000년 동안 굳었던 습관은 바뀌기 어려울 것이며, 많은 백성의 흉흉하고 두려운 마음을 예측할 수 없게 할 것이니 난리의 발단을 만들지나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옛날 청나라 사람들이 북경에 들어갔을 때 무력으로 의관을 훼손하였으므로 쌓인 울분이 300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아 머리를 묶은 비도가 한번 외치면 사방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이로 인하여 수십 년 동안 병력을 투입한 끝에 이제 겨우 안정되었으니 이것을 거울삼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신이 어찌 한 번에 움켜 쥘 수 있는 짧은 머리카락을 아끼어 나라를 위하지 않겠습니까. 누차 생각해 봐도 그 이익은 보이지 않고 그 해로움만 보이기 때문에 감히 무조건 따를 수가 없습니다. 운운“
『매천야록』 권2, 고종 32년 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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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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