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협회
회원들이 독립관에 모여 공론하고 외부대신과 탁지부대신과 정부 모든 대신들에게 하여 보낸 편지 초를 차례로 좌(左)1)
에 기재하노니 전국 일천이백만 명 동포 형제들은 자세히들 보시오.
3월 6일 독립협회
회중에서 외부대신 민종묵 씨에게 편지하기를 경계자(敬啓者, 삼가 말씀드린다는 뜻으로 한문 편지의 서두 표현)는 절영도에 석탄고 터를 아라사(러시아) 사람에게 허락하여 빌려줄 일로 귀 대신의 답장을 본즉 종이 폭에 가득히 쓴 사의가 소상하고 밝은바 지난해(曩年) 월미도에 석탄고 터를 빌릴 때에 또한 내각에 청한 의논이 없고 외부에서만 따로 판단하였노라 하니 내각과 의정부가 관제가 한가지지 아니하여 모여 의논하는 일의 범한(範限)이 각각 정한 법이 있는 즉 전 내각에서 어떻게 하여 그른 규칙은 반드시 추후로 의논할 것이 아니요 지금 정한 규칙의 어떠함은 귀 대신이 이미 통연히 알 터이오. 귀 편지 중에 전년 8월에 정부대신이 다 이르기를 부득불 그렇겠다 하고 금년 1월에 또 이르되 반드시 정부에 나아가 의논할 것이 아니다 하더라고 하였으나 일전에 정부 모든 대신의 연명(連名) 상소 한 사연을 본 즉 이미 외부 청의가 있는데 미처 회의하여 결정이 못되었다 하였으니 이는 정부 연명상소와 귀 대신의 편지 사의가 서로 틀리니 이는 정부와 외부 사이의 일인즉 자연히 변질함이 있을 것이오 귀 편지 중에 미터 수효를 감한다는 것은 자연히 타첩(妥帖, 일을 순조롭게 끝냄)하여 완절이 되리라 하고 일본 석탄고 빌린 전례대로 시행하였노라 하니 그 미터 수효는 일본이나 아라사 사이에 자연히 다르고 한가지일 것이 없을 줄은 본회에서 확실히 믿거니와 그러나 귀 편지 중에 장차 행할 자는 지남철이 방위를 가리킴 같다 함은 귀 대신이 높고 밝은 식견과 넓고 큰 도량으로 이 일에 대하여 위로
성조(聖朝)의 간대(艱大, 비할 데 없이 힘 들고 어려움)하옵신 귀업을 우러러 생각하며 아래로 인민의 사는 정세를 엎드려 살펴 본회의 여러 의논을 캐어 쓰고자 함이라. 본회에서 어찌 의견을 드러내어 베풀지 아니하리오. 대저 오늘날 아라사 사람이 석탄고 지을 터를 청하며 구함은 이왕 일본에 먼저 빌려준 것을 빙자함이라. 다른 날에 다른 나라가 어찌 또한 이제 날의 일본과 아라사에 허락하여 빌려주는 이익을 고르게 입고자 아니 하리요. 이 같고 마지아니하면 온 나라 토지를 차제로 다른 나라 사람에게 허락하여 빌리기에 겨를치 못할지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땅에 가서 살리오. 어진 의원은 병의 근원을 먼저 다스린다 하니 지금 토지 빌리는 근원은 일본 석탄고를 빌린 데서 비로소 생긴 지라. 귀 대신은 일본공사에게 조회하여 일본 석탄고를 헐어가고 그 터를 도로 돌려보내게 한즉 각국에 편벽되이 후하고 편벽되이 박하다는 책망이 자연히 막히어 밖으로 외국과 사귀는 정의가 화평하여지고 안으로 나라의 권리가 굳어지리니 조량하고 회답하라 하였는데 이 편지 총대위원은 윤치호, 박치훈, 최정식 세 명이라더라.
3월 7일 독립협회
회중에서 탁지부대신 조병호 씨에게 편지하기를 경계자는 들은 즉 서울다가 한아(韓俄)은행을 베풀어 세우고 탁지부에서 본국 조선은행과 한성은행 두 곳에 맡겨두었던 은화와 탁지부에 시재 은을 일병(모두) 한아은행에 옮겨두었다 하며 또 차차로 서울 외에 각도 관찰부에 한아은행 지소(支所)를 버려두어 온 나라 세납의 실어들이고 실어내는 것을 전혀 주관 시킨다 하니 이 말이 적확하면 이는 온 나라의 재물 권리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사양하여 주는 것이요 본국 탁지부는 다만 이름만 있지 실상은 없을 뿐만 아니라 홀로 서서 스스로 주장하는 권리를 스스로 잃는 것이라. 그러나 귀 대신의 고명한 식견과 회홍한 도량으로 재물 정사 다스리는 직무를 맡았으니 이러할 이유는 반드시 없을 듯 하나 본회에서 이 일에 대하여 걱정하고 염려하는 충성이 있기에 이에 편지하노니 사조하며 상항 각 조목의 실적과 실수를 자세히 회답함을 바라노라 하였는데 이 편지 기초위원 겸 총대위원은 홍긍섭, 박승조, 정교 세 명이라더라.
'독립협회'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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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로쓰기 형태
3월 6일 독립협회
'독립협회' 관련자료
성조(聖朝)의 간대(艱大, 비할 데 없이 힘 들고 어려움)하옵신 귀업을 우러러 생각하며 아래로 인민의 사는 정세를 엎드려 살펴 본회의 여러 의논을 캐어 쓰고자 함이라. 본회에서 어찌 의견을 드러내어 베풀지 아니하리오. 대저 오늘날 아라사 사람이 석탄고 지을 터를 청하며 구함은 이왕 일본에 먼저 빌려준 것을 빙자함이라. 다른 날에 다른 나라가 어찌 또한 이제 날의 일본과 아라사에 허락하여 빌려주는 이익을 고르게 입고자 아니 하리요. 이 같고 마지아니하면 온 나라 토지를 차제로 다른 나라 사람에게 허락하여 빌리기에 겨를치 못할지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땅에 가서 살리오. 어진 의원은 병의 근원을 먼저 다스린다 하니 지금 토지 빌리는 근원은 일본 석탄고를 빌린 데서 비로소 생긴 지라. 귀 대신은 일본공사에게 조회하여 일본 석탄고를 헐어가고 그 터를 도로 돌려보내게 한즉 각국에 편벽되이 후하고 편벽되이 박하다는 책망이 자연히 막히어 밖으로 외국과 사귀는 정의가 화평하여지고 안으로 나라의 권리가 굳어지리니 조량하고 회답하라 하였는데 이 편지 총대위원은 윤치호, 박치훈, 최정식 세 명이라더라.
3월 7일 독립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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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론설. 대한독립협회」, 『독립신문』, 1898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