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고(鼓) 금중(禁中)이 소란스러워서 승지(承旨) 윤자임(尹自任)·공서린(孔瑞麟), 주서(注書) 안정(安珽), 검열(檢閱) 이구(李構)
【모두 정원(政院)에 직숙(直宿)하였다.】
등이 허둥지둥 나가 보니, 연추문(延秋門)이 이미 활짝 열리고 문졸(門卒)들이 정돈해 서 있었다. 근정전(勤政殿)으로 향하여 들어가 바라보니 청의(靑衣)를 입은 군졸들이 전폐(殿陛) 아래에 좌우로 옹립(擁立)하여 있었다. 윤자임 등이 밀어제치고 들어가 곧바로 경연청(經筵廳)으로 가니 합문(閤門) 안팎이 모두 등불로 밝혀져 있었다. 합문 밖에는 병조 판서 이장곤(李長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전(金詮), 호조 판서 고형산(高荊山), 화천군(花川君) 심정(沈貞), 병조 참지(兵曹參知) 성운(成雲)이 앉아 있었다.
윤자임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공(公)들은 어찌하여 여기에 오셨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장곤 등이 답하기를, “대내(大內)에서 표신(標信)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왔소.” 라고 하였다.
【《정원일기(政院日記)》는 “임금이 편전(便殿)에서 홍경주, 남곤, 김전, 정광필을 비밀리에 불렀다. 이장곤과 안당(安瑭)은 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조광조
(趙光祖) 등을 조옥(詔獄)에 내릴 것을 의논하였다.” 라고 기록하였다.】
윤자임이 말하기를, “어찌 정원(政院)을 거치지 않고서 표신을 냈는가?” 라고 말하고, 곧 승전색(承傳色)에게 청하여 입계(入啓)하고자 하였다. 그때 승전색 신순강(辛順强)이 나와서 성운을 불러 말하기를, “당신이 승지가 되었으니 바로 들어가 전교를 들으시오.” 라고 하였다. 윤자임이 외치기를, “이것이 무슨 일인가?” 라고 하였다. 성운이 바로 일어나 들어가려 하니, 윤자임이 성운에게 외치기를, “승지가 되었더라도 어찌 사관(史官)이 없이 입대(入對)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서 안정(安珽)을 시켜 성운을 말리게 하였다. 안정이 “급한 일이 있더라도 사관은 참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성운의 띠(帶)를 잡고 함께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운은 안정의 팔을 치고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지키는 5∼6인이 안정을 밀어냈다.
'조광조' 관련자료
얼마 지나지 않아 성운이 다시 나와서 종이 쪽지를 내보이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을 다 의금부에 내리라.” 라고 하였다. 거기에 적힌 것은 승정원(承政院)에 직숙(直宿)하였던 승지 윤자임과 공서린, 주서 안정, 한림(翰林) 이구(李構) 및 홍문관(弘文館)에 직숙하였던 응교(應敎) 기준(奇遵), 부수찬(副修撰) 심달원(沈達源)이었다. (이에 따라) 윤자임 등은 모두 옥에 갇혔다. 또 의금부에 명하여 우참찬(右參贊) 이자(李耔),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정(金凈), 대사헌(大司憲) 조광조
(趙光祖), 부제학(副提學) 김구(金絿), 대사성(大司成) 김식(金湜), 도승지(都承旨) 유인숙(柳仁淑), 좌부승지(左副承旨) 박세희(朴世熹), 우부승지(右副承旨) 홍언필(洪彦弼), 동부승지(同副承旨) 박훈(朴薰)을 잡아 가두게 하였다.
【이 뒤로 사관(史官)이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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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권37, 14년 11월 15일 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