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사람 김인범(金仁範)이 상소
하기를, “여씨향약
(呂氏鄕約)을 준행하여 풍속을 바꾸도록 하소서” 하니, 정원
에 전교하기를, “내가 함양 유생 김인범의 소
(疏)를 보건대, 초야의 한미한 사람으로 인심과 풍속이 날로 경박하게 되는 것을 탄식한 나머지, 천박한 풍속을 바꾸어 당우지치(唐虞之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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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 시대의 정치
를 회복하려는 것이니 그 뜻이 또한 가상하다. 근래 인심과 풍속이 달라진 것은 나 역시 걱정스러워 필경 어찌해야 할 것을 모르겠거니와 그 까닭을 따져보건대 어찌 연유가 없겠는가? 내가 박덕한 몸으로 조종(祖宗)의 통서(統緖)를 이어받은 지 12년이나 되건만, 선정(善政)이 아래에 미친 바 없고 허물만이 내 몸에 가득 쌓여서 민원(民冤)이 사무쳐 재변(災變)이 거듭되니, 박한 풍속을 고쳐 후한 풍속으로 돌리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이는 비록 나의 교화(敎化)가 밝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대신은 보필하는 지위에 있으니 그 책임이 어찌 중요하고 크지 않겠는가? 본원(本源)이 확립되지 못하면 말류(末流)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근본을 바로잡고 밝게 하는 일은 나와 경 등이 다 함께 맡아야 할 책무인 것이다. 어찌 크게 한번 혁신해서 만민의 모범이 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 등은 한낱 포의(布衣)의 오활한 말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풍속을 바꿀 방도를 강론해서 상하가 서로 힘쓰도록 하라. 그리하여 인심과 풍속이 모두 후하고 질박한 데로 돌아가서, 위로는 충후(忠厚)한 풍속이 있고 아래로는 탄식하는 소리가 없게 된다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하였다.
『중종실록』권28, 12년 6월 30일 갑술
동지중추부사 김안국
(金安國)이 아뢰기를, “신이 경상도 관찰사
가 되었을 때 그 도의 인심과 풍속을 보니 퇴폐함이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성상께서 풍속을 변화시킴에 뜻을 두시므로, 신이 그 지극하신 의도를 본받아 완악한 풍속을 변혁하고자 하는데, 가만히 그 방법을 생각해보니 옛사람의 책 중에서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을 택하여 거기에 언해(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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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된 원전에 한글 현토를 달거나, 한글로 번역함
를 붙여 도내에 반포하여 가르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이 책들을 수찬하기로 마음먹고 있으나 사무가 번잡하고 많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착오가 많을 것으로 봅니다. 지금 별도로 찬집청(撰集廳)을 설치하여 문적(文籍)을 인출하고 있으니, 이 책들을 다시 교정하여 팔도에 반포하게 하면 풍속 교화를 고취시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여씨향약
(呂氏鄕約)』이나 『정속(正俗)』같은 책은 곧 풍속을 순후하게 하는 책입니다. 『여씨향약
』이 비록 『성리대전(性理大全)』에 실려 있으나 주해(註解)가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신이 곧 그 언해를 상세하게 만들어 사람마다 보는 즉시 이해하게 하고, 『정속』 역시 언자(諺字)로 번역하였습니다. 농서(農書)와 잠서(蠶書) 등도 의식(衣食)에 대한 큰 정사이기 때문에 세종
조에 이어(俚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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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천한 말의 뜻으로, 여기서는 ‘한글’을 뜻함
로 번역하고 8도에서 개간(開刊)하였습니다. 지금 역시 농업을 힘쓰는 일에 뜻을 두기 때문에 신 또한 언해를 붙이게 되었고 『이륜행실(二倫行實)』은 신이 전에 승지(承旨)로 있을 때 개간을 청하였습니다. 삼강(三綱)이 중요함은 비록 어리석은 사람들도 모두 알거니와, 붕우형제(朋友兄弟)의 윤리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하는 이가 있기 때문에 신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의하여 유별로 뽑아 엮어서 개간하였습니다. 『벽온방(辟瘟方)』 같은 것은 온역질(瘟疫疾)은 전염되기 쉽고 사람이 많이 그로 인해 죽기 때문에, 세종
조에서는 생명을 중히 여기고 아끼는 뜻에서 이를 이어(俚語)로 번역하여 경향에 인포(印布)하였는데, 지금은 희귀해졌기로 신이 또한 언해를 붙여 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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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진방(瘡疹方)』에 대해서는 이미 번역하여 개간하였으나 경향에 반포하지 않았으므로 요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병으로 죽기 때문에 신이 경상도로 갈 적에 이를 싸 가지고 가서 본도에서 간행하여 반포하였습니다. 바라건대 구급에 간편한 비방을 널리 반포하던 성종
조의 전례를 따라 많이 개간하여 널리 반포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경이 그 도에 있으면서 학교와 풍속을 변화시키는 일에 전심한다는 말을 듣고 가상히 여겼다. 또 아울러 이러한 책들을 엮어 가르친다 하는데, 이 책은 모두 풍교(風敎)에 관계되는 것이라 찬집청에 보내 개간하여 널리 반포하게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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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권32, 13년 4월 1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