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에 전지(傳旨)하기를, “평안도는 땅이 야인
과 연접하여 도적의 침해가 없는 해가 없다. (그런데) 믿는 것이라고는 단지 그 경계에 험한 장강(長江)을 끼고 있다는 것뿐이니 수비 방어의 대책을 마땅히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변의 각 고을은 산천이 막혀 궁벽하고 인구가 적어서 본래 토착해 있는 군사가 없다. (그래서) 만일 위급한 사태라도 터지면 남도에서 군병을 징발하기 때문에, 왕래하는 데 힘을 쓰고 사변에 대응도 늦다. 이 때문에 때를 놓치니 변경을 방비하고 적들을 제어하는 방법이 실로 조잡하다.
'야인' 관련자료
고사(古事)를 상고하건대, 힘이 세고 강한 자를 뽑아서 변방을 채우고, 이들을 토병(土兵)으로 삼아 향궁수(鄕弓手)라고 불렀다. (이들은) 적이 침입해 오면 싸우고, 적이 물러가면 농사를 지었다. 또 산천의 형세(形勢)를 속속들이 잘 알아서 대응하는 데 막힘이 없었으니, 이들을 숙호(熟戶)라고도 불렀다. 빠르고 용감함이 모든 군사 가운데 으뜸이어서 역대로 이에 힘입어 왔고, 모두 현저한 실효가 있었다.
이제 이를 본떠 인민을 옮겨 (평안도에) 이주시키고, 이들을 향병(鄕兵)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이는 실로 절실한 일이다. 다만 백성을 움직여 옮기는 일의 막중함 때문에 혹은 이를 어렵게 생각하는 자도 있다. 그 뜻도 역시 좋다. 그러나 오늘날 가까운 도적들이 소란을 일으켜 시도 때도 없이 약탈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변경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도에서) 군병을 징집하여 멀리 가게 하는 일도 폐단이 크다. 내가 가만히 이를 생각해 보니, 한때 옮겨 가는 노고만을 따져서 계속해서 미루고 시행하지 못한다면 장차 무궁한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그 완급(緩急)을 저울질하여 볼진대, (일의) 경중(輕重)은 분명하다. 비록 한 번에 다 옮기지는 못할지라도 점차 이주시켜 번성하도록 꾀한다면 어찌 그 방법이 없겠는가. (평안도에서) 경작하지 않는 땅의 넓고 좁은 것을 헤아리고 군정(軍丁)의 많고 적은 것을 계산하여 인민을 옮기고 변경을 견고하게 함으로써 북방의 우려를 해소하고 영구히 변방 강계(疆界)를 보전할 대책을 상세히 마련하여 계달하라” 하였다.
『세종실록』권67, 17년 3월 29일 신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