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문집』제5권 서(序)
『안동 권씨 가보
』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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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본래 신라의 종성(宗姓)
가 달려와 구원하여 견훤과 서로 버티고 있었는데, 김행이 여러 사람들과 도모하여 말하기를, “견훤은 의리상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이다. 어찌 왕공(王公)
를 맞이하여 항복하였다.
왕실의 성
인 김씨이다. 신라 말에 김행(金幸)이라는 이가 고창군(古昌郡)
신라 시대 안동의 옛 지명
을 맡아 다스리고 있었다. 당시에 견훤(甄萱)이 신라에 침입하여 왕을 시해하고 왕비를 능욕하자 고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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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왕건(王建)
에게 귀의하여 이 통분을 씻지 않겠는가” 하고, 마침내 고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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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고려 태조
가 말하기를, “김행은 기미에 밝고 권도(權道)에 통달하였다” 하고, 마침내 성을 권씨로 하사하고 태사(太師)를 제수한 다음 군을 식읍으로 삼아 주고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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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인행(仁幸)을 낳으니 벼슬이 낭중(郎中)에 이르렀다. 인행이 책(冊)을 낳으니, 책은 자청하여 본 고을의 아전이 되었다. 책이 균한(均漢)을 낳고, 균한이 자팽(子彭)을 낳고, 자팽이 선개(先蓋)를 낳고, 선개가 렴(廉)을 낳고, 렴이 이흥(利興)을 낳고, 이흥이 중시(仲時)를 낳았다.
중시는 두 아들을 두었으니, 수평(守平)과 수홍(守洪)이다. 수평은 벼슬이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고, 한림학사 위(韙)를 낳았다. 위가 첨의찬성(僉議贊成) 탄(坦)을 낳고, 탄이 정승(政丞) 문정공(文正公) 부(溥)를 낳으니, 지위가 재상에 이르고 문병(文柄)
대제학
을 담당하여 성대한 공렬이 당대의 으뜸이었다. 다섯 아들이 모두 군(君)에 봉해지니, 준(準)은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고, 고(皐)는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이고, 후(煦)는 계림군공(鷄林郡公)이고, 겸(謙)은 복안부원군(福安府院君)이며, 종정(宗頂)은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광복군(廣福君)이 되었으며, 세 사위도 모두 군(君)에 봉해져 당시에 ‘1가 9봉군[一家九封君]’으로 일컬어졌다. 수홍이 대장군(大將軍) 자여(子輿)를 낳고, 자여가 첨의평리(僉議評理) 이(頉)를 낳고, 이가 정승 문탄공(文坦公) 한공(漢功)을 낳았다. 권씨는 책이 아전이 된 후로 중간에 가세가 쇠퇴하여 7세 동안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하다가 수평에 이르러 다시 일어나 자손들이 그 아름다움을 이어 나가더니 문정공에 이르러 비로소 크게 현달하였으며, 수홍의 후손으로는 문탄공이 역시 현달하였다. 이에 권씨는 마침내 나뉘어 두 대족(大族)이 되었다. 오늘날 권씨 성을 가진 벼슬아치로 조정에 포진해 있는 이들이 무려 수천에 달하는데, 모두 이 두 대족의 지파(支派)이다. 나의 외조부인 양촌(陽村)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
역시 문정공의 증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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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가 비로소 가보
를 소첩(小牒)으로 정리하고, 그 아들 길창(吉昌)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 선고(先考)의 유지를 이어 두루 수소문하고 탐방하여 대대적으로 보완하고 다듬었으나 또한 마무리를 짓지는 못하였다. 내가 족성(族姓)인 상주 판관(商州判官) 박원창(朴元昌), 대구 부사(大丘府使) 최호원(崔灝元)과 함께 더 찾고 물어서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 미덥지 못한 부분을 증명하여 도보(圖譜) 2권을 정리해 만들었다. 이 도보는 문정공과 문탄공 이하에 대해서는 상세한 반면 그 윗대에 대해서는 소략하니, 알 수 있는 것은 기록하고 알 수 없는 것은 빠진 채로 두어 후세에 신뢰를 전하려고 할 뿐이다. 도보가 완성되자 경상 감사
윤공(尹公) 호(壕)에게 부탁하여 안동부(安東府)에서 간행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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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건대, 옛날에는 종법
(宗法)이 있어서 소목(昭穆)1)
의 차서를 정하고 지손(支孫)과 서손(庶孫)을 구별하여 자손이 백세(百世)를 가더라도 상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종법
이 없어지고 보첩(譜牒)
이 생겨난 뒤로는 모든 보첩
들은 반드시 시조(始祖)에 근본을 두고 세계(世系)가 나뉜 분기점을 자세히 기록하여 지파(支派)를 명시하고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였으니, 그래도 은의(恩誼)를 돈독히 하고 윤리를 정립하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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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목(昭穆) :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 줄은 소(昭), 오른쪽 줄은 목(穆)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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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와 당나라 이전에는 도보국(圖譜局)을 두고 찬술을 관장하게 하여 혼인하는 것과 과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모두 보첩
과 관계가 있었다. 지금 중국은 위로 공경대부(公卿大夫)로부터 아래로 세력이 없는 외로운 집안에 이르기까지 또한 보첩
을 두지 않은 집안이 없어, 위로 당요(唐堯)와 우순(虞舜)과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때 처음 봉해진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조를 삼고, 비록 고신(高辛)·신농(神農)·전욱(顓頊)과 같이 먼 전설적 인물이라도 모두 하나하나 연결하고 이어서 그 보계(譜系)의 서열을 매기니, 어찌 도첩이 전해져 상고할 수 있게 된 덕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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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방은 예부터 종법
도 없고 보첩
도 없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문벌이 좋고 번성한 집안이라 해도 가승(家乘)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보니 겨우 몇 대만 내려가도 고조와 증조와 조부와 선고(先考)의 이름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되고, 자손들은 점차 서로 관계가 멀어져 혹 시마복(緦麻服)이나 소공복(小功服)을 입어야 하는 친척을 알아보지 못하여 길에서 만난 사람처럼 보니, 어찌 상복을 입는 촌수가 다 끝난 친척과 봉사(奉祀)하는 대수가 다 끝난 조상이 된 뒤에야 소원해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고서야 효제(孝悌)를 일으키고 예양(禮讓)을 이루고자 한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이것이 우리 문경공과 익평공이 정성을 쏟아 보첩
을 저술하고 내가 힘써 그 뜻을 완성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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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태사(太師)가 처음 봉해진 때부터 지금 600년에 이르렀는데, 자손의 번성과 가학(家學)의 은택이 유구한 세월 동안 다하지 않았으니, 대개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반드시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근원이 먼 물은 흐름이 더욱 길게 마련인 것은 필연적인 이치라 하겠다.
아, 예부터 이름난 집안의 빛나는 후손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고관대작이 대대로 이어져 문벌이 찬란하게 된다면 어느 누군들 흠모할 만하고 존경할 만한 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몇 대도 전하지 못하여 가문이 기울고 엎어져 멸절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선세(先世)의 봉식(封植)이 견고하지 못한데 자손이 이내 교만과 사치를 부려 유업(遺業)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권씨는 대대로 청렴하고 깨끗함으로 가풍을 전하고 충성과 효도로 마음을 삼아 왔으니, 자손들은 조종(祖宗)이 쌓아 온 근면함을 염두에 두어 계속 이어 갈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사람의 도는 부모를 친히 하는 것이다. 부모를 친히 하기 때문에 조상을 높이고, 조상을 높이기 때문에 종통(宗統)을 공경하고 종통을 공경하기 때문에 종족을 거둔다.” 하였다. 만약 부모를 친히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구족(九族)에까지 확대해 나간다면 근본을 두터이 하고 말단을 돈독하게 하는 것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너의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말아서 그 덕을 닦을지어다(無忝爾祖 聿修厥德).” 하였다.2)
나는 다시 권씨의 자손을 위하여 힘쓴다.3)
2)
너의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말아서 그 덕을 닦을지어다(無忝爾祖 聿修厥德). : 『시경』「문왕(文王)」에 나오는 구절인데, 대본의 ‘無忝(무첨)’이 『시경』에는 ‘無念(무념)’으로 되어 있다. ‘無念’의 용법은 ‘豈得無念(기득무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의 뜻이 아니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긍정의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긍정적 의미인 ‘念(념)’자를 부정적 의미인 ‘忝(첨)’자로 바꿔 인용하였으므로 ‘어찌 더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豈得無忝). ’로 보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럽히지 말라’는 금지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가문집』권5, 서, 안동권씨가보서
- 소목(昭穆) :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 줄은 소(昭), 오른쪽 줄은 목(穆)이라고 함.
- 너의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말아서 그 덕을 닦을지어다(無忝爾祖 聿修厥德). : 『시경』「문왕(文王)」에 나오는 구절인데, 대본의 ‘無忝(무첨)’이 『시경』에는 ‘無念(무념)’으로 되어 있다. ‘無念’의 용법은 ‘豈得無念(기득무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부정의 뜻이 아니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강한 긍정의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긍정적 의미인 ‘念(념)’자를 부정적 의미인 ‘忝(첨)’자로 바꿔 인용하였으므로 ‘어찌 더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豈得無忝). ’로 보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럽히지 말라’는 금지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어떠한 책에는 끝마무리에 ‘1476년(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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