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대부공조판서대제학지춘추관사겸성균대사성(正憲大夫工曹判書集賢殿大提學知經筵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 신 정인지
(鄭麟趾) 등은 진실로 황공해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삼가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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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건대, 새 도끼 자루를 만들 때에는 헌 도끼 자루를 보고 표준으로 삼으며 뒤에 가는 수레는 앞에 가는 수레를 보고 거울로 삼아 조심한다고 합니다. 대개 이전 시기 나라들의 흥망은 실로 장래의 감계(鑑誡)가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엮어서 주상전하께 올리는 바입니다.
고려 왕씨는 태봉국에서 일어나 신라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멸망시켜 삼한을 합하여 한 집안으로 만들었으며, 요를 버리고 〈후〉당을 섬기며 중국을 존중하고 동쪽 땅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번거롭고 가혹했던 정치를 개혁하고 원대한 규모를 넓히게 되었는데, 광종
(光宗)은 직접 과장(科場)에 나아가 선비들을 시험보아 유풍(儒風)이 점차 일어났으며, 성종
(成宗)은 종묘와 사직을 세움으로써 통치 기구가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목종
(穆宗)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국운이 거의 위태롭게 되었다가 현종
(顯宗)이 중흥의 공을 이루어 종묘와 사직이 다시 안정되었습니다. 문종
(文宗)은 태평을 누리도록 정치를 잘 하여 문물제도가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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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대 왕들이 어리석고 어두워서 권력 있는 신하가 전횡을 하고 병권을 잡아 왕위를 엿보게까지 되었으니, 인종
(仁宗) 때 이러한 일이 한번 벌어지자 순리를 범하고 신하가 정권을 잡는 일이 발생하고, 의종(毅宗) 때에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흉악한 간신이 번갈아 일어나서 임금을 앉히기를 바둑이나 장기 두듯이 마음대로 했으며, 강한 외적들이 번갈아 침입하여 백성을 죽이기를 지푸라기 베듯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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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원종
(元宗)이 위태롭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큰 난을 평정하여 겨우 왕업을 보존할 수 있었는데, 충렬왕
(忠烈王)은 자기가 총애하는 신하들만 가까이하고 연회와 놀이를 일삼다가 결국 부자간에 불화가 일어나기까지 되었으며, 또한 충숙왕(忠肅王) 이후 공민왕
(恭愍王) 때에 이르기까지 변고가 여러 번 일어나서 나라가 점점 더 쇠약해졌으며, 국가의 근본은 다시 위조(僞朝)인 신우(辛禑)·신창(辛昌) 때에 더욱 위태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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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마침내 참된 주인에게 돌아가니, 우리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
의 용맹과 지혜는 하늘이 주었으며 덕업(德業)은 나날이 새로워져 신성한 무력을 펼쳐서 전란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천명을 부여 받아 왕위에 오르시어 국가를 창건하셨습니다. 돌아보건대 고려의 사직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그 역사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사관
(史官)들에게 명하여 붓을 들게 하였는데, 그 체제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편년체를 모방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태종
께서 왕위를 이어 받으시고 재상들에게 수정 사업을 맡겼으나 필자들이 여러 사람이 되면서 책은 결국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태조(太祖) 강헌대왕(康獻大王)'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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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 장헌대왕(莊憲大王)
께서는 선왕의 뜻을 이어받아 문화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편찬하는 이들에게는 모름지기 모든 서술이 구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다시 사국(史局)을 열어 이를 편찬하도록 거듭 명하셨습니다. 그 전의 서술들은 차례가 정밀하지 못하고 또한 누락된 것이 많았으며, 더욱이 편년체는 본기(本紀), 열전(列傳), 연표(年表), 지(志)의 서술방식과는 차이가 있어 사실의 서술이 그 본말(本末)과 시종(始終)을 알 수 없게 되어 있어, 임금께서 다시 어리석은 저에게 편찬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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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는 모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준하고, 기본 방향들은 다 직접 전하께 아뢰어 결정을 받았습니다. 본기(本紀)라는 이름을 피하고 세가(世家)라고 한 것은 명분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신우와 신창을 세가에 넣지 않고 열전으로 내린 것은 그들이 참람하게 왕위를 도둑질한 사실을 엄히 논죄하려는 것입니다. 충신과 간신, 부정한 자와 공정한 사람들은 내용별로 나누어 서술했으며, 제도 문물은 각각 그 종류에 따라 분류해 놓았으니, 계통은 문란하지 않게 되었으며 연대도 상고해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적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상세하고 명확하게 하고, 누락된 것과 잘못된 것은 반드시 보충하고 바로잡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책을 완성하여 활자로 출판하기 전에 주상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신 정인지
등은 진실로 황공하고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공경히 생각하옵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나라의 원대한 계책을 이어 받으시어 선대 임금들의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하고 계시면서, 오직 정밀하고 하나같은 마음으로 성학(聖學)은 높은 경지에 이르셨고, 위대한 현명함을 크게 계승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선대의 업적을 발전시키고 계십니다. 전 왕조의 역사가 아직 성취하지 못함을 생각하시어 미천한 신들로 하여금 완성시킬 책임을 맡기시니 신 정인지 등은 얕은 재주로서 외람되이 극진한 책무를 부여받아 민간의 풍문과 소문을 수집하던 말단 관원의 잡록(雜錄)을 수집하기도 하고, 비부(祕府)의 옛 장서들을 들추어서 3년간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한 왕조의 역사를 완성하였습니다. 전대(前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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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의 남긴 사적을 참고하고, 겨우 필삭(筆削)의 공정을 기하여 역사의 밝은 거울을 후대 사람들에게 보이며 선악의 사실들을 영원히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편찬한 『고려사』는 세가 46권, 지 39권, 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모두 139권입니다. 삼가 초고 한 질을 완성하여 전문과 함께 올립니다. 지극히 간절하고 두려운 마음을 이길 수가 없으나, 신 정인지
등은 황송히 머리를 조아려 삼가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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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진고려사전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