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옛날의 한 언어가 서로 다른 변화를 입어 여러 언어로 갈라진 예들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한 祖語에서 나뉜 언어들은 親族關係에 있다, 系統이 같다고 하며 친족관계가 밝혀진 언어들은 한 語族으로 묶이게 된다. 이것은 주로 19세기 초엽부터 인도와 유럽에 걸친 많은 언어들의 비교 연구에 의해서 인도·유럽어족이 확립되면서 형성된 이론이다. 이 연구에 힘을 얻어 세계의 다른 지역의 언어들도 어족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왔지만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인도·유럽어족의 경우처럼 여러 가지 혜택된 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어의 경우도 이중의 하나였다. 한국어와 친족관계에 있다고, 한 조어에서 갈리어 나왔다고 분명히 증명할 수 있는 언어 또는 언어들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한국어의 존재는 19세기에 서유럽에 알려졌는데, 처음으로 한국어에 접한 학자들은 우랄·알타이제어(Ural-Altaic)에서 볼 수 있는 몇몇 특징을 한국어에서도 발견하여 한국어의 우랄·알타이 계통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503)20세기에 들어 우랄 어족과 알타이 어족이 나뉘면서 알타이 계통설이 되었다. 그 특징이란 저 위에서(제2장) 거론한 모음조화와 문법적 교착성이었다. 이런 큰 특징의 공유가 친족관계의 좋은 밑바탕이 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친족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 친족관계의 증명은 더욱 구체적인 사실들의 일치를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 19세기에 알타이제어의 비교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이들과 한국어의 비교 연구는 20세기의 2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 동안 이 연구에 헌신하여 온 학자들은 적지 않은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 왔으며 이제는 한국어를 포함한 알타이어족이 성립된 것으로 믿기에 이르렀다.504)대표적인 학자로 G. J. Ramstedt와 N. Poppe를 들 수 있다. G. J. Ramstedt, Studies in Korean Etymology(Helsinki, 1949);Einführung in die altaische Sprachwissenschaft Ⅰ-Ⅱ(1952∼1957, Helsinki). N. poppe, Vergleichende Grammatik der altaischen Sprachen(1960, Wiesbaden);Introduction to Altaic Linguistics(1965, Wiesbaden). 그러나 이에 대한 회의론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음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성과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에는 모자라는 점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언어의 비교 연구는 고대 문헌 자료가 풍부하고 그 언어들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잘 이루어질 수 있는데, 알타이제어와 한국어는 고대 자료가 극히 적은 데다가 구조가 단순하여 비교 연구에 불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구조의 일치일수록 우연성이 적고 따라서 證明力이 큰 법인데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에서는 이런 일치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증명력이 큰 사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서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의 문법에서 하나하나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몇 형태가 모여서 이루는 구조는 매우 특수할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알타이제어의 문법에서 動名詞는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동사의 활용형들을 분석해 보면 대개 동명사형을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알타이제어에서 동명사의 어미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 ①-r, ②-m, ③-n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여기서 이들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할 수밖에 없으므로 간략하게 말하면 기원적으로 ①은 미래, ②는 현재, ③은 과거를 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도 이 셋이 모두 확인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②만이 명사형 어미로 쓰이고(‘자다’, ‘먹다’에서 ‘잠’, ‘먹음’과 같은 동명사를 만들 수 있음) ①과 ③은 관형사형 어미로 쓰이고 있다. ‘잘 사람’, ‘먹을 밥’, ‘잔 사람’, ‘먹은 밥’. 그러나 중세한국어에서는 ①과 ③도 명사형 어미로 쓰인 예가 발견되며 이들도 기원적으로는 동명사 어미였음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이 동명사 어미들은 하나하나의 일치도 중요하지만, 셋이 이루는 구조가 일치하는 사실은 우연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인상적인 일치를 드러내기에 한층 더 큰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족관계는 확립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국어는 알타이제어 중에서도 퉁구스어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관계를 생각할 때마다 고구려어 자료가 좀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오늘날 전하는 고구려어 자료가 퉁구스어와 가까운 일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구려어는 퉁구스어와 신라어 사이에서 이들을 이어 주는 고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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