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Ⅱ. 대외관계
  • 2. 5대 및 송과의 관계
  • 2) 송과의 관계
  • (4) 경제적 관계

(4) 경제적 관계

 고려와 송과의 관계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정치적 관계를 맺다가 뒤에는 북방민족의 흥기의 영향으로 경제적 관계가 주종을 이루게 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통상권은 이미 唐代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당이 멸망하자 華夷의 세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경제적 변화도 상당히 큰 것이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중국 연해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해상의 활동이 활발하여져서 국제시장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과거 어느 시대보다 민간무역이 성행하게 되었다.

 송은 당의 정책을 계승하여 通商管理의 기구를 정비하여 무역의 진흥을 도모하였다. 그러면 송이 개국초부터 중앙집권적 전제정치 아래의 경제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중상정책을 채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중앙집권적 전제정치 아래서는 중농정책이 제1차적인 것이다. 그러나 송은 개국초부터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기 위한 출정에 소요되는 전쟁비용 등 비상지출비를 조달할 목적에서 중상주의를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중농정책에 입각하여 농민만을 대상으로 징수하는 세입에만 의존한다면 비상지출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송은 국가에서 상인들의 상업활동을 보호 내지 장려해 주는 대가로 세금을 부담케 하여 농민을 대상으로 징수하는 세입의 부족을 보충하고자595)徐炳國, 앞의 글, 68∼69쪽. 송 태조 때부터 商稅의 規例를 정하고 西南諸國과도 교역을 활발히 하였다. 특히 大食國(아라비아)·闍婆(자바) 등은 대표적인 교역국이었다. 이에 따라 廣州·明州·杭州 등의 남중국 연해항들을 무역항으로 지정하여 市舶司를 설치하고 관세의 징수와 香藥 등 귀중품의 전매를 담당하게 하여 국가재정을 보충하도록 하였다.

 송의 무역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서 11세기에는 재정정책상 적극적으로 무역진흥을 도모하여 후반기에는 때때로 商船에 의탁하여 고려에 서신을 보내어 통교를 요청할 정도였다.596)≪高麗史≫권 15, 世家 15, 인종 9년 3월·16년 3월. 11세기 후반, 송의 神宗은 王安石을 등용하여 靑苗法·均輸法·市易法·茶法 등의 새로운 세법을 만들어 국고를 충실히 하고 국내산업을 발달시켜 大商人들의 판로를 국내에서 해외로까지 확장시키는데 주력하였다. 12세기 중엽인 남송시대에 들어와서는 특히 국가재정의 기대를 크게 가지고 무역을 장려하여 항주·泉州 등은 활발한 교역량으로 세계 굴지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송과 고려와의 무역은 활발해졌는데, 고려와 송과의 무역은 크게 조공무역과 민간무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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