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의하면, 고려 후기에도 몇 가지 지도가 제작되었다. 李詹의 삼국지도, 羅興儒의 고려지도와 중국지도, 그리고 제작자가 전해지지 않은 고려도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지도들은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그것들이 고려 후기에 제작된 지도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들과 조선 초기의 지도와 그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고려 후기에는 고려와 중국·일본·인도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지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아랍지역과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대한 지도적 지식이 비교적 정확히 알려져 있었다고 보여진다.
11세기 무렵까지 고려의 지도제작자들은 우리 나라 지도의 윤곽과 지형을 대체로 정확하게 그려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 이르면서 고려의 지도는 정확성이 한층 높아졌다.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그려진 지도들과 조선 초에 李薈가 만든 八道圖는 이 사실을 밝혀주는 실증적 자료로 들 수 있다. 명대에 출판된 羅洪先의 廣輿圖는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의 朱思本의 輿地圖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데, 거기 들어 있는 조선지도는 13세기 이전의 고려지도의 한 사본에서 옮긴 것이다. 그리고 조선 초에 이회가 그린 조선지도는 고려 후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나흥유가 제작했다는 고려지도도 이런 것과 비슷했으리라고 생각된다.0416) 全相運,≪韓國科學技術史≫(正音社, 1976), 299∼302쪽.
≪東文選≫三國圖 後序에 설명된 고려지도는 이 지도들과 대체로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조선 태조 5년(1396)에 씌어진 이 글은 고려지도의 내용을 잘 전해주고 있다. 이 글에 의하면, 일찍부터 고려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려의 전체적인 영역이 그려진 것이며, 산맥과 산 그리고 하천들이 자세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산맥은 백두산으로부터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는 큰 줄기가 있고, 산 하나하나와 산맥의 높고 험준한 것이 나타나도록 그려져 있다고 했다. 하천은 주로 서해안의 큰 하천들만 묘사되어 있다고 하고, 이름난 하천들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그렸다고 했다. 또 이 기록에는 “그윽하고 묘한 곳과 산천의 왕성한 기운이 모여 있는 곳을 지도에서 잘 볼 수 있다”고 하고, 행정구역과 주요한 도시와 부락들의 위치가 잘 그려졌다고 설명되어 있다.
고려의 지도는 후기에 이르러 그 정밀도가 훨씬 높아졌다. 지도 윤곽은 거의 완전하게 잡혔고, 지형 묘사와 도시들의 위치도 정확해졌다. 조선 태종 2년(1402)에 이회가 완성한 조선지도는 고려 후기의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그 지도는 바다와 산·하천·도읍 등에 채색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채색법과 색갈은 중국의 것과 달리 한국의 전통적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럽고 맑은 색이었음에 틀림없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말(14세기 중엽)의 저명한 지도제작자였던 나흥유는 고려지도와 중국지도 등 여러 지도를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중국지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설명이 없으나, 거기에는 중국 역대 왕조들의 흥망과 국경의 변천에 대하여 씌여져 있다고 한다. 고려의 학자들은 이 지도를 통해서 고려 이외의 또 다른 세계를 그려볼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의 넓은 땅에 대한 여러 가지 지리적 지식을 이 지도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고려에도 동양 중세의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여 그려진 天竺國圖 즉 인도지도가 있었다. 당의 玄獎(602∼664)이 약 15년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쓴 여행기인≪大唐西域記≫에 의하여 尹誧가 만든 五天竺國圖가 그것이다. 윤보의 인도지도는 고려사람들로 하여금 종래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시야를 인도와 중앙아시아에까지 넓힐 수 있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고려학자들이 생각한 세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늦어도 고려 후기까지는 성립되었다고 믿어지는 세계지도로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지리학자들은 세계를 하나의 둥근 원 안에 그렸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많이 만들어진 天下圖라는 이름의 세계지도는 그러한 고려사람들의 지리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흔히 바퀴 모양 세계지도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이런 종류의 지도는 아랍세계의 지도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있으나 중국에서는 비슷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지도는 고려사람들이 만든 독특한 세계지도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를 중국을 가장 큰 대륙으로 보고 인도와 서역을, 그리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바다 위에 묘사하고 있다. 그 세계는 하나의 원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0417) 李 燦,≪韓國의 古地圖≫(汎友社, 1991), 318∼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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