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여민락으로 보이는 악곡은<신증금보>에 보인다. 그 여민락은 띄어쓰기에 의하여<이수보>의 영산회상이나 보허자처럼 1행이 4대강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고, 각 대강의 첫 음은 역시 ‘스렝’ 또는 ‘사랭’으로 되어서 그 선율의 특징이 앞의 두 악곡과 아주 비슷하다.
초기 풍류 여민락은 전10장을 구비하였고, 그 기록된 음표수가 일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템포의 변화(후대의 악곡에서 발견되는 것)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민락은 이후≪한금신보≫·≪어은보≫로 이어지면서 차츰 間音이 많아지는 변화를 겪는다.0939)李惠求, 앞의 책, 119쪽 악보참조.
이상 살펴본 영산회상·보허자·여민락 등의 조선 중기 풍류악곡들은 공통적인 발달양상을 보인다.
즉 거의 같은 시기에 궁정악곡에서 민간 풍류음악으로 정착된 이 악곡들은 그 선율이 공통적으로 간단한 한문사설의 노래에서 발전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또한 세 악곡은 박자와 장단구조가 완전히 동일하게 되었다. 이 세 악곡은 또한 후대로 전승되면서 공통적으로 선율이 번다해지고 간음이 많아졌으며 그 빠르기도 느리게 변화하였다.
영산회상·보허자·여민락은 궁정음악으로 면면히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지속적으로 애호된 대표적 풍류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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