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이르러 산업이 발달하면서 상품의 유통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더구나 이 시기에 와서 性理學이 향촌사회의 서민들에게까지 침투되었으므로≪朱子家禮≫에 의한 冠婚喪祭가 보편화되었다. 따라서 鹽藏 처리한 祭需用品으로서의 수산물 유통은 더욱 활기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농업기술 발달에 따른 미곡 생산량 증대는 상대적으로 쌀밥의 소비를 촉진시켜, 필연적으로 부식물로서의 수산품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켰다. 한편 조선 말기에 가까울수록 통치력이 약화되어 治山治水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서 흉년이 빈발하여 구황의 필요성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황 등에 있어서 큰 구실을 하는 소금의 유통량은 더욱 늘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금의 유통 상황을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