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사회의 제반 모순을 개혁하고자 하는 실학자들은 군사와 관련된 각종 개혁론을 제시했다. 실학자들은 군사제도가 왕도정치의 유지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무력적 장치임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 개혁론을 제시하게 된 배경에는 군역의 부담으로 고통받고 있는 民人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두 차례의 전란을 겪은 후에도 전쟁에 관한 대비책이 전무한 국가현실에 대한 비판이 작용했으며 국가와 국토에 대한 방위의식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
실학자들은 국가의 상비전력을 강화하고 민중수탈의 제도로 전락한 군정을 바로잡고자 했다. 여기에서 그들이 제시한 군사조직 개혁론에는 우선 병농일치적 군정으로의 개혁을 들 수 있다.451)姜萬吉,<軍制改革을 통해본 實學의 性格>(≪東方學志≫22, 1979), 158∼161쪽. 정약용·홍대용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농업생산력에 의존하여 군제를 개혁하고자 하는 것으로 농업 내지 토지제도와 군사분야를 통합 운영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개혁론은 조선 초기에서 실시되었던 五衛制에서의 병농일치적 군정과는 구별된다. 즉 종래의 것이 징병제의 원칙에 따라 의무동원이나 강제부담을 감수하도록 요구되었지만, 이들의 개혁안은 농지소유권의 보장에 따른 반대급부로서 의무병역을 주장한 것이었다.452)趙 珖,<實學者의 國防意識>(≪朝鮮後期 國防體制의 諸問題≫, 國史編纂委員會, 1981), 270∼272쪽.
또한 군사조직의 개혁론으로는 收布制에 기반을 둔 五軍營制를 부정하고, 민중의 군포부담을 줄이는 방향에서 전개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홍대용의 경우는 향촌제도의 전반적인 개혁과 관련하여 군최고통수권자를 정점으로 하여 지휘체계가 완비된 새로운 군사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8도의 국방을 담당할 백만대군의 양성을 주장했다.453)趙禎基,<湛軒 洪大容의 國防論>(≪慶南史學≫3, 1986), 16∼18쪽. 홍대용뿐만 아니라 실학자들은 대체적으로 향촌제도와 토지제도의 재편성을 통한 군사조직의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한편 군사조직 부분에 대해서는 독특하게도 홍대용이 특수병과의 설치에 관한 의견과 특수병과를 관장하는 참모직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발상은 군사사상상 진일보한 형태의 것이었다.454)趙 珖, 앞의 글(1981), 272쪽.
실학자들은 국가의 상비전력을 강화하고, 민중수탈의 제도로 전락한 군정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정책 개혁론을 제시했다. 그들이 제시했던 군사정책 개혁론 가운데 良役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표현되었다. 실학자들은 양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여 군역을 부담하는 연령층의 폭을 좁히는 문제를 생각했다. 또 大戰略的 차원에서 군사제도의 개편론에 접근하였고, 토지제도 개혁론을 비롯한 다른 개혁론은 군사조직의 유지 강화를 위한 방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실학자들은 군비염출 방법에 대해서 신분병역제의 원칙을 적용 받아 양인들만이 군포를 부담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들은 군포를 戶布制나 口錢制로 바꾸어 신분차별 없이 모두가 군사비용을 부담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천인의 군역부담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양반의 군역부담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정약용은 종전의 身布制를 호포제로 전환하여 양반도 군역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약용의 주장은 병역이란 단순히 하위의 신분층이 부담해야 할 신역의 일종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의무임을 밝혀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군역을 신분적 예속물에서부터 해방시켰다.
요컨대 실학자들은 국왕을 사회개혁의 중심축으로 파악하고 왕권의 강화를 기도했다. 그들은 이상적인 정치구조를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보고 있으며, 그 정치구조를 움직이는 주체는 대체로 국왕 및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관료로 설정했다. 그리고 관료를 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존의 과거제에 새로이 천거제를 추가하는 형태를 제시했다. 이러한 권력구조 및 관료제 개혁론의 제시는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비판의식에 토대한 것으로, 사회·경제분야에서의 개혁론의 실시를 위한 전제로서 이루어졌다. 실학자들은 당시 사회에서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민생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었던 군사제도의 개편을 주장했다. 그들은 양역의 형태로 부과되던 군포를 신분과 상관없이 호포제 등의 형식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군사조직과 군사운영에 있어서도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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