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3. 국학의 발달
  • 2) 언어학
  • (3) 근대국어의 변화
  • 라. 문법체계

라. 문법체계

 근대국어의 문법체계는 후기 중세국어와 비교하여 볼 때, 간소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이전의 복잡한 체계가 좀더 간단한 새로운 체계로 변화하였다. 그 몇 가지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중세국어의 접미사 및 첨사의 복잡한 체계가 간소화되었다. 즉 다양한 교체형을 가진 이형태가 줄어들면서 그 체계가 간소화되게 된 것이다. ② 이른바 의도법의 ‘-오/우-’가 없어졌다. 중세국어에서는 동사의 어간에 ‘-오/우-’를 개입시켜 화자의 의도를 보였던 것이 근대국어에 와서 사라지게 되었다. ③ 중세국어에서 경어법이 존경법·겸양법·공손법 체계이었던 것이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바뀌었다. 중세국어에서는 존경법을 나타내는 ‘-시-’와 겸양법 표시의 ‘--’ 그리고 공손법을 보이는 ‘--’가 있었지만, 근대국어에서는 겸양법이 공손법에 합류되었다. 그래서 중세국어의 겸양법과 공손법의 결합인 ‘-이다’는 근대국어에서 ‘이다’나 ‘이다’로 표기되지만, 이들은 모두 공손법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④ 중세국어에서 존칭체언에 통합되던 ‘-ㅅ’이 속격조사로서의 기능을 잃고 단지 복합어 표지로서만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 ‘-ㅅ’은 근대국어에 와서 존칭표시의 기능을 잃어버림으로써 존칭체언 아래에도 ‘-의’가 연결되고, 무정체언에 연결되던 ‘-ㅅ’만이 남아서 속격조사로서의 기능을 잃고 단지 복합어를 나타내는 표지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⑤ 명사화소 ‘-기’가 일반화되었다. 중세국어에서는 명사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동사어간에 ‘-음’을 연결하였던 것이었는데, 근대국어에서는 ‘-음’은 그 기능을 ‘-기’에 넘기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음’과 ‘-기’는 그 기능을 달리하게 되었다. 즉 형태론적인 기능은 ‘-기’가 통사론적인 기능은 ‘-음’이 맡게 되었다. 현대국어에 와서는 이 기능들도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⑥ 기존에 있던 조사의 형태가 소멸하였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여격조사 ‘(-의/-ㅅ)그’, ‘(-의/-ㅅ)거긔’
  비교조사 ‘-도곤’
  호격조사 ‘-하’
  고대국어부터 중세국어에 이르기까지 호격조사가 평칭체언에는 ‘-아’, 존칭체언에는 ‘-하’가 연결되었으나, 근대국어에 와서 ‘-하’는 점차로 사라지게 되고, 존칭체언에도 ‘-아’가 연결됨으로써 ‘-하’는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⑦ 새로운 조사의 형태가 출현하였다. 그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주격조사 ‘-가’, ‘-겨오셔’, ‘-로셔’, ‘-이셔’
  비교조사 ‘-보다(가)’ 등
  중세국어에서는 주격조사로서 ‘-이, -ㅣ, φ’ 등이 있었지만, ‘-φ’는 사라지고, 이 자리에 ‘-가’가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로 현대국어에서 자음 아래에는 ‘-이’, 그리고 모음 아래에는 ‘-가’가 나타나게 되었다. ⑧ 기존 조사의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형태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탈격기능의 ‘-으로셔’가 자격표시의 기능으로 변화
  탈격기능의 ‘-셔’가 주격기능으로 변화
  속격조사 ‘-ㅅ’이 존칭표시의 기능 상실 ⑨ 중세국어에 보였던 동사어간의 유리적 성격이 없어졌다. 예컨대 ‘눈 디니이다’는 후대에 ‘눈 더니이다’로 표기되는데, 이것은 ‘’이 지니고 있던 부사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⑩ 이른바 이중주어문 가운데 두번째 명사구가 교호적 자질을 지닌 용언어휘에 통합될 때에는 두번째 주어구문의 조사는 공동격조사로 변화하였다. 예컨대 ‘다, 다다’ 등은 “NP이 NP이 다(다다)”의 문장구성을 가지는데, 근대국어에 와서 이들은 “NP이 NP와 다(다다)”로 변화하였다. ⑪ 19세기 말에 인칭대명사의 1인칭에 겸칭인 ‘저’가 발생하였다. 이 ‘저’는 중세국어에서 재귀대명사로 사용되던 ‘저’가 전용된 것으로 보인다. ⑫ 이 시기에는 국어의 피동법과 사동법 중에서 이른바 장형피동·장형사동이라는 ‘-어 디(지)다’와 ‘-게 다’가 매우 생산적으로 사용되어서, 현대국어에 이어지게 되었다.504)홍종선 엮음,≪근대국어 문법의 이해≫(박이정, 1998). ⑬ 시제의 선어말어미 ‘-겟-’이 등장하였다. 이 ‘-겟-’은 19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사역형인 ‘-게 엿’의 ‘’가 생략되어 ‘-게엿’이 되고 다시 모음충돌로 ‘여’가 탈락하여 ‘-겟’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선어말어미 ‘-리-’와 함께, 추정과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점차 미래시제를 표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추정과 의도표시의 ‘-리-’는 미래표시의 어미로 변화하지 못하였다.505)허 웅,≪국어 때매김법의 변천사≫(샘문화사, 1987). ⑭ 근대국어의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이른바 후치사의 격지배변동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예:-를브터>-으로브터, -를조차>-으로조차, -를>-으로, -를더브러>-으로더브러>-와더브러 등). 이들은 대부분 타동사로부터 문법화된 후치사들이다. 그래서 중세국어에서는 대격조사를 지배하였지만, 이들 동사가 완전히 문법화됨으로써 타동사적 성격을 상실하게 되면서부터 격지배의 변동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로 대격조사를 버리고 조격조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원래 심층구조상에서 복문적 구조를 가지던 것이 단문적 구조를 가지는 문장으로 변화하는 기제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즉 [NP1이 NP2를 VP] S1 + 어 + [NP1이 VP] S2의 구조를 NP1이 NP2로 VP의 구조로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국어에서부터 비롯되었지만, 완성된 시기는 근대국어에서였다.506)홍윤표,≪근대국어 연구 I≫(태학사, 1994). ⑮ 어순의 변화 및 문장구조의 변화로 조사의 기능에 영향을 준 것으로 ‘-셔’를 들 수 있다. 탈격기능의 ‘-셔’는 주로 NP1이 NP2셔 V(특히 ‘나다’)의 어순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국어에 와서 NP2셔 NP1 V의 구조로 바뀌게 된다. 즉 행동주가 문장의 앞에 와서 주어가 되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문장구조 유형과 근대국어의 문장구조 유형상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 결과 탈격기능의 ‘-셔’가 주격기능을 보이게 된 것이다. 현대국어에서 ‘-께서’와 통합되는 동사들의 대부분이 동작동사인 점도 근대국어에서의 이러한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셔’가 어느 지정된 인물에 한하여 붙여지는 현상도 이러한 문장구조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16) 근대국어에서 속격조사는 ‘-의’가 아닌 ‘-에’로도 표기되어, 현대국어에서 속격조사 ‘-의’를 ‘-에’로 발음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엣’>‘-에’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근대국어에서 속격조사를 ‘-에’로 표기한 대부분의 예들은 NP1엣 NP2의 구조를 보이는 것들이었다(예: 귀옛골희>귀예골희>귀골희, 南道엣 사>南道에 사 등). 그리고 이 ‘-엣’은 그 의미에서 ‘소유·소재’를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엣’이 소유와 소재의 기능과 의미를 가진 속격조사 ‘-의’와 통사론적으로 중화된 것이다. (17) 어휘형태소가 문법형태소로 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서 어휘가 재구조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보다’(視)가 비교표시의 조사로 사용되게 되었거나, ‘겨오셔’가 존칭체언에 붙은 조격조사의 뒤에 어휘형태소로 사용되다가(-으로 겨오셔), 조격조사가 떨어져 나가고 ‘겨오셔’ 단독으로 체언에 직접 통합되어 극존칭의 주격조사로 사용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러한 예다. 이들 어휘형태소들 중 문법형태소로 변화한 것들의 상당수는 그 사용빈도수가 매우 높고, 또 보조동사로 사용되었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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