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사대부층 부녀들에 의해 창작·향유된 閨房歌辭(詞)는 영남지방에서 가장 성행했는데,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간의 존재기반이 있었던 듯하다. 그 내용은 여성생활에 관한 윤리규범과 생활범절의 가르침에서부터 개인과 가정의 특기할 만한 체험의 기록 및<花煎歌>류의 서정성 짙은 노래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이 넓었다. 일단 창작된 규방가사는 친족들 사이에서 읽히고 전사되었으며, 시집갈 때 자기 집안의 가사를 여러 두루마리씩 간직하여 가져가는 등의 경로를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규방가사의 주요 유형으로는, 시집가서 지켜야 할 행실을 딸에게 가르치는 誡女歌,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 짓는 경축가,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나 흥취를 노래한 풍류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자탄가 등이 있었다. 풍류가 중에서는 화전놀이를 다룬 화전가가 가장 널리 창작되었다.
화전가는 때때로 화전놀이 노래라는 외형만을 빌어 작자의 체험이나 느낌을 서술하는 데에 쓰이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덴동어미 노래>같은 작품이 주목된다.<덴동어미 노래>는 한 하층민 여성이 극도의 빈곤과 불행 속에서 겪는 기구한 삶의 역정을 술회한 내용이다. 덴동어미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네 차례에 걸친 결혼생활을 통해 평범한 삶의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갖가지 사연으로 남편을 잃고 거듭되는 불행에 부딪혀 좌절한다.
영감은 사긔 짐 지고 골목의셔 크게 위고
나 사긔 광우리 이고 가가호호이 도부다
조셕이면 밥乙 비러 그릇셰 둘이 먹고
……
돈 이나 될 만면 둘 즁의 하나 병이 난다
병구려 약시셰 다 보면 남의 신셰乙 지고나고
다시 다니며 근사모와 돈 이 될 만면
나이 탈이 나셔 한푼 읍시 다 쓰고나.
이 대목이 보여주듯이<덴동어미 노래>의 관찰력은 서민생활의 체험에 밀착되어 있다. 남편을 네 번이나 잃게 되는 고난의 과정은 다분히 작위적으로 과장되어 있으나, 그것은 단순한 문학상의 과장이 아니라 고단한 밑바닥 삶을 전전하는 하층민 여인의 고난에 비극적 전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1,600여 구라는 장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하층민의 고통스러운 삶과 이를 둘러싼 사회상황을 핍진하게 그린 점에서 이 시대의 가사가 거둔 뛰어난 문학적 성과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