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1) 국문시가와 한시
  • (2) 가사
  • 라. 잡가

라. 잡가

 18·19세기 시가의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현상으로서 雜歌의 성행을 들 수 있다. 잡가란 조선 후기의 시정에서 직업적·반직업적 소리꾼들에 의해 가창된 遊樂的 노래들을 가리키는데, 대체로 18세기 무렵부터 그 등장이 본격화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잡가는 음악적 측면에서 볼 때 十二歌詞에 비해 훨씬 통속적이며 일반 민요보다는 선율과 창법이 세련되어 유흥적 화려함을 짙게 띠었다.607)鄭在鎬,<雜歌攷>(≪韓國歌辭文學論≫, 集文堂, 1982) 참조.

 잡가는 다양한 악곡으로 가창되었기 때문에 율격 및 전체적 시형의 구속력이 매우 느슨하며, 따라서 일정한 정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가사와 같은 연속체 대신에 일정한 歌節 단위가 병렬되는 구성을 보인다든가, 일부 작품에서는 가절 사이에 후렴구가 끼어드는 점이 비교적 우세한 특징이다. 잡가는 시조·한시의 구절들을 끌어다 쓰기도 하고, 민요·십이가사·판소리창 등을 적지 않이 보용하였으나 그 어느 것에도 기울지 않으면서 다양한 흡수력을 보였다.

 잡가는 서울 등의 도시지역에서 四契축이나 三牌 같은 하층의 소리꾼들에 의해 시정놀이판의 여러 청중들을 상대로 한 유락적 가요로 불리었다. 이런 중에 시정의 유흥적 공간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한 취흥·유락의 기능을 다하는 데서 다양한 음악적·문학적 요소들을 두루 흡수하여 대중의 흥미에 적응하는 성향이 발달했다.

 그런 점에서 잡가는 본래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가요유형이 아니라 대체로 18세기 무렵부터 발달한 대중적 혼합가요라 말할 수 있다. 민요적 원천을 변용·개작한 유락적 가요의 기원은 훨씬 앞의 시기까지 소급되겠지만, 잡가 가창자들이 어느 정도 직업화된 예능인으로서 독립하고 또 그들의 노래를 즐기는 시정적 유락의 공간이 발달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의 일이다.

 잡가의 내용은 애정, 삶의 무상함, 醉樂,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류, 세상살이의 애환, 익살·戱言 등 다채로우나 전체적으로 보아 세속적·쾌락주의적 지향이 두드러졌다.<愁心歌>·<黃鷄詞>·<육자배기>·<날개타령>·<咏山歌>·<遊山歌>·<뒷산타령>·<맹꽁이타령>등 대다수의 잡가는 철저히 현세적인 관점에서 삶의 여러 욕망과 그 성취·지연·좌절에 따른 감흥과 비애를 노래하며, 비록 덧없는 것일망정 이 세상 안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가장 확실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물·산·나무·꽃·새와 같은 자연현상 또한 잡가에서는 처사적 관조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유한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감각적 사실 내지 逸樂의 대상으로 형상화된 예가 많다. 이 점은 잡가가 사대부적 미의식과 품격을 지닌 시가류로부터 준별되는 동시에 생활 현장의 절실한 경험에 근거한 민요와도 또 다른, 시정의 유락가요라는 데에 기인하는 특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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