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나. 야담계 한문소설

나. 야담계 한문소설

 野談은 조선 후기의 시정 주변에서 떠돌던 이야기를 채록한 한문 단편 서사물의 총칭인데, 그 최초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柳夢寅(1559∼1623)의≪於于野譚≫이다. 이를 두고 정통 사대부들은 항간의 비루한 일을 많이 기록한 데다가 문장이 속되고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이 많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야담은 이전 문학사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창작의 원천이 생활 현장과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야담은 조선 후기의 人情物態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야담은 18·19세기에 들어서 더욱 활발히 창작·유통되었으며, 19세기에는 3대 야담집이라고 일컬어지는≪溪西野譚≫·≪靑邱野談≫·≪東野彙輯≫으로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실린 야담은 주로 시정 주변에서 그 제재를 취한 것들이다. 등장인물도 그 곳의 평범한 생활인들이고, 설사 상층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해도 그 서술에는 대개 시정인의 시각이 짙게 깔려 있다. 또한 야담에는 실제 인물의 한 단면을 평면적으로 전달하는 사실담, 역사적 사건이나 일화에 약간의 윤색이 가해진 야사류에서부터 전설·일화, 나아가 소설적인 틀을 갖춘 서사물이 뒤섞여 있다. 이처럼 포괄하는 영역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야담은 작품에 따라 순전한 사실담이기도 하고, 잘 짜여진 허구적 서사물이기도 하며, 혹은 그 사이의 다양한 층위에서 운동중인 중간적 산문문학이기도 하다. 야담의 작자(또는 편찬자)는 그 내용이 사실적이든 허구적이든 흥미롭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기록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다양한 이야기들 가운데 당대 현실의 문제를 날카로운 구성과 전형화의 수법을 통해 描破하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야담계 한문소설이라 부를 수 있다.

 이같은 야담 및 야담계 한문소설이 형성하게 된 역사적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그로 인한 농민층 분화라는 중세 봉건사회의 해체과정을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전국의 산물과 재화가 도시로 집중되고, 농촌에서 유리된 상당수의 농민 또한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17세기 중엽의 서울 인구가 100여 년 만에 거의 세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 상황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런 시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들었다. 관료와 그 주변의 친족, 거기에 빌붙어 사는 幕客이나 傔人, 婢僕과 서리배, 호협적인 한량이나 건달패, 몰락한 양반이나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서생, 벼슬자리를 구해 올라온 시골선비나 武弁, 농촌에서 흘러 들어온 빈민, 각양각종의 장사치나 수공업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광대나 풍각장이패, 심지어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꾼 등등이다.

 야담의 세계는 위에 열거한 여러 인물의 초상화라 할 만큼 폭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 형성과 관련지어 관심을 끄는 부류는 바로 소재의 제공자인 이야기꾼이다. 이들은 조선 후기 시정의 분위기를 몸소 경험하면서 떠돌던 영락한 양반이거나 이와 상응하는 중간계층들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하층의 생활체험을 두루 접할 수 있었고, 그에 힘입어 야담은 그만큼 다양한 편폭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 중 몇몇은 전문적·직업적 예능인의 모습을 띠고 있다.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 따른 시정의 활력이 이야기마저도 삶을 영위하는 방편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조선 후기 도시의 발달이 창출해 낸 새로운 인물유형이라 할 만하다.

 야담의 형성을 살필 때 주목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시정에서 구연되던 잡다한 이야기를 대거 수록함으로써, 詩話·野史가 중심을 이루던 전통적인 필기류의 면모를 바꿔 놓은 야담집 편찬자들이다.≪東稗洛誦≫의 盧命欽(1713∼1775),≪霅橋漫錄≫의 安錫儆(1718∼1774),≪계서야담≫의 李羲平(1772∼1839)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관료가 될 수 있는 교양과 자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배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지식인, 곧 몰락한 士계층 또는 中庶人이었다. 그로 인해 이들은 권력을 독점한 집권층에 대해 반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와 변환기적 사회상을 체험하면서 중세적 질서에 대해 비판 혹은 회의의 시각을 지니는 한편, 시정인들과 친화할 수 있는 공감 영역을 자연스럽게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들은―이야기꾼과 마찬가지로―조야의 여러 인물과 두루 접촉하며 시정의 동향에도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야담계 한문소설의 형성은 이처럼 도시의 발달에 따른 시정 세태의 변모와 소외된 士계층을 중심으로 한 식자층의 결합에 의해 가능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재물축적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세속적 이해관계, 시정인의 생활상이나 특이한 삶을 살아간 奇人·逸士에 대한 깊은 관심, 몰락양반의 궁핍상과 이에 대처하는 다양한 양태, 낡은 신분제의 붕괴와 그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대한 긍정을 비롯한 남녀간 성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 봉건체제의 모순에 대한 피지배층의 항거 등 다양하다. 박지원·이옥·김려가 보여준 전의 소설적 성향과 뛰어난 성취도, 이러한 야담류의 성행에 힘입은 바 컸으리라 생각된다.

 야담계 한문소설은 이처럼 조선 후기 문학의 역동성의 한 정점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사대부적 혹은 중인적인 인식의 제약이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작품 말미에 붙어 있는 評結이 종종 유가적 윤리의식에 매여 있는 것을 비롯하여, 시정의 기문·일사와 설화적 전승을 개작하는 과정에서 사대부적 지향이 내용 자체의 성격을 변질시킨 사례 또한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19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야담이 듣는 이야기로부터 읽는 이야기로 점차 고착되어 예전에 비해 시정의 활기찬 원천이 차단된 점과, 19세기 이후 상층 사대부들의 보수적·통속적 성향이 작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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