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2) 서사문학
  • (1) 한문소설
  • 다. 한문 장편소설

다. 한문 장편소설

 단편 규모의 양식으로 내려오던 한문소설이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부 작품에서 장편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한 추세 속에서 17세기 후반에는 이른바 長篇 家門小說이 등장했다. 이 유형의 작품들 속에는 몇 대에 걸쳐, 혼인을 매개로 한 여러 가문들의 부침과 영욕이 뒤얽혀 있다. 17세기 말에 창작된 金萬重(1637∼1692)의≪九雲夢≫과≪謝氏南征記≫, 趙聖期(1638∼1689)의≪倡善感義錄≫에 이같은 장편 가문소설의 초기적 면모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들이 숱한 한문본으로도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소설 향유층이 사대부 부녀자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사대부 자신들도 이것들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던 것인데, 이런 한문소설의 창작과 독서경험은 소설을 배척하려는 끊임없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졌다. 실상 이들이 세태를 문란케 한다든가 사람을 허탄하게 만든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대상은 주로 18세기 이후 상업적 흥행을 목적으로 쏟아져 나온 국문본 통속소설류에 집중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사씨남정기≫나≪창선감의록≫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없었다. 그만큼 사대부들 자신이 지은 초기의 한문 장편소설들은 여타의 통속적 국문소설과 층위를 달리하는, 곧 교훈적·교양적인 독서물로서의 가치를 일정하게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18·19세기에는 이들을 전형으로 한 작품들이 다수 산출되었다.≪九雲夢≫·≪玉麟夢≫·≪一樂亭記≫와 같은 한문 장편소설은 물론 보다 낮은 계층들이 주로 읽었을 가정소설·영웅소설도 초기 한문 장편소설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고전소설은 조선 후기의 문학양식 가운데 가장 비중 있는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대부 자신의 고유한 양식이었던 전이나 필기류에 소설적 성향이 강하게 침투하게 된 것도 이런 문학사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한문소설은 이제 단형과 장형의 양면에서 사대부들의 소설적 욕구를 충족하는 서사양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문소설이 정통적인 한문학 양식과 대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고전소설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문 장편소설들도 작자는 물론 창작시기조차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들어서서는 작자의 이름은 물론, 창작동기를 작자 자신의 문학관에 입각하여 조리 있게 밝혀 놓고 있는 한문 장편소설이 집중적으로 산출되었다. 金紹行(1763∼1859)의≪三韓拾遺≫, 沈能淑(1782∼1840)의≪玉樹記≫, 南永魯(1810∼1857)의≪玉樓夢≫, 徐有英(1801∼?)의≪六美堂記≫등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金邁淳과 같은 당대 일류문사들이 序跋을 통해 그것의 문학적 가치를 보증하고 있는 작품도 많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같은 현상에서 소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가들은 주로 近畿지방의 사대부들이고, 당시 집권벌열층 문인그룹의 일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현달하거나 권력의 핵심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벌열가문의 일원이거나 이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직·간접적인 교류의 자취도 보이고 있어, 이들의 작품이 동질적인 사회적·문학적 배경에서 쓰여진 것임을 추측케 한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인물이었으며, 소설에 자주 보이는 현실 비판의식과 그와 결부된 이념의 표출은 바로 이같은 작자 자신의 사회적 처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실천의 결핍을 새롭게 부상한 문학양식인 소설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비판의식은 당대 현실의 핵심적 모순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자기가 소속한 계층의 방어의식에 머무르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19세기의 한문 장편소설이 지닌 또 다른 의의는, 상층 사대부의 세계관을 국문 통속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영웅의 일대기 형식을 빌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영웅소설을 비롯한 국문소설이 상층 사대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소설사적 추세의 표현이다. 물론 이들은 통속적인 국문소설류를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폭넓은 대중성을 다각도로 활용하면서 여기에 자기들 나름의 진지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때문에 19세기 한문 장편소설은 부분적인 보수성이나 문학사적 사명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고전소설사에 있어 새로운 모색의 일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국문본과 한문본으로 유통되면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폭넓은 대중성을 지닌≪옥루몽≫에서 그같은 의의가 뚜렷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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