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1. 문학
  • 2) 서사문학
  • (2) 국문소설
  • 나. 환몽소설과 애정소설

나. 환몽소설과 애정소설

 김만중에 의해 17세기 말에 창작된≪구운몽≫은 18·19세기에 많은 幻夢小說이 성행하도록 하는 전범이 되어, 숱한 모방작과 아류작을 산출해 냈다.≪九雲記≫·≪玉仙夢≫·≪玉樓夢≫·≪林虎隱傳≫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19세기의 걸작≪옥루몽≫은≪구운몽≫의 문제의식과 환몽구조를 이어받았으면서도 더 사실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여 현세적 욕망에 대한 관심이나 당대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구운몽≫과 같은 불교적 깨달음을 결말에 내세우지 않는 대신, 한미한 선비인 楊昌曲이 부귀공명과 애정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세력과 치열한 대결을 하도록 만들어 놓는가 하면, 그의 처첩 가운데 기생 江南鴻을 발랄한 개성과 활약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인물로 만들어 놓고 있는 데서 그 점이 두드러진다.

 이들 환몽소설에서 夢中세계에 해당하는 세속적 삶의 이야기는 영웅소설의 유형적 특질에 근접하는 경우가 많다. 謫降구조를 비롯하여 영웅적 주인공의 다채로운 군담과 그 과정에서 맺어지는 결연이 특히 그러하다. 그 가운데 결연의 과정은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실제로≪구운몽≫에서 양소유가 여덟 명의 아리따운 여인들과 차례로 결연하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목은 조선 후기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애정의 문제는≪금오신화≫·≪주생전≫·≪운영전≫과 같은 조선 초기 내지 중기의 작품들을 비롯한 많은 고전소설에서 자주 다루어지던 주제였다. 하지만 영웅소설이나 여타의 고전소설이 주인공 남성의 여성편력을 그리는 과정에서 애정문제에 접근했던 것과 달리, 젊은 두 남녀가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맺어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시련과 그 극복에 서사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이 있다. 이를 愛情小說이라 묶을 수 있는데,≪淑香傳≫·≪淑英娘子傳≫·≪尹知敬傳≫·≪白鶴扇傳≫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숙향전≫은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작품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전란의 와중에 휩쓸려 유리걸식하던 淑香이 천정배필로 천상에서 인연을 맺었던 李仙과 결연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숙향은 그 과정에서 숱한 고난을 겪게 되는데, 그것이 연약한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의 횡포나 운명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현격한 신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신분적 차이는 당시 남녀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장애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숙향전≫은 비극으로 끝나는 전기소설과 달리,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애정을 성취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전기소설이 비극의 형식으로 신분이 초래한 모순을 그리고 있다면, 국문소설은 낭만적인 형식으로 그것의 극복의지를 담아내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예를 애정소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춘향전≫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애정소설은 신소설이 등장할 때까지도 꾸준히 그 맥이 이어져≪秋風感別曲≫·≪芙蓉想思曲≫·≪靑年悔心曲≫과 같은 작품이 20세기 초반에 新作舊小說의 형태로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