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에는 장편 가문소설 또한 성행했다. 그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정적인 결론이 없으나, 17세기의 閨房小說에서 원천을 구하는 견해가 비교적 유력하다.612)林熒澤,<17세기 閨房小說의 成立과 彰善感義錄>(≪東方學志≫57, 延世大 東方學硏究所) 참조.
그 밖의 소설들이 대개 주인공의 일대기 형식을 취하거나 일화 중심의 단형성을 띠는 데 비해, 장편 가문소설은 여러 가문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몇 대에 걸친 가문의 갈등과 영욕이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大河小說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궁중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樂善齋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기에 낙선재본 소설이라고도 한다.
≪泉水石≫·≪落泉登雲≫·≪報恩奇遇錄≫·≪玉鴛再合奇緣≫등이 이 부류의 대표작인데, 이들은 주로 서울의 세책가를 매개로 궁중의 여인들이나 사대부가문의 부녀자들에게 읽혔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길이는 무척 길어서≪明珠寶月聘≫과 같은 작품은 필사본으로 무려 235책에 달한다. 이러한 장편 가문소설의 연원은 매우 오래되어,≪蘇賢聖錄≫과 그 연작인≪蘇氏三代錄≫이 이미 17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이 작품 외에도,≪韓氏三代錄≫·≪薛氏三代錄≫등 18세기 이전에 창작된 장편 가문소설들이 적지 않다.
이들 가문소설들은 18·19세기를 거치면서 17세기에 성립한 가문소설의 인기에 편승해 그것의 모방작 또는 파생작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보다 긴 분량의 새로운 작품들도 상당히 많이 나타난다. 이 유형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분량만큼이나 단일하지 않다. 중세적 가치관과 이상적인 사대부상, 후계의 문제와 일부다처제하의 여성현실, 賜婚女의 문제와 군주권과의 갈등 등 매우 다채롭다. 하지만 주인공을 포함하여 등장하는 인물들은 설사 귀족신분이라 할지라도 봉건적 이념에 헌신하거나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는 영웅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개가 권력·부·애정을 추구하는 세속적 인간형에 보다 가깝다. 더욱이 겉으로 내세워지고 있는 이들 상층 귀족의 삶은 이상적이고 영광스러운 것처럼 꾸며지지만, 실상 그 이면의 삶은 불합리한 제도와 관념에 의해 대개가 뒤틀려 있다는 점을≪玄氏兩熊雙麟記≫와 같은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장편 가문소설은, 작품에 따른 다양한 편차가 있지만, 점차 붕괴되어 가는 중세 봉건사회의 모순과 그 실상을 상층 사대부가문내의 다단한 삶을 통해 조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주로 가족구성원 사이의 갈등관계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여러 대에 걸친 가문의 성쇠나 여러 가문간의 관계를 엮어내는 유형을 장편 가문소설이라 한다면, 한 가정의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는 유형을 家庭小說이라 명명할 수 있다. 이들은 장편 가문소설에서 보이던 벌열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지향이 약화되고, 그 서사적 규모도 대폭 축소되면서 파생·산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형은≪창선감의록≫에서 보이는 처처간의 다툼,≪사씨남정기≫에서 보이는 처첩간의 다툼, 그리고≪薔花紅蓮傳≫에서 보이는 계모와 본처 자식간의 다툼으로 다시 나뉜다. 그 다툼은 일부다처제나 축첩제와 같은 봉건적 가족제도의 모순이 배태한 것이거나, 재산상속을 둘러싼 구성원내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다. 어떤 작품들은 이러한 가정갈등의 원인을 첩이나 계모의 인성결함으로 돌리는가 하면, 봉건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관념화된 논리로 합리화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은 악인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림으로써 실상 그들도 불합리한 가족제도의 희생자였음을 드러내는 한편,≪楊己孫傳≫과 같은 작품에서는 축첩제도가 지닌 모순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것의 현실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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