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1725∼1800)시대가 되면서부터 왕권강화와 더불어 상공업이 발달하며 실학이 흥기하고 학문이 융성하여 조선조의 새로운 융성기가 전개되었다. 이른바 조선 후기의 새로운 문화가 활짝 꽃피게 된 것이다. 이는 청나라 문화의 적극적인 수용과도 밀접히 관련되고 있다. 謙齋일파에 의한 眞景山水畵의 유행과 俗畵의 등장은 이 시기 회화의 신선한 바람이었다.
조각부문에도 많은 작품들이 조성되어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기년명 작품들은 그렇게 많이 발견되지 못한 상황이다. 편년이 확실한 대표적인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730)유마리,<조선시대 조각>(≪韓國美術≫, 藝術院, 1984).
영조 7년(1731)에 조성된 桃李寺의 목아미타불좌상은 이 시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생각된다. 육계의 표현이 없어진 머리이지만 정상계주와 중심계주는 있으며 네모난 얼굴에 평판적인 인상, 납작한 코와 가는 눈, 작은 입 등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얼굴의 특징이다.
이런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 방형의 체구는 평판적이고 양감이 없지만 어깨는 형식적인 둥근 맛(丸美)이 표현되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높고 큼직하며 역시 형식적인 둥근 맛이 나타난다. 이른바 방형적이고 평판적이며 둔중한 조선 후기의 형태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통견한 법의는 두껍게 표현되었는데 한두 가닥 또는 세 가닥의 간략한 옷 주름선으로 나타내었고, 하의 상단을 주름지게 처리하고 두 가닥 내의 옷자락을 배 쪽에서 모아 집어 넣도록 한 것 등은 모두 조선 후기의 특징이 극명하게 묘사된 것이다. 이러한 모든 특징은 이 시대 목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나타낸 것이다.
영조 12년에 조성된 仙巖寺의 木毘盧遮那佛坐像도 마찬가지로 도리사의 불상과 같은 특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 불상(55.5㎝)은 앞의 불상처럼 육계의 표현이 없어지고 방형적인 얼굴과 신체, 두꺼워진 통견의 불의 그리고 형식적인 둥근 맛이 표현된 얼굴과 어깨, 하체의 양감은 이 시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百潭寺의 목아미타불좌상은 영조 24년(1748)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 작품인데 18세기 중엽에 유행하는 불상의 특징적인 면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도리사의 불상처럼 완전히 방형적인 특징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평판적이고 방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즉 비교적 단정한 얼굴에 눈이 가늘고 입이 작으며 코가 돌출하여 독특한 인상을 주는 불상으로 당시의 작품으로는 단아한 양식에 속한다. 그러나 육계의 표현은 없고, 정상과 중심계주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평판적인 얼굴 형태는 18세기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또한 가슴이 넓고 어깨가 둥근 편이어서 그런 대로 건장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당시의 평판적인 특징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결가부좌한 하체도 넓고 큼직하지만 상체와 함께 다소의 양감 표현이 나타나 당시의 불상으로서는 수작임이 분명하다. 통견한 법의도 유연하고 주름도 비교적 많이 표현되어 이 역시 단아한 불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이른바 평판적이지만 단아한 특징이 18세기 중엽에도 가끔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은 마애불에도 나타났다. 관악산 三幕寺 칠성각은 감실의 마애불에 2층 누각식 전실이 있는 일종의 마애석굴형식인데 거대한 암벽에 감실을 새기고 熾盛光三尊佛을 부조한 것이다(<사진 8>).731)文明大,<三幕寺 在銘磨崖三尊佛考>(≪又軒丁仲煥博士 還曆紀念論文集≫, 1974). 영조 39년에 조성된 이 삼존불은 본존에 밀착된 삼존구도를 보여주며 삼존 모두 방형적인 특징을 표현하고 있어서 당시의 삼존불형식을 대표한다.
본존불은 팽이같은 머리, 약간 둥근 듯한 방형적 얼굴은 본질적으로 평판적이며 가는 눈, 작은 입, 가느다란 코 등은 당시의 부처의 얼굴을 잘 반영하고 있지만 미소띤 얼굴의 능숙한 솜씨는 이 불상이 뛰어난 기량의 작가가 만든 것으로 보이게 한다. 방형적인 체구는 평판적이며, 어깨가 움츠려진 듯 표현했는데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 法輪을 들고 있어서 칠성을 상징하는 치성광불임을 알려준다. 좌우의 보살은 거의 유사한 형식인데 삼산보관, 방형적이지만 만면한 미소, 움츠린 듯한 어깨와 방형적인 상체, 두터워진 불의 등은 본존과 흡사한 특징있는 부조상이라 하겠다. 즉 방형에 평면적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지만 얼굴의 미소나 능숙한 부조기법 등에서 이 불상은 당시의 최고가는 석조장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대표작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정조 말경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 전형적인 예가 藥水庵의 목각탱(정조 6:1782)이다(<사진 9>). 지리산 實相寺에서 지리산 쪽으로 1시간여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약수암이 나온다. 약수암의 법당에는 주존으로 아미타목각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18세기 말 목각탱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 목각탱은 2단의 단순한 배치구도를 나타낸 것인데 하단은 본존과 좌우보살 2구씩과 나한상 1구씩이며, 상단에는 2구씩의 보살상이 배치된 아미타 8대보살구도라 하겠다.
본존은 복잡한 키형광배를 배경으로 높은 연화대 위에 앉아 있는데 당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육계가 없고 얼굴이 긴 장방형이지만 단정한 편이며, 가는 눈, 작은 입, 오뚝한 코 등은 앞 시대부터 내려오던 특징이다. 상체는 방형이지만 단정하며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 표현되고 있으며, 결가부좌한 하체는 큼직한 편이다.
협시상들은 모두 입상인데 방형의 얼굴, 원통적인 체구, 형식화된 천의 등에서 당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특징은 雙溪寺 대웅전의 삼세불상(약사불상)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장방형의 긴 얼굴, 약간 부피감 있지만 가는 눈, 작은 입, 오뚝한 코 등, 무표정한 얼굴, 약간 움츠린 듯 단정하면서 둔중한 체구, 크고 높은 하체 등은 18세기 말 양식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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