漆器의 경우 간결하고 검소한 목공품과는 달리 매우 정교하고 화려한 면을 지니고 있다.
조선 중기에는 唐草紋을 전면에 시문하여 도안적 효과를 그린 작품의 경향이었으나 후기에는 十長生문양 등의 회화적인 도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松·竹·梅·蘭·鶴 같은 십장생문양은 회화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며, 이것은 19세기에 들어와 여러 가지 공구들이 개발됨에 따라 자개를 얇고 넓게 만들 수 있었고 가늘게 오려내어 끊어가면서 곡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법이 성행된 데 따른 것이다.737)金元龍·安輝濬,≪新版 韓國美術史≫(서울大 出版部, 1993), 337∼339쪽.
이와 함께 쇠뿔을 얇게 깎아 펴서 그 한쪽 면에 彩畵를 하고 그것을 목기 위에 화면이 안쪽이 되도록 뒤집어 붙여 장식한 華角의 십장생문양을 시문한 작품들도 조선 후기에 칠기와 함께 널리 쓰였다.
<尹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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