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영산회상의 역사적 발전
현행 영산회상은 크게 세 갈래의 組曲형태로 구분된다. 줄풍류로 알려진 첫째 갈래의 영산회상은 현악기 거문고 위주의 조곡형태이므로 거문고회상·현악영산회상이라고 하는데, 重光之曲이라는 雅名을 지니고 있다. 대풍류라는 둘째 갈래의 영산회상은 관악기 위주의 조곡형태로서 관악영산회상인데, 表正萬方之曲이라는 아명을 가졌다. 현악영산회상을 완전 4도 아래로 移調한 셋째 갈래의 영산회상이 平調會相인데, 평조회상의 아명은 柳初新之曲이다. 보통 영산회상이라고 할 때에는 현악영산회상을 뜻하는데, 현악영산회상의 역사가 가장 오래이다.
18세기의 영산회상은≪어은보≫와≪한금신보≫에 전한다. 현행 중영산에 해당하는 靈山會相甲彈이≪어은보≫에 나타나고,796)洪善禮,<漁隱譜의 靈山會相甲彈>(≪韓國音樂硏究≫10, 한국국악학회, 1980), 25∼62쪽.
李惠求, 앞의 글(1977), 438쪽. 영산회상還入과 除指가≪한금신보≫에 등장한다.797)≪韓琴新譜≫, 靈山會相還入·靈山會相除指(참조 영인본은 1985년 國立音樂院에서 펴낸≪韓國音樂資料叢書≫18). 영산회상의 이러한 파생곡들은 18세기에 이르러 영산회상이 풍류방의 율객들에 의해서 애탄됐음을 입증해 주는 증거이다.≪유예지≫(권 6)의 영산회상은 영산회상·세령산·영산회상 二層除指·三層除指·三絃回入·2장두·4장말·염불타령·육자염불·타령·군악유입타령·우조타령·군악타령으로 구성됐는데, 이러한 파생곡들은 19세기 전후 영산회상의 발전단계를 보여준다.≪유예지≫에 전하는 영산회상의 앞 파생곡들은 현행 상영산·중영산·세령산·가락더리임이 밝혀지고 아울러 삼현회입과 2장두와 4장말은 현행 삼현환입과 하현환입의 전신으로 드러났으며,798)張師勛,<靈山會相 中 三絃還入의 硏究>(≪國樂論攷≫, 1966), 188∼194·195∼203쪽의 악보 참조. 뒷 파생곡들은 현행 염불·타령·군악과 관련됐다고 밝혀졌다.799)張師勛,<念佛에 관한 硏究>및<遊藝志의 軍樂打令과 現行 軍樂과의 關係>(위의 책, 204∼224·225∼261쪽). 이렇듯 현행 영산회상의 윤곽은≪유예지≫시절인 19세기 전후에 확립됐다.
19세기의 영산회상은≪삼죽금보≫·≪현금오음통론≫·≪학포금보≫에 전한다.≪삼죽금보≫의 영산회상은 영산회상·중영산·소령산·가락더리·환입·염불·타령·군악으로 구성됐다.800)≪三竹琴譜≫는 1980년 國立國樂院에서 펴낸 영인본(≪韓國音樂資料叢書≫2) 참조.≪삼죽금보≫의 군악이 현행의 것처럼 유현 5괘로 연주됐지만 아직 하현환입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현행 영산회상은 19세기 전반기에 확립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의 영산회상은 전반기와 다른 모습으로 발전됐다.
≪현금오음통론≫의 영산회상은 본영산·중영산·세령산·가락환입·상현환입·하현환입·염불·타령·군악과 變調로 구성됐고,≪학포금보≫의 것은 대령산·중영산·세령산·가락환입·삼현환입·하현환입·염불·타령·군악과 勸馬聲으로 구성됐다.801)≪玄琴五音總論≫·≪學圃琴譜≫는 1984년 國立國樂院에서 펴낸 영인본(≪韓國音樂學資料叢書≫14·16) 참조. 하현환입의 등장과 군악의 완성이≪삼죽금보≫의 영산회상보다 발전된 19세기 후반기 영산회상의 새 모습이다. 곧 현행 영산회상의 완전한 모습은 19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확립됐다.
주로 궁중정재의 반주음악으로 많이 연주됐던 관악영산회상이 언제부터 현행의 모습을 갖추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평조회상이≪삼죽금보≫에 평조영산회상과 관련됐으므로, 현행 평조회상의 뿌리는 19세기 전반부에서 찾아져야 한다.
나) 보허자의 역사적 발전
보허자는 관악보허자와 현악보허자로 나뉘어 발전됐다. 주로 궁중에서 연주된 관악보허자는 長春不老之曲의 아명을 가졌고, 풍류방 중심의 현악보허자는 步虛詞라는 아명을 지니고 있다. 현행 尾還入·細還入·兩淸還入·羽調加樂還入은 모두 보허자에서 파생된 변주곡으로 밝혀졌다.802)張師勛,<步虛子 論攷>(앞의 책, 1966), 3∼48쪽.
―――,<步虛子 論續攷>(≪韓國傳統音樂의 硏究≫, 寶晋齋, 1975), 13∼63쪽.
도드리·밑도드리의 한글이름과 壽延長之曲의 아명을 가진 미환입은≪한금신보≫에 本還入 및 밋도드리로 전하고, 또 웃도드리·잔도드리·頌九如之曲의 세환입도≪한금신보≫에 數還入 및 잔도드리로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미환입과 세환입이 18세기에 이미 풍류방에서 연주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세환입이 미환입의 변주곡임을 상기할 때, 미환입은≪한금신보≫이전에 이미 연주됐을지도 모른다.
19세기 전기에 이르러 미환입과 세환입은≪삼죽금보≫에서 본환입과 小還入으로 불리었고, 19세기 후반의≪현금오음통론≫과≪학포금보≫에서는 본환입과 세환입으로 각각 호칭됐다. 18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미환입은 본환입의 명칭으로 일관됐지만, 세환입은 삭환입·소환입·세환입이라는 명칭의 변천과정을 거쳤다.
현행 양청환입과 우조가락환입의 뿌리는≪삼죽금보≫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삼죽금보≫의 양청환입과 우조가락除耳가 양천환입과 우조가락환입의 전신이기 때문이다.803)≪三竹琴譜≫의 번역은 張師勛의≪韓國傳統音樂의 硏究≫, 43쪽의 주 17 및 47쪽의 주 20에서 옮김. 이 두 악곡은≪현금오음통론≫에서는 양천환입과 우조가락조로 기보됐다가, 금세기에 이르면서 현행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다) 자진한잎과 사관풍류 및 농악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생겨난 음악양식적 특징 중의 하나는 성악곡의 기악화이다. 젓대·세피리·해금·가얏고·거문고·양금으로 편성된 가곡의 반주음악은 노래없이 기악합주로 연주되는 새로운 전통이 이미 19세기 전후 무렵에 나타났다.≪유예지≫의 자진한잎(紫芝羅葉)이 비록 생황으로 연주된 기악곡이지만, 가곡의 기악화에 해당하는 최초의 실례이다. 생황으로 연주된 자진한잎은 界面大葉·弄樂·樂時調의 세 악곡은 현행 가곡의 二數大葉·平弄·界樂이었다.804)宋芳松,<遊藝志의 笙簧字譜 解讀과 그에 나타난 紫芝羅葉>(앞의 책, 1982), 513∼552쪽.
현행 가곡의 계면두거·평롱·계락·編數大葉을 노래없이 관현편성으로 연주하는 기악합주곡이 水龍吟·艶陽春·慶豊年이며, 수룡음·염양춘·경풍년을 싸잡아서 사관풍류라고 부른다. 이런 사관풍류는 음악사적 관점에서 보아서 19세기 전후의≪유예지≫에 전하는 자진한잎에서 유래됐다.
農樂은 민요처럼 문헌적 근거의 결핍 때문에 음악사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그러나 현행 농악이 조선 후기의 전통에서 유래됐음이 분명한 이상 조선 후기의 기악 개관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농촌의 여러 행사 때 꽹과리·징·장구·북·나발·날라리(太平簫) 등의 악기로 구성해서 연주한 음악의 총칭이 농악이다. 농악은 쓰임새에 따라서 네 종류로 구분되는데, 판굿·두레풍장굿·걸립굿·마을굿이 그것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洞祭에서 연주되는 농악이 마을굿인데, 이 농악은 마을수호신을 모신 堂山에서 연주되므로 흔히 당산굿이라고 한다. 마을의 공동경비를 걷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면서 농악으로 고사굿을 치며 쌀이나 돈을 걷는 농악이 걸립굿이다. 김매기나 모심기 때 연주되는 농악이 두레풍장굿인데, 이것이 예로부터 전승되는 전형적인 농악이라고 알려졌다. 놀이형식으로 재미나게 꾸며서 연주하는 농악이 판굿인데, 이런 농악은 다른 것에 비해서 나중에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판굿·두레풍장굿·걸립굿·마을굿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농악이 두레풍장굿과 마을굿이고, 걸립굿과 판굿은 농악의 원형에서 유래된 새로운 형태의 농악이다.805)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앞의 책, 80∼86쪽.
韓國文化藝術振興院, 앞의 책, 311∼312쪽. 이러한 농악의 전통은 모두 조선 후기의 농악에서 유래됐다.
라) 시나위의 등장
무속음악의 기악합주곡인 시나위는 무당의 역사처럼 오랜 역사를 지녔음이 확실하지만, 문헌적 근거가 없어서 역사적 연구의 한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행 시나위의 뿌리는 조선 후기 무당의 무속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당의 굿음악이 바로 무속음악이고 보면, 무속음악은 노래인 巫歌와 춤반주음악인 巫樂으로 구성되는데, 시나위는 무악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무당의 춤반주를 맡았던 巫夫를 조선 후기에 광대라고 불렀고, 일제시대에는 무부로서의 광대를 화랑이라고 불렀다.806)秋葉隆·赤松智城,≪朝鮮巫俗の硏究≫2(大阪屋號書店, 1937∼1938), 31쪽. 무당이나 광대는 모두 조선사회의 천인계급에 속했으며, 그들끼리 서로의 인척관계를 맺으면서 巫業을 이어갔다. 이런 관점에서 보아 시나위는 무속음악 중 기악협주곡인 心方曲 또는 神房曲에서 유래됐다고 보아야 옳다. 왜냐하면 현재 무당의 춤반주음악을 살푸리라고 하고, 무당굿에서 악기로만 연주되는 기악합주를 시나위나 신방곡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현재 전라도 단골무당의 굿판에서 연주되는 악기들은 대개 피리·젓대·해금·장고·징인데, 가얏고·아쟁·태평소·퉁소 같은 악기들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무악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장단은 살푸리·자진살푸리·도살푸리이지만, 전북 단골굿의 경우에 안진반·덩덕궁이·굿거리·중모리·중중모리도 연주된다.807)李輔亨,<巫樂長短考>(≪文化人類學≫3, 한국문화인류학회, 1970), 33∼47쪽.
―――,<시나위圈의 巫俗音樂>(≪文化人類學≫4, 1971), 79∼86쪽. 전라도 단골무당의 이런 무악전통은 조선 후기 무속음악 시나위와 역사적으로 관련됐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