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 음악
  • 3) 악조와 음악양식 및 기보법
  • (3) 악보와 기보법의 변천
  • 나.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

나.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

 조선 초기에 창제된 새로운 記譜法들이 후기에 모두 전승되지 못했고, 그 일부만이 사용됐을 뿐이다.≪대악후보≫등의 관찬악보에서는 16정간보와 五音略譜가 주로 사용됐으나, 민간악보의 주된 기보법은 合字譜와 肉譜였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기보법은 시대에 따라 변천된 합자보와 육보에 의해서 특징지어질 수 있으므로, 아래에서는 민간악보에 사용된 합자보와 육보의 변천만을 주된 고려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 후기 민간악보의 기보법은 거문고악보에 따라서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합자보와 육보가 함께 사용된 고악보이고, 다른 하나는 육보만을 사용한 고악보이다.≪어은보≫·≪한금신보≫·≪유예지≫·≪신작금보≫는 모두 합자보와 육보로 기보된 거문고악보이고, 육보로만 기보된 거문고악보는≪삼죽금보≫·≪현금오음통론≫·≪죽취금보≫이다. 이것들을 시기별로 나누면, 18세기의 고악보에서는 합자보와 육보가 함께 사용됐지만, 19세기의 거문고악보에서는 육보만이 사용됐다. 따라서 조선 후기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을 19세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고찰하면 이해가 빠르다.824)宋芳松, 앞의 책(1984), 505∼515쪽에서 요약.
조선 후기 기보법의 변천에 관한 상론은 崔庚玉,<朝鮮後期 合子譜와 肉譜의 變遷史硏究>(≪韓國音樂學論集≫ 1, 한국음악학연구회, 1990), 134∼173쪽.

 18세기의 거문고악보는 합자보와 육보 중에서 어느 기보법을 중심으로 삼았느냐에 따라서 두 부류로 세분될 수 있다. 첫째 부류는 합자보 위주로 기보된 거문고악보인데≪어은보≫와≪한금신보≫이 다. 육보 위주의 둘째 부류에 속하는 거문고악보는≪유예지≫와≪신작금보≫이다.≪어은보≫와≪한금신보≫에 의하면, 합자보가 중심되는 기보법이고 육보는 합자보 옆에 놓인 부차적인 기보법에 불과하다. 그러나≪유예지≫에서는 육보가 중심되는 기보법이고 합자보는 육보 옆에 놓인 부차적인 기보법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18세기 전기까지만 해도 중심되는 기보법이었던 합자보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부차적인 기보법이 되고 말았지만, 이와 반대로 18세기 전기에 부차적인 기보법에 불과했던 육보가 18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중심되는 기보법이 됐다. 조선 후기 기보법의 이런 변천은 19세기에 이르러 더욱 확실해졌다.

 19세기에 이르면서 육보가 거문고악보에서 중심되는 기보법의 위치를 차지한 실례를 여러 고악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삼죽금보≫의 기보법은 육보 뿐이고 합자보는 완전히 제외됐다. 또한 육보로만 기보된 거문고악보로≪현금오음통론≫과≪죽취금보≫가 있고, 그 이외에≪園客遺韻≫·≪黑紅琴譜≫·≪一蓑琴譜≫와 같은 거문고악보825)≪韓國音樂學資料叢書≫7(國立國樂院, 1981)에 포함시킨 영인본 참조.도 있다. 기보법의 역사적 변천이 생긴 이유는 이론적으로 합리적인 합자보보다는 실제로 암기하기 쉬운 육보가 풍류방의 율객들에게 더욱 친근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