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4. 무용·체육 및 연극
  • 1) 무용
  • (3) 민속무
  • 가. 풍물굿

가. 풍물굿

 풍물굿의 기원은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으나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문헌인≪三國志≫韓傳條에 다음과 같은 祭祝願의 종교의식이 유력시되는 기사가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이 장단을 맞추는데, 그 가락과 율동은 (중국의) 鐸舞와 닮았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도 이와 같이한다(≪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傳).

 즉 巫覡들이 神樂으로 사용하면서 제천의식을 집행하고 신을 섬기거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아버리고 복을 맞이하는 辟邪進慶의 의식예능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835)鄭昞浩,≪韓國의 民俗춤≫(三省出版社, 1991), 53쪽. 이러한 축원형태의 풍물은 그 후 노작(두레), 걸립, 연예적인 형태로 변천하였다.≪英祖實錄≫에 의하면 풍물의 풍속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국왕이 풍물에 대해 묻자 암행어사는 들에서 일을 할 때에 일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꽹과리와 북을 두드려 사기를 올리고 일을 하게 한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또한 ‘이미 이것은 百年民俗이어서 금지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기록도 있다.

 축원풍물은 마을굿·서낭굿·기우제굿·당산굿·매굿·풍년기원굿 등이 대표적이다. 동제인 경우 집돌이를 하기 전에 자연신과 마을수호신 등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내고 신과 교합하는 판굿을 한 후 샘굿·문굿·성주풀이·부엌굿·곳간굿·터주굿의 순서로 잡귀를 몰아내고 액풀이를 한다.

 노작풍물은 두레들이 일의 공동수행을 위하여 결합되어 풍물을 치면서 김매기 등을 하기도 하며 ‘일법고’라 하여 휴대품으로 된 소고를 가지고 일하면서 수시로 여흥놀이를 하는 것이다.

 걸립풍물은 마을의 공동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하는 것으로 먼저 들당산굿을 하고 샘굿을 한 다음 가가호호를 돌며 고사굿을 해주고, 밤에는 大豊家의 마당에 모여 걸립패의 특기인 판굿을 한다.

 연예풍물은 특정한 의식의 내용이 없이 마을사람들의 단합을 위하여 벌이는 축제로서 한층 화려하게 펼쳐진다. 풍물굿은 대체적으로 경기·충청·영남·호남 좌도와 우도·영동 등 5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각 지역의 특색으로는 경기·충청풍물의 무동들의 춤, 영남의 북춤과 농사굿적인 춤, 호남의 부포놀이 춤과 설장고·소고춤, 영동의 법고와 소고춤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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