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4. 형평운동
  • 4) 형평사의 조직
  •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3) 형평사 조직의 확대

 형평사 각 지분사의 도별·연도별 숫자와 사원수는 다음<표 1>과 같다. 형평사의 지사·분사의 설립과 활동상황은 형평사 활동을 자세히 보도하였던≪동아일보≫·≪조선일보≫·≪중외일보≫기사를 중심으로 살필 수 있다. 그러나 관헌자료에 나타나는 지분사가 신문기사에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설립이나 활동상황에 대한 소식은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사건이 기사화될 수 있는 문제, 예컨대 지분사원이 검거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야 그 지분사의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도
연도
경남 경북 전남 전북 충남 충북 경기 강원 황해 평남 평북 함남 기타 전년
대비
1923 지분사수 19 12(15) 7 7 17 8 2 5   1 1     80  
사 원 수                              
1924 지분사수   (17)                       83 +3
사 원 수                              
1925 지분사수 23 11(23) 7 10 18 8 6 7 3 2   4   99 +16
사 원 수                              
1926 지분사수 20 25(24) 11 23 24 9 11 12 4 1   5   147 +48
사 원 수 1,080 2,038 400 1,356 1,758 267 252 431 75 1 1 39      
1927 지분사수   (22)                       150 +3
사 원 수                              
1928 지분사수 28 22 6 30 31 8 14 17 1   2 5 2 153 +3
사 원 수 1,492 1,490 238 1,135 2,313 319 2,016 626 6     53   9,688  
1929 지분사수 29 23 6 30 28 11 15 16 1     3   162 +9
사 원 수 1,715 867 239 1,155 1,943 387 540 556 6     31   7,439  
1930 지분사수                           165 +3
사 원 수                              
1931 지분사수                           166 +1
사 원 수                              
1932 지분사수 28 24 7 27 30 14 14 15 1     1   161 -5
사 원 수 1,564 856 391 1,582 2,687 468 397 326 6     16   8,293  
1933 지분사수 26 20 6 26 28 13 12 13 1     1   146 -15
사 원 수 1,596 710 186 1,540 2,609 451 470 283 7     16   7,868  
1934 지분사수                           113 -33
사 원 수                              
1935 지분사수 18 17 5 12 26 8 9 2 1         98 -15
사 원 수 1,230 938 253 967 2,425 237 444 39 7         6,540  
各道最大支分社數 29 25 11 30 31 14 15 17 4 2 2 5 2 187  

<표 1>형평사 도별·연도별 지분사수와 사원수

*① 1923·1924년도의 통계는 朝鮮總督府官房文書課,≪朝鮮の群衆≫(1926), 183쪽.
 ② 1925년도는 朝鮮總督府,≪朝鮮人の思想と性格≫(1927), 131쪽. 1925년 9월말 조사임.③ 1926년도는 朝鮮總督府警務局,≪朝鮮治安狀況≫(1927), 2,910쪽.
 ④ 1928·1929년도 朝鮮總督府警務局,≪朝鮮治安狀況≫(1930).
 ⑤ 그 외의 통계는 朝鮮總督府警務局,≪最近に於ける朝鮮治安狀況-1933·1935-≫ (東京:巖南堂書店, 1966년 復刻版), 138·168∼169쪽.
 비고:경북의 ( )의 숫자는 慶尙北道警察局,≪高等警察要史≫(1934), 323쪽에 의한 것임.

 창립에서 1935년까지 미루어 생각할 때 형평지분사는 전활동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약 200개 전후로 조직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지분사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1923년 5월부터인데 그해 12월까지 80개의 지분사가 폭발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1928년부터 전국의 지분사설립은 현격하게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32년부터는 폐지되는 지분사가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후반기의 형평운동은 확장시기와 정체시기로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형평사 지도세력간의 파벌투쟁 탓으로, 또 한편으로는 1928년 이후 반형평운동 세력과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또 이 시기가 형평운동의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시점이라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지분사의 도별 설립상황을 보면, 형평운동 전기간 동안 충남(31개∼34개)에서 지분사가 가장 많이 조직되었고, 다음으로 경북(25개∼33개)-경남(29개∼31개)-전북(26개∼30개)-강원(17개∼22개)-전남(11개∼18개)-경기(13개∼15개)-충북(14개)-황해(4개∼7개)-함남(4개∼5개)-평남(1개∼2개)-평북(1개∼2개)의 순이다. 이러한 지역별 분포도는 형평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을 동시에 나타내 주고 있다.

 또 지분사의 지역간의 증가 추세는 초기의 발전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부이남 지방, 그 가운데에서도 충남·경남·전북·강원도의 분사와 사원수가 크게 늘어난 반면, 북부지방인 평안도·함경도·황해도에서는 여전히 부진하였다. 또한 총본부가 진주에서 서울로 옮겨지면서 새로 부상한 지도자들의 활동 근거지가 활동이 활발해진 지역과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지도세력의 변화가 지역간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경북의 경우 분사수가 줄면서 사원수도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에, 새로운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한 경기·충남·전북에서는 분사와 사원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경북지방의 부진과는 달리, 경남에서는 분사나 참여자 수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보아 활동이 크게 위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형평사의 파벌싸움이 지도노선을 둘러싸고 전개되었으나, 지역간의 주도권 다툼도 한 이유였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지분사 설립과정에서 지방 신문기자들 역시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603) 형평사 창립시 姜相鎬·申鉉壽 등 신문기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듯이 지분사 설립과정에서도 역시 지방 신문기자들이 구심적 역할을 하였다. 경성지사의 徐光勳은≪조선일보≫숭인지국기자,≪중외일보≫경성지국장,≪조선일보≫강릉지국 기자, 잡지≪批判≫의 기자를 역임하였으며, 입장형평분사의 朴好君은 경기도 평택의≪조선일보≫지국 기자로 활약한 경험이 있었다. 홍성지사의 李漢容은≪중앙일보≫아산지국장과 잡지≪이러타≫의 아산지국장을 역임하였다. 형평사 천안지부의 金顯悳은≪호서일보≫목포지국 기자와≪남조경제일보≫대전지국 기자로 활약하였으며, 형평사 예산지부의 金成俊은≪중앙일보≫예산지국 기자였다. 당시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약하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기자출신들이 특히 많았는데 형평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립대회와 설립 이후의 지분사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는<衡平社 社則>에 따르면 사원들이 내는 의무금인 회비, 즉 入社金 1圓과 社費 매월 20錢, 또는 찬조금에 의하여 충당되어야 했다. 그러나 회비징수가 원만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각 지분사 회의의 안건에는 한결같이<지분사 유지문제>가 토의되고 있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지방의 지분사는 경성의 총본부유지에 필요한 일정액의 부담금을 1년에 몇 번으로 나누어 송금했다.

 대회 설립일, 대회장에는 배치된 임석경관이 연설을 중단시키기도 하고 의제의 논의를 금지시키는 등 엄중한 경계를 폈지만, 지분사에 따라서는 대회 전후에 자동차로 시내를 돌며 선전방송을 하거나 삐라를 뿌리고 막대와 綱領旗를 앞세우고 행렬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당시 사회운동단체들이 설립대회나 총회를 개최하면서 행했던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한편 지분사의 설립에는 많은 경우 본부로부터 특파원이 파견되었다. 총본부의 간부들은 각 지역을 방문하여 조직의 확산을 도모하였고, 지역적인 연고가 있는 사람은 그 지방을 중심으로 郡이나 面을 방문하여 지분사의 설립을 권유하였고, 순회방문단 등을 파견하여 참여를 권유하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지분사의 창립이 결정되면, 본부에서 특파원이 파견되어 설립회의 석상에서 형평사 창립의 취지를 설명하거나 형평사 현황을 보고하는 일을 하였고, 설립대회를 마친 밤 별도의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혹은 본부의 간부들이 어느 지역을 방문했을 경우, 그 지역의 백정들이 모임을 갖고 지분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사회운동 단체로부터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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