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부터 교육법 제정을 위한 작업을 추진하여 1949년 12월 31일에 교육법이 공포되었다. 이어 1954년에는 교육 과정 시간 배당 기준령이 제정되었으며, 1955년 8월 1일에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이 제정 공포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체계적 교육 과정으로서, 제1차 교육 과정기라고 일컬어진다. 제1차 교육 과정은 1963년에 제2차 교육 과정이 제정 공포되면서 마무리되었다.
제1차 교육 과정은 편제상으로 교과 중심 교육 과정의 틀을 따랐다. 하지만 교과 내용상으로는 학생의 경험을 존중하는 생활 중심 교육 과정을 지향하였다. 이는 미국 진보주의 교육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1차 교육 과정에서 중학교 역사는 공민, 지리, 도의 교육과 함께 사회 생활과의 한 과목으로 편제되었다. 사회 생활과에 배당된 총 490시간 중 역사는 140시간이었다. 1학년에서 ‘우리나라 역사’라는 이름으로 국사(주당 2시간씩, 총 70시간)를 먼저 배우고, 2, 3학년에서 ‘세계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동․서양사를 통합한 세계사(주당 1시간씩, 총 70시간)를 배우게 하였다. 중학교 국사의 학습 목표는 5개 항목으로 제시되었으며, ‘민족 통일의 달성, 국난 극복의 정신, 경제생활의 향상, 민족 문화의 계승, 협동 정신의 고양’ 등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내용이 강조되었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는 ‘사회생활과’ 대신 ‘사회과’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사회과는 일반사회, 도덕, 국사, 세계사, 지리의 5개 과목으로 구성되었다. 사회과에서 일반사회, 도덕, 국사는 모든 학교의 필수 과목이었으며, 세계사와 지리는 선택 과목이었다. 고등학교 국사는 2학년이나 3학년, 또는 2, 3학년에 걸쳐서 105시간을 배우게 하였다. 사회과는 형식적으로는 5개 과목을 통합한 형태였으나 실제로는 각 과목의 지적 체계를 강조하는 분과주의를 취하였다. 사회과의 전체 교과 목표를 별도로 설정하지 않았으며, 각 과목 간의 진술 체계도 통일된 형식이 없어 과목의 독립성이 유지되었다. 고등학교 국사의 학습 목표는 3개 항목으로 제시되었으며, 행동 영역과 관계없이 종합적으로 진술되었다. 국사 학습을 구조적,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민족의 우수성을 발굴하여 민족애를 철저히 하며, 세계사적 관점에서 국사의 특수성과 일반성을 이해하게 할 것을 강조하였다.
제1차 교육 과정의 시행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가 편찬되었다. 교과서는 국정, 검정, 인정으로 구분하고, 국정과 검정 도서를 정규 교과서로, 인정 도서를 보조 교과서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국민학교의 전 교과와 중․고등학교의 도의, 국어, 실과 교과는 국정 교과서에 해당되며,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정부의 심사를 거친 검정 도서가 사용되었다. 1956년 검정에 통과된 국사 교과서는 중학교 10종, 고등학교 4종이었다.
제1차 교육 과정에 따른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교육 과정에 제시된 교과 교육 목표, 단원 구성, 지도 내용을 토대로 편찬되었다. 중학교 국사 교육 과정에는 ‘우리나라 역사’ 영역의 단원 구성을 ‘1) 부족 국가의 생활, 2) 세 나라로 뭉친 사회, 3) 신라 통일 사회, 4) 고려의 재통일 사회, 5)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 6) 근대화하여 가는 조선 사회, 7) 민주 대한’의 7개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단원마다 별도의 목표와 내용을 3~6개 정도의 항목으로 진술하였다. 제1차 교육 과정 시기에 편찬된 교과서들은 교육 과정에 제시된 지도 내용을 토대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각 교과서의 특색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제1차 교육 과정에 따라 역사 교육 연구회에서 편찬한 『(중등) 국사』(정음사, 1961)의 경우를 살펴보면 머리말, 차례, 본문, 부록의 순으로 교과서를 구성하였다. 그 가운데 목차는 ‘1) 민족의 새벽과 부족 국가의 자라남, 2) 삼국에서 통일 국가로, 3) 민족 국가의 발전, 4) 오랑캐들과 싸우는 고려, 5) 이씨 조선, 6) 새 시대로의 전환, 7) 자라나는 민주 대한’의 6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머리말에는 책을 간행한 목적과 유의 사항을 실었고, 본 내용 뒤에는 부록으로 역대 왕력 대조표를 수록하고 있다. 특히, 본 내용에서 소단원 끝에는 알아두기를 수록하여 중요한 특기 사항을 부가하였고, 한 단원의 끝 부분에는 학습 활동을 두어 학습자가 탐구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본 내용은 이 시기 대부분의 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왕조사 중심의 연대기로 서술되었다. 정치사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여 생활사, 경제사 등에 대한 서술이 미흡한 편이며, 조선 시대를 ‘이씨 조선’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용도 다수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역시 교육 과정의 지도 내용에 근거하여 편찬되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육 과정에 제시된 단원 구성은 ‘1) 선사 시대의 문화, 2) 부족 국가 시대의 문화, 3) 삼국 시대의 문화, 4)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 5) 고려의 문화, 6) 조선 전기의 문화, 7) 조선 중기의 문화, 8) 조선 후기의 문화, 9) 현대 문화와 우리의 사명’의 9개 단원이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왕조사 중심의 연대기적 구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으며, 각 대단원이 ‘~문화’로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 서술은 대부분 정치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의 지도 내용을 토대로 편찬된 홍이섭의 『고등 국사』(정음사, 1957)의 경우를 살펴보면 ‘1) 선사 시대의 문화, 2) 부족 사회의 문화, 3) 삼국 시대의 문화, 4)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 5) 고려의 문화, 6) 조선 문화 전기, 7) 조선 문화 중기, 8) 조선 문화 후기, 9) 현대 문화와 우리의 사명’의 9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교육 과정에서 제시된 대단원 제목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각 왕조의 명칭을 대단원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대기적 편년체로 서술하고 있다. 이 시기 편찬된 교과서 중에서 외형적으로 시대 구분을 하고 있는 교과서도 있었다. 유홍렬의 『한국사』(고등학교용, 탐구당)는 왕조별 구분 대신 고대사(~삼국), 중세사(통일신라~고려), 근세사(조선 건국~개항 이전), 최근세사(개항~)라는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왕조에 시대 구분의 명칭만 붙였을 뿐 각 시대별 성격의 차이가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제1차 교육 과정 시기에는 검정에 통과한 중·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각 학교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교과서들 사이에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거나 여러 곳에서 대립되는 학설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어서 일선 학교와 학생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단군 신화의 해석과 고조선의 역사, 삼한의 위치, 신라의 삼국 통일 연대 등 주로 고대사 부분에서 학설상의 차이가 나타났다. 또한 낙랑, 귀주 등 한자음을 읽는 방식의 차이, 안양과 안유, 진대법과 조적법, 소도와 솟대 등 하나의 역사적 사실, 인명, 지명 등을 교과서마다 다른 용어로 사용하여 혼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말미암아 역사 용어나 학설의 통일을 시도하는 작업이 추진되는데, 일각에서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통제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