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8월 31일 중학교 교육 과정, 1974년 12월 31일 고등학교 교육 과정이 발표됨으로써 제3차 교육 과정이 전면 실시되었다. 제3차 교육 과정의 두드러진 특색은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국사 교육의 강화는 ‘국적 있는 교육’을 표방하면서, ‘주체적인 민족사관을 정립하고, 한민족 국가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정부의 조치를 반영한 것이다. 이미 1972년 5월에는 국사 교육 강화 방안이 발표되었고, 이어서 국사 교육 강화 위원회가 설치되어 교과 과정의 개편 등 국사 교육의 기본 방향이 제시되었다. 특히,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정부는 역사적 정당성과 정통성 확립을 위한 방법 중의 하나로 국사 교육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제3차 교육 과정에서 중·고등학교 국사는 사회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 교과가 되었다.
국사과의 독립으로 역사 교육은 사회과에서 분리된 ‘국사’와 사회과 속의 ‘세계사’라는 이원적 체제로 나뉘어 시행되었다. 중학교는 종래 사회Ⅱ로 국사와 세계사를 합해서 주당 3~4시간 배당되었던 것이 국사에만 2, 3학년에서 주당 2시간씩 배당되었고, 세계사는 2학년 사회Ⅱ에 남아 주당 2~3시간씩 배당되었다. 고등학교는 국사가 공통 필수 과목으로 학년 구분 없이 6단위가 배당되고, 세계사는 사회과의 다른 과목과 함께 4~6단위의 선택 과목이 되었다.
제3차 국사과 교육 과정에서 제시된 내용 구성의 기본 방향은 민족사의 주체성과 대한민국의 정통성 강조, 민족사관의 확립 등이었다. 국사과 교육 과정의 교육 목표는 일반 목표와 학년 목표로 나누어 제시되었으며, 일반 목표는 지식·이해, 기능, 가치·태도의 세 가지 영역으로 제시되었다. 중학교 교육 과정의 일반 목표에는 ‘우리 민족의 발전 과정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파악시키고, 민족사의 정통성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한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 일반 목표에는 ‘국사 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민족사관을 확립시킨다’는 내용이 각각 첫 번째로 제시되어 있다. 또한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 모두 국난 극복의 정신을 강조하고,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 중흥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 강조된 민족사의 주체성과 정통성의 강조, 민족사관의 확립 등은 교과서의 내용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제3차 국사과 교육 과정에서는 중·고등학교 국사 교육 내용의 계열화와 관련하여 내용 구성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즉, 중학교에서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 고등학교는 문화사 중심의 통사로 내용을 선정·조직한다는 것이다. 국사과 교육 과정에서는 이러한 계열화 방향을 반영하기 위해 “중학교는 각 시대를 국내 정치사를 먼저 놓고, 이어서 대외관계를 놓도록 하였으며, 각 대단원마다 정치사 중심의 소단원이 반이 되도록 꾸며져 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의 단원 명칭이 ‘~의 생활’로 된 것과 달리 ‘~사회’로 표시하여 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고려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 단원 구성 및 내용에 이와 같은 계열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제3차 국사과 교육 과정에 의해 편찬된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1) 우리나라의 시작과 부족 국가의 생활 2) 삼국의 생활 3) 통일신라와 발해 4) 고려시대의 생활 5) 조선의 성립 6) 민족문화의 융성과 양반사회의 발전 7) 민족의 항쟁과 사회경제의 진전 8) 근대적 문화의 새 기운 9) 정치의 양상과 농민의 자각 10) 개화·척사 운동과 동학 혁명 11)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12) 근대문화의 성장 13) 일제의 침략과 독립투쟁 14) 민족의 해방과 대한민국의 수립 15) 제3공화국과 오늘의 우리’의 15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실학을 기점으로 삼아 전근대에 7개 단원, 근현대에 8개 단원을 배정하였는데, 이것은 2차 교육 과정 때에 전근대 4개, 근현대 2개로 구성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교과서 내용 서술에서는 해방 후부터 2차 교육 과정기의 교과서에 비해 한국사 학계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많이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사시대 부분에서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학자들에 의해 무시되어 왔던 구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인정하였으며, 고려시기 원의 간섭에 대한 저항, 조선시기 당쟁 과정에 대한 새로운 서술, 실학 운동의 자생적인 힘, 개화 운동의 국내적 요구, 동학 농민 운동의 근대적 의식 등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가 새롭게 수용되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1) 고대 사회 2) 고려 사회 3) 조선 사회 4) 근대 사회 5) 현대 사회’의 5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대단원 구성으로 살펴보면 중·고등학교 국사 교육 계열화의 방향으로 제시되었던 ‘중학교는 정치사 중심의 통사, 고등학교는 문화사 중심의 통사’라는 원칙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단원 ‘조선 사회’의 경우, 중단원은 ‘1) 조선 왕조의 성립과 발전 2) 민족문화의 발달 3) 사림의 성장과 그 문화 4) 왜란과 호란 5) 조선 후기의 사회 변동 6) 문화의 새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학교 교과서와 비교해 볼 때 문화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단원을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실제 내용 서술은 정치사 중심이며, 정치, 사회, 문화 영역의 서술 비율은 크게 차이가 없다. 전근대사 부분에서는 국난 극복의 민족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확립을 위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제3차 교육 과정 시기에 교과서 제도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73년 5월 문교부는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발행을 검인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문교부는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꿀 경우 획일적인 역사의식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학계의 연구 성과를 널리 종합한 객관성 높은 교과서, 각급 학교의 계열성을 확립한 효과적인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 국정화가 필요하다며 정책을 강행하였다. 이에 따라 제3차 교육 과정 때부터 국사 교과서는 국정제로 발행되었다. 국정 교과서는 그 이전의 교과서에 비해 짜임새가 있고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하지만 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본질적 목적보다는 정부 시책을 교육에 효율적으로 반영하려는 목적이며, 교과서 체제의 통일 및 중·고등학교 교과서 내용 사이의 체계화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교부는 1977년 8월 교과서 및 지도서 연구 개발을 위한 편찬 기본 계획을 발표하고 교과서 개편 작업 시작하였으며, 1978년 교과서 제도를 국정·검정·인정에서 1종·2종·인정으로 바꾸었다. 국정이었던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물론 세계사 교과서도 1종 도서로 분류되었다. 1종 도서는 문교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나 문교부는 기획 감독의 기능만을 담당하며 연구와 집필은 전문 연구기관에서 맡고, 집필, 심의, 출판 및 보급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교과서이며 ‘연구개발형 도서’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국사 교과서의 연구와 저술은 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담당하였으며, 이후 제6차 교육 과정까지 이러한 체제가 유지되었다.
교과서 발행 제도의 개정에 따라 국사 교과서도 1979년에 개정되었다. 국사 교과서 개정 방향은 “1974년 이후 사용되어 오던 기존 교과서의 골격을 바탕으로 독본용 교재인 ‘시련과 극복’의 내용을 통합하고, 조선 시대사를 발전적으로 주체적 입장에서 강조하고 학문의 새 연구 성과를 크게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1979년 개정본 중학교 국사 교과서는 ‘1) 우리 역사의 시작 2) 삼국의 발전 3) 통일 신라와 발해 4) 고려 시대의 생활 5) 조선의 발전과 시련의 극복 6) 조선 사회의 새 움직임 7) 근대화의 시련과 자주 운동 8) 일제의 침략과 줄기찬 독립 투쟁 9)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의 9개 대단원으로 구성되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대단원 구성은 1974년본과 동일하다. 개정본에서는 종래 근대의 기점이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였다. 중·고등학교 모두 근대의 기점을 대원군의 개혁정치로 통일하였다. 외세에 의한 개항을 근대의 기점으로 삼던 것에서 주체적 입장을 강조하여 개항 이후로 서술한 것이다.
개정본 중학교 교과서의 각 단원 처음에 ‘세계와 우리 나라’라는 난을 두어 국사를 세계사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려는 모습도 나타났다. 또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문화사에 대한 서술을 일정 부분 확대하여 정치사 중심의 중학교 교과서와 계열화하려는 노력도 더하였다. 개정본 교과서에서는 청동기 시대를 남북한 전역에 걸친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하고, 무녕왕릉 발굴을 비롯한 고고학적 성과를 반영하는 등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였다.
1979년 개정본 국사 교과서가 이전 교과서와 가장 달라진 부분은 중·고등학교 독본용 교재인 ‘시련과 극복’의 내용을 통합한 것이었다. 정부는 ‘국적 있는 교육’, ‘국민 정신 교육의 강화’를 위해 근·현대의 민족사적 발전 과정과 대한민국의 성립 과정 및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국사 교과서에 근현대사 부분을 늘이고 내용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기존 교과서에 ‘시련과 극복’이 합본되면서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가 크게 바뀌었고,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강조되는 변화가 나타났다. 교과서 분량도 크게 증가하여 1974년 교과서가 중학교 269쪽, 고등학교 232쪽이었던 것이 1979년 개정본은 각각 306쪽과 302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