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동청사(大東靑史)』는 원래 명칭이 『중등교과 대동청사』로 황의돈이 중등학생을 위해 1909년과 1910년 초에 걸쳐 저술한 한국사교과서다. 국한문의 필사본으로 2권 3편 38장 227면으로 구성되었다. 단군부터 조선시대 영⋅정조 때까지의 통사를 새로운 역사체제인 신사체를 빌어 상고사 – 중고사 – 근고사로 시기를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2. 저자
황의돈(黃義敦, 1890-1964)은 충청남도 서천(舒川)의 전통적 유교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호는 해원(海圓)이며 한말의 문인 황현(黃玹)과는 친족 간이다. 1894년 할아버지 태현(泰顯)으로부터 한학을 공부해, 17세 되는 1906년까지 한서(漢書) 수십 권을 통독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그 뒤 근대식 학교인 군산보통학교에서 1년 정도 수학하였다. 이후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신학문을 접하였다.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북간도 중영촌(中營村)으로 이주하였다. 1909년 용정(龍井)의 명동학교의 교사가 되어 조선 역사를 가르쳤다. 여기서 『대동청사』 저술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 이를 완성하였다. 1911년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교사, 서울 휘문학교(徽文學校)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무렵 중동학교(中東學校)와 기독교청년학관(YMCA)에서도 조선 역사를 강의했는데 1916년 일본경찰이 조선 역사의 강의 내용이 당시 식민지 교육 정책을 위반한다고 하여 체포당하였으며, 이 일로 휘문학교에서 면직당했다. 1920년 이후 약 20여 년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국사와 한문을 강의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중동학교의 교원도 겸임하였다.
일제의 식민정책이 전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정책을 취함에 따라 학교 교육에서 한국사⋅한국어교육을 금지시키자, 황의돈은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직을 사임하고 1938년 4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조선일보사의 기자로 일하면서 조선내의 고적(古蹟)조사를 담당했으며, 오지영(吳知泳)의 『동학사』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1940년 『조선일보』가 폐간되자 기자직에서 물러나 향리에 은거하였으며, 1942년 창씨개명에 반대하다가 옥고를 치루었다. 이후 불교에 귀의하여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에 입산, 방한암(方漢巖) 선사에게 사사하였다. 해방이후 동국대학교 교수, 문교부 편수관을 역임했으며 1964년 75세로 별세하였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文化勳章)을 받았다
저술로는 『대동청사(大東靑史)』⋅『조선신사(朝鮮新史)』⋅『중등조선역사(中等朝鮮歷史)』 등의 사서와 『화담 서경덕전』⋅『이목은전』⋅『안의사(중근)전』⋅『손의암(병희)전』 등 전기 다수, 그리고 「갑오혁신운동과 전봉준」 등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3. 발행의도
『대동청사』의 원래 명칭이 『중등교과 대동청사』로 중등학생을 위한 한국사교과서로 저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저술시기가 1909년과 1910년 초에 걸쳤다는 점은 황의돈이 서간도 용정촌의 명동학교에서 조선역사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로 편찬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황의돈은 1910년 귀국한 이후 1911년에 평양 대성학교로, 1914년에는 서울의 휘문학교, 그리고 중동학교와 기독청년학관에서 조선역사를 강의하였다. 이처럼 1910년대 서울의 여러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담당했던 황의돈이 수업에서 사용한 교재가 『대동청사』 일 것으로 추측된다. 간도에서 저술한 『대동청사』 는 필사본으로 당시의 다른 교과서처럼 인쇄본으로 보급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4. 체제와 서술 방식
황의돈의 『대동청사』는 국한문의 필사본으로 2권 3편 38장 227면으로 구성된 중등학생용 한국사교과서이다. 전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단군부터 조선시대 영⋅정조 때까지의 통사를 새로운 역사체제인 신사체를 빌어 상고사 – 중고사 – 근고사로 시기를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1권 상고사는 제1편 부여족 창립과 한족침입시대란 제목으로 단군부터 삼한까지를, 중고사는 제2편 부여족의 웅비시대란 제목으로 삼국이후부터 고려시대 몽고간섭기 이전까지를 다루었다. 2권은 근고사로 제3편 문흥무쇠시대란 제목으로 고려시대 몽고간섭기 이후 조선시대 영⋅정조 까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구체적인 목차는 아래와 같다.
1권 상고사 - 제1편 부여족 창립과 한족침입시대
제1장 단군의 건국과 자손의 쇠약
제2장 기씨(箕氏)의 역세(歷世)
제3장 위유(衛劉)의 일침(佚侵)
제4장 삼한과 예맥 옥저
중고사 - 제2편 부여족의 웅비시대
제1장 삼국의 돌기
제2장 삼국의 전성시대
제3장 삼국의 쟁란
제4장 을지문덕과 천개소문의 위적
제5장 신라의 통일
제6장 일본의 관계
제7장 가락과 임나와 탐라
제8장 발해의 강성
제9장 신라의 쇠망
제10장 태봉과 후백제
제11장 고려 태조의 창업
제12장 고려 정치와 내란
제13장 외교시대
제14장 내란시대
제15장 거란과 몽고의 입구(入寇)
제16장 종교와 문학
2권 근고사 - 제3편 문흥무쇠시대
제1장 몽고의 압제와 배중손(裵仲孫)의 분기
제2장 정토일본과 합단(哈丹)의 입구(入寇)
제3장 원적(元賊)의 학염(虐焰)
제4장 정토원적과 국권의 복구
제5장 신씨(辛氏)의 난
제6장 외적의 관계
제7장 고려의 쇠망
제8장 태조의 창업과 세종의 정치 ← 실제로는 여기서부터 2권임
제9장 야인과 일본의 정벌
제10장 세조의 혁명과 성종의 정치
제11장 사림의 화란
제12장 동북이적의 관계
제13장 임진란
제14장 광해의 학정과 인조의 혁명
제15장 만주의 관계와 이괄(李适)의 난
제16장 사색의 분쟁
제16장 영조와 정조의 정치와 권신의 세도 ← 16장 중복임
제17장 종교와 문학
체제상의 특징은 첫째, 민족의 대외관계를 기준하는 독자적 시대구분을 시도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상고: 부여족의 창립과 한족침입시대, 중고: 부여족의 웅비시대, 근고: 문흥무쇠시대로 각 시대마다 부여족과 외적의 대응관계에 초점을 두어 통사를 서술하였다.
둘째, 각 시대마다 ‘종교와 문학’이라는 항목을 두어 각 시대의 정치⋅대외관계에 비중을 둔 구성에 비정치적인 분야를 포함시켰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즉 민족역사에서 숭무만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문무의 겸비를 지향하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목차구성에서 나타나듯이 전통적인 방식인 편년체를 탈피하면서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려고 시도한 점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과의 관계에서 모화사상을 극복하면서 기자(箕子)와 위만(衛滿)에게 정복당한 것을 사실대로 밝힌 점과 ‘왜’가 아닌 ‘일본’으로 호칭하면서, ‘임진란’을 상세히 사실대로 서술하려고 노력한 점 등에서 전근대적인 역사서술을 배제하려는 서술방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각장 마지막 부분에 저자의 사론 부분을 두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서술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예컨대 제2편 제3장 삼국의 쟁란의 사론에서는 삼국이 같은 인종,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국가임에도 서로 영토쟁취를 일삼고, 심지어 외족의 힘을 빌어 골육상쟁하여 동종의 국가를 멸망시키는 잘못을 범했다고 비판하였다.
다섯째, 단군조선 이래의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도표기에 단군 개국연호를 사용한 최초의 저술이었다는 점이다.
여섯째, 역대 국왕을 모두 황제로 표기하였으며, 왕의 사망에 대한 기사도 황제의 사망을 의미하는 ‘붕(崩)’이라 표기함으로써 조선의 왕을 중국의 황제와 동격으로 높여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려 노력하였던 점이다.
5. 내용과 서술의 특징
내용상의 특징으로 첫째, 기존 한국역사서가 취한 마한정통설을 탈피하고 신채호의 부여족정통론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상고사에서 단군조선에서 기자조선으로 이어지며, 이후 위만의 모반과 침략을 서술하면서 “단씨가 쇠약한 후로 반도강산에 이족(異族)이 충만하여 단씨-위씨-유씨(劉氏)로 이어져 천여 년 역사상에 외족이 세력을 전단”하여 부여족은 쇠퇴하였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다시 삼국이 일어나 “4천년 역사상이 가장 장엄하고 가장 빛나는 시대”를 맞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신채호가 저술한 독사신론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 통사를 부여족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중등학교의 국사교과서로 저술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제2편 제1장 ‘삼국의 돌기’ 부분에서 이민족을 몰아내고 부여족이 다시 일어남을 강조하고 있어, 민족의 자립을 중시하는 저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삼국 중 고구려를 정통으로 보는 사관에서 삼국의 역사를 서술하여 고구려-신라-백제의 순서로 구성하였으며, 그 서술내용도 고구려의 영역 확대를 중시하였다. 반면에 백제의 경우 부정적인 관점에서 내정을 돌보지 않고, 인접국가와 쟁투하다가 국력을 피폐케 하여 정치에 볼 것이 없다는 사론을 적었다. 분량도 고구려는 한 절로, 신라⋅백제는 묶어서 한절로 편집하였으며, 그 분량도 고구려 부분을 2배 정도 많도록 편집하였다.
넷째, 기사본말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에 주력하여 근대적 역사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의 목차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특히 제3편 제13장 ‘임진란’ 부분을 살펴보면 제1절에서 치란의 원인과 적병의 3도 침입을 서술한 후 이어진 절에서 그 경과를 상세하게 언급하고 제7절에서 강화와 결론(結論)으로 절의 내용을 구성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새로이 대두되고 있던 신역사학의 영향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외래의 영향을 받아 주체를 상실해 버린 전통시대의 학자와는 분명하게 다른 황의돈의 역사서술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신채호의 『독사신론』 과 더불어 황의돈의 『대동청사』를 한국 근대사학의 문을 연 역사저술로 평가하게 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각각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에서 발전사적인 관점으로 저자의 독자적이고 새로운 표현이나 견해가 돋보인다. 즉, 고려 광종의 과거제도의 실시를 “시부(詩賦)로 과거법을 세워 후생(後生)의 허문(虛文)을 숭상하는 기풍을 열고”라고 부정적으로 보았던 점, 고려 성종의 치적이 백성을 화목하게 하고 거란과 여진을 축출한 점 등을 들어 고려 역사상 가장 성군으로 평가한 점, 삼별초의 항쟁을 특별히 소개한 점,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국문으로 이름하면서 “국민 진보상에 크게 유력하니 실로 세계 문자상에 전에 없던 특필이오”라고 극찬하고 있는 점, 이순신의 활약을 소개하는 가운데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강조한 점, 세조, 중종, 인조의 집권을 모두 ‘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등이다.
아울러 철종 이후를 서술하지 않은 점은 저자가 이 책을 서술했던 서간도의 용정이 비록 중국 땅이지만 조선총독부 간도임시파출소가 설치되어 있었던 사실을 고려해서 당대의 사실을 서술할 수 없었던 상황과 조선역사 수업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고육지책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6. 의의와 평가
『대동청사』는 민족의 대외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독자적 시대구분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특징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편년체와 정통설을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인과관계로 규명하려한 서술방식에서 근대사학적 교과서 서술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민족의 역사를 부여족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단군조선에서 조선시대까지를 다루었다는 것과 단군 개국연호를 사용한 최초의 저술이었다는 것이 또 다른 역사적 의의이다.
또한 이 책이 저술되고 학습되었던 당시 이미 일제의 식민사학이 확산되고 이에 따른 한국사 왜곡이 학계와 교육현장에서의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식민사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왜곡되지 않은 민족의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인쇄본이 아닌 필사본이어서 널리 보급되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국권을 상실한 시기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국사교과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영웅주의적 사관이 짙고, 고려나 조선시대의 사회경제 문제에 대한 서술은 무시한 정치설화류의 서술이 많고, 문장의 표현도 국한문이지만 보수적이란 점 등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시대구분법, 실증적 사실에 충실한 점, 인과관계를 규명한 과학적 역사서술에 접근한 점, 전통적 모화사상과 식민사학을 배제한 민족사학의 관점에서 서술한 점 등을 놓고 볼 때 대동청사는 근대사학에 근접한 한국사교과서였다고 평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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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돈선생고희기념사학논총(黃義敦先生古稀記念史學論叢)』, 동국대학교출판부, 1960,
박영석, 「해원(海圓) 황의돈(黃義敦)의 민족주의사학(民族主義史學)」, 『산운사학(汕耘史學)』 1, 1985.
심승구, 「황의돈」,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下, 창작과비평사,1997.
조동걸, 『한국근대사학사』, 우사 조동걸전집 14, 역사공간, 2010.
박종린, 「‘朝鮮史’의 서술과 역사지식 대중화 : 黃義敦의 『中等朝鮮歷史』를 중심으로」, 『 역사문제연구』3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