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국사 부분)』은 신석호(申奭鎬)가 집필하고, 동방문화사에서 1948년 8월 31일에 발행한 문교부 검정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이다.
이 책의 표제를 살펴보면, “문교부 신교수요목 의거 중등 사회생활과용 중등 국사”라고 하고, 저자는 국사관장․고려대 교수․서울대 강사 신석호, 발행은 서울 동방문화사라고 밝히고 있다.
1947년 12월 미군정청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등학교 교수요목에 의해 국사는 공민․지리와 함께 사회생활과에 통합되었다. 이는 단순히 그 이전까지 나누어있던 세 과목을 통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미군정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주의의 보급 통로로서 정치 사회화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회생활과는 교과의 목적을 “사람과 자연 환경 및 사회 환경과의 관계를 밝게 인식시켜 사회생활에 성실 유능한 국민이 되게 한다.”고 밝히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 시민의 양성이라는 사회과 교육의 기본 목적이 등장하였다. 즉 1920년대 이후 미국의 교육을 지배했던 진보주의 사조에 입각한 시민의 양성이 사회과의 주요 목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 콜로라도주와 캘리포니아주의 교수요목이 우리나라의 국사 교과서 편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역사 교과의 목표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동양 및 서양의 전체에 긍하여 문화 생활을 이해시켜 우리 민족의 발전적 자립정신 앙양에 기여케 하며, 나아가 국제 친화를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기르도록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민족사를 중심으로 국사와 세계사를 이해하여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며, 나아가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새로운 시대의 역사의식을 천명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생활’이란 교과목 명칭은 우리나라의 역사 전개를 ‘국사’가 아닌 ‘우리나라의 발달’로 보고자 한 것이다. 교과서 명칭에 ‘사회생활과’ 또는 ‘우리나라의 생활’을 쓴 것은 교수요목이 제정되면서 역사가 지리․공민 과목과 하나로 묶여 사회생활과로 새로 편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교수요목기에는 사회생활과를 신규 교과목으로 도입함으로써 교수․학습 내용의 시야를 넓히고, 국제사회 속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했다. 이 교과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편제한 것으로, 우리나라 교육 과정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국사 부분)』은 교수요목기에 발행된 216쪽 분량의 교과서로 모두 9개의 가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교부에서 제정한 교수요목에 의해 초급 중학교 3학년 ‘우리나라의 생활’ 국사 교과로서 편찬되었고, 고급 중학과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교과서의 머리말에서는 “교수요목에 대한 첫 시험인 만큼 교수상 불편한 점이 많이 있을 줄 믿는 바 교시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듯이 이 교과서는 미군정청에서 제정한 교수요목에 의해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우리나라 생활’의 내용 구성을 보면, 교수요목의 원칙을 준용하여 시대별 연관성을 유지했다. 학습 내용면에서는 현재의 사회 상태를 반영한 정치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치․문화․사회생활 순서로 배열하였다. 정치사 영역이 여전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문화와 사회 생활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머리말에서는 “국사 교육은 우리 민족의 과거 생활을 정확하게 인식시켜 자아를 반성하고 애국심과 자주 정신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의의와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하여 과학적 견지에서 과거의 사실을 다루고, 원인과 결과를 밝히는 동시에 그 미친 영향을 특히 현대 생활과의 관계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따라 교과서 서술 원칙은 우선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나열식으로 제시하지 않고 앞뒤에 일어난 사실들 간에 연관성을 갖도록 유의하여 서술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직접적 영향을 주는 근현대사를 고대사보다 중시하였다. 현대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국사 교육의 목표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국사 부분)』은 어려운 한자어를 “누구든지 알기 쉽게 풀어서” 한글로 서술하였으며, 각 장과 절의 제목도 ‘무엇은 어떠하였는가?’라는 식으로 의문형 문장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각 절마다 말미에 “학생들의 연구심을 돋우게” 하기 위하여 익힘 문제를 실었으며, 주요 용어에 밑줄을 긋고, 세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주를 달기도 해 한층 세련된 모습을 갖추었다.
이밖에도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과 민족의 유래에 대한 총설과 선사시대에 관한 내용들을 실었으며, 연도를 표시할 때에는 반드시 단기(檀紀)를 먼저 적고 그 뒤에 서기를 표기하였다. 이 역시 이전의 국사 교과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들이다.
『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국사 부분)』은 9개의 가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름은 글의 내용을 나누는 ‘장’과 같은 의미이다. 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과 민족의 유래 및 발전, 원시 시대의 살림살이, 고조선과 그 생활 상태, 삼국의 흥망과 그 사회생활, 신라·발해의 성쇠와 그 사회생활, 고려조의 변천과 그 사회생활, 근세조선과 그 사회생활, 최근세의 나라 사정과 그 사회생활, 양차 세계대전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등이다.
첫째 가름(제1장)에서는 우리나라 역사 무대의 범위, 지형과 기후, 우리 민족의 유래, 이동과 분포 및 발전, 우리나라의 명칭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전의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던 민족의 유래와 활동 무대 등이 언급된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가 꾸준히 진전된 결과이며, 일제하 식민교육의 폐해를 제거하고 국사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려는 모습이다.
신석호가 저술한『중등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국사 부분)』은 일제하에서 교육받은 실증주의 역사학자가 광복 후 어떠한 시각에서 국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그것이 국사 교육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 신석호는 실증사학자로서 이병도와 함께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하였으며, 이병도가 주도해 창설한 진단학회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광복 후 조선사연구회 부회장을 거쳐, 1946년 3월 국사관을 발족해 부관장으로서 업무를 총괄하였다. 1949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서 교과서 편찬을 총괄하였고, 1951년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미군정청 학무국이 주도한 교수요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쳐 1954년 4월의 제1차 교육과정까지 적용되었다. 이 시기에 편찬된 국사 교과서들은 민족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광복 이후 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사관에서 부정된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자주성을 회복해야 했다. 그래서 광복 직후 단군을 중심으로 한 고대사의 새로운 체계를 수립하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민족문화의 독자성을 밝히는 민족사학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으며, 신국가 건설과정의 중요한 교육적 과제를 담아내야 했던 것이다.
1949~1953년에 발행된 ‘우리나라 생활(역사)’ 교과서는 이병도의 『중등 사회생활과 우리나라의 생활(역사)』(동지사, 1949), 김성칠의 『중등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생활(역사 부분)』(정음사, 1949), 유홍렬의 『중등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역사』(조문사, 1949), 손진태의 『중학교 사회생활과 역사부분 우리나라 생활(대한민족사)』(을유문화사, 1950), 이인영의 『우리나라 생활(역사)』(금룡도서주식회사, 1950), 이홍직의 『중학교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역사』(민교사, 1950), 김성칠의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역사』(정음사, 1951), 신석호의 『중등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생활(국사 부분)』(동국문화사, 1952), 최남선의 『사회생활과 우리나라 역사』(민중서관, 1952) 등이다.
교수요목 제정 이후에 발간된 역사학자들의 서술 경향을 구분하면, 손진태와 이인영 등은 신민족주의 사학자이고, 이병도와 신석호, 이홍직, 유홍렬 등은 실증주의 역사학자이다. 김성칠과 최남선 등은 문화사학 계열의 역사학자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