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지도

첨단정보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지도.

원하는 지역을 한 눈에 들여다보고, 간편하게 길 찾기도 가능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지도의 중요성은 수 백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의 지도제작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요?

세계 최초의 기록을 가진 조선 지도가 있다?

1488년 포르투갈 탐험가에 의해 발견됐던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유럽에서 인도로 향하는 뱃길을 열어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86년 전 아프리카 희망봉을 표기한 지도가

조선에서 제작됐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 1402년, 일본 류코쿠대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혼일강리 : 하나로 합쳐진 영역

역대국도 : 과거의 도읍지

1402년 태종 임금 시대에 만든 세계지도인데요.

제목인 ‘혼일강리’는 하나로 혼연일체가 되어 합쳐진 영역, 곧 전 세계를 의미하고

‘역대국도’는 과거의 도읍지를 뜻합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과 일본, 중국 외에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까지

그려 낸 최초의 세계지도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조선은 어떻게 이런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요?

그 힌트가 되는 발문을 보면

중국에서 수입한 지도 2점과 조선의 전국지도, 그리고 일본 지도를 합해

새롭게 편집 제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서아시아와 유럽, 북부 아프리카까지 상세히 표기된 것을 보면

이슬람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도까지 참고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문 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천하를 알 수 있고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도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데 일조할 것이다.“

- 대사성 권근의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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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관료가 참여한 국가사업이었던 지도제작

조선은 정교한 지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요?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조선!

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와 유럽, 북부 아프리카를 자세히 수록한 세계관!

조선이란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세계지도로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지도 하나면 주변 지역의 정보를 간편하게 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요.

생활정보에서부터 특색 있는 맞춤 정보까지 지도의 변신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현대 지도 못지않게 다양한 정보를 수록했던 지도가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놀랍도록 자세하고 정교한 조선지도의 걸작 ‘대동여지도’입니다.

김정호는 어떻게 시대를 앞서간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요?

대동여지도 제작의 미스터리

중앙집권국가인 조선은 행정적, 군사적으로 최신 지도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전국지도가 제작됐는데요.

한반도의 윤곽을 사실에 가깝게 그려낸 지도들 중에서도

조선지도의 백미는 ‘대동여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는 22첩으로 구성된 절첩식 지도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고, 각각을 연결해 여러 지역을 볼 수도 있는

자유로운 활용까지! 편리성과 전문성을 살린 획기적인 발상인데요.

모두 연결하면 전체 크기 세로 6.6m 가로 3.8m 의 대형지도가 완성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산세의 표현입니다. 끊어짐이 없이 산줄기로 나타냈고

굵기를 달리 표현해 산의 크기와 높이를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산줄기를 마치 사람의 골격처럼 유기체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로를 직선으로 표현한 것도 독특합니다.

흑백지도에서는 도로와 하천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고 명확히 구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또한 도로에 10리 간격마다 표시를 함으로써

거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기능을 살렸습니다.

대동여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지도처럼 기호가 발견됩니다.

진영, 봉수, 역원, 왕릉까지 다양한 내용을 총망라해

수록돼 있습니다.

기호로 표시함으로써 보다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이 현대지도 만큼의 실용성과 가치를 가진

대동여지도.

어떻게 김정호가 이런 시대의 역작을 제작했는지 놀라운데요.

지금까지는 김정호가 백두산을 수 차례 오르고

전국을 답사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알려졌습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대동여지도는 크기가 큰 만큼 수많은 지리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1만 3천여 개의 지명, 성곽 등 군사시설과 군현의 위치도 매우

정확히 표현돼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한 개인이 전국을 답사하면서 수집하기는 일생을 통해서

하더라도 매우 어렵습니다

즉 고산자 김정호 선생님은 조선 후기에 국가와 관청, 민간에서 이룩했던

과학적인 지도 제작의 성과를 반영하고

그 위에 지리지를 통해서 축적된 국가의 국토정보와

지리 정보를 충실하게 담았던 훌륭한 지도 제작자이자

지리학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보경 교수 / 성신여자대학교 지리학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제작 이전에 여러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저술했습니다.

끊임없이 앞서 제작된 지도를 연구하고 각종 지리정보를 체계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특히 조선 후기 행정단위 별로 제작된 군현지도가 발달하면서

지방의 군사, 행정, 지리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전국지도를 제작하는 데 반영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지도는 관청이나 궁중에 소장돼 있어 백성들이 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제작돼 인쇄가 가능했기 때문에

대량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지도로 백리, 천리를 내다볼 수 있도록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상세하고 정확한 지리정보를 활용해 생활의 편리까지 안겨준 것입니다.

[에필로그]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조선은 국가사업으로 전국지도, 군현지도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2.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3. 조선지도의 제작기술, 지리정보를 종합한 완결판은 대동여지도

【해설 및 참고문헌】

지도는 지역 및 공간 현상의 투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정치 등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이 각인된 그림이다. 고지도는 우리 국토의 옛 모습을 시각적이고 종합적으로 비추어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고지도는 한국의 사회, 역사를 이해하는 많은 분야의 학문적 접근의 기초를 제공한다. 전문적이고 학문적 연구는 물론, 지역의 역사적 제 현상과 사건을 이해하고 복원하는 등 일반적인 분야에서도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자연, 지명, 인문 현상 등을 시각적으로 수록하고 있는 고지도는 필수적 자료이다. 나아가 고지도는 지방에 대한 국가의 행정, 군사적 파악 정도와 능력, 우리 문화의 특성과 수준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화원(畵員)들이 대부분 지도 제작을 담당하여 회화적인 예술품으로서도 귀중한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 민간에서 제작한 지도들은 당시 일반 민중들의 세계관과 공간관을 보여 주는 점에서 귀중한 의의를 지닌다. 지도는 인간의 마음 속에 그려진 세계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지도는 인간 내부의 정신적 세계와 외부의 물리적 세계의 매개체이며, 또한 문자언어나 숫자보다도 앞선 인간의 의사소통의 오랜 형태이다. 지도는 과학, 기술, 미술, 사상 등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다. 지도는 문화적 산물이며, 사회적 산물이다. 지도가 제작되기까지는 지도를 필요로 하였던 사회․문화적 요청이 있다. 지도는 시간과 공간의 교차 속에서 탄생된다. 지도 속에는 역사와 과학이 있고 지리와 환경이 있으며, 역사와 문화를 이룩한 조상들의 숨결이 스며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좌도우서(左圖右書)라 하여 왼 편에 지도를, 오른편에 서책을 두고 가까이 하였다. 지도는 크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통치와 행정, 군사적인 필요성에서 만들어졌지만, 그에 앞서 작게는 사람들의 모듬살이에 필요한 물자가 있는 곳, 이웃 지역, 길 등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남기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지도 중 단독으로 전하는 지도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그것도 대부분 조선 후기의 것이다. 이는 고려 말 몽골과의 오랜 전쟁, 그리고 임진왜란․병자호란과 같은 전쟁을 통해 지도들이 유실되었던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국 고지도의 유형은 지도가 포괄하는 대상 지역의 규모와 내용에 따라 구분한다.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 우리나라 전체를 그린 전도(全圖), 도를 단위로 그린 도별지도(道別地圖), 군현 및 하위지역을 그린 군현지도(郡縣地圖) 또는 분도(分圖), 군사지도인 관방지도(關防地圖), 수도였던 도시를 그린 도성도, 기타 특정 주제 또는 특정 목적에 따라 그린 특수도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중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문화재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1402년), 그리고 조선전도의 대표적인 작품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중심으로 한국의 지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와 조선 전기의 지도

현전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단독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는 조선 전기의 지도 제작 수준과 기술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지도이다. 이 지도는 조선 건국 후 10년이 지난 1402년(태종 2)에 대사성 권근(權近), 좌정승 김사형(金士衡), 우정승 이무(李茂), 검상 이회(李薈) 등이 참여해 국가적 사업으로 만든 세계지도이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일본부터 서쪽으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당시 알고 있던 세계인 구대륙 전체를 포함하는 사실적인 지도이다. 특히 아프리카가 바다로 둘러싸인 대륙으로 그려진 현존하는 최초의 지도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지도이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에 처음으로 도착한 것은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툴로메우 디아스이기 때문이다.

지도 하단에 있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쓴 발문에 의하면, 이 지도는 중국에서 만든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 조선 지도, 일본의 지도를 합하여 새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 지도는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고지도임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대의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조선 초기의 지도 제작 기술의 수준, 국가의 지도에 대한 지대한 관심, 고대 그리스 지도학의 영향과 동서 문화 교류의 흔적, 이슬람 및 몽골 지도학의 전래,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공간 인식을 알려 주는 자료로도 의의가 크다. 이 지도에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크게 그려져 있어 자국(自國) 중심,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하지 않고 일본에 유출되어 전하고 있으며, 몇 종의 사본이 남아 전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두 가지 유형의 전도가 제작되어 조선 후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첫째는 국가에서 정확한 지도 제작을 목적으로 하여 만든 사실적이고 정확한 조선전도이다. 이 유형의 지도는 태종대에 이회(李薈)가 제작한 ≪팔도도(八道圖)≫부터 시작되었으며, 세종‧세조대의 과학기술․지도제작의 발전으로 세조대에 정척(鄭陟)과 양성지(梁誠之)의 ≪동국지도(東國地圖)≫가 제작되었다. 이 지도의 유형으로 현전하는 지도는 16세기 중엽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보 제248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이다. 둘째는 민간에서 지도를 만들 때 원형이 되었던 ‘동람도(東覽圖)’형 지도이다. 조선 전기에 여러 차례 시행되었던 지리지 편찬 사업을 집대성한 전국지리지(全國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1)에는 전도인 〈팔도총도(八道總圖)〉와 팔도의 도별지도가 포함되어 있어 지도와 지지(地志)의 결합을 보여 주는데, 이 지도들을 ‘동람도’로 약칭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지도는 매우 간략한 형태였으나 목판으로 인쇄하여 널리 보급된 책에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사한 지도들이 필사본 또는 목판본으로 수많이 제작되었다.

조선 후기 한국의 고지도의 발달

17세기 후반 이후 조선의 지도에는 현저한 발전이 있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축척지도의 발달이다. 축척이 큰 지도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도의 크기도 대형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지도에 표시되는 내용이 정확, 상세하고 풍부해졌다. 조선 후기의 대축척지도의 발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지도학자는 정상기(鄭尙驥, 1678~1752)와 그 후손들이었다. 김정호보다 한 세기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실학자인 정상기는 당시의 지도 제작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동국지도≫를 제작하였다. 이 지도를 그의 아들인 정항령(鄭恒齡, 1710~1770), 손자 정원림(鄭元霖, 1731~1800)과 종손 정수영(鄭遂榮, 1743~1831)까지 4대에 걸쳐 정교하고 훌륭한 지도로 발전시켜 갔다. 이러한 대축척지도의 발달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전국지도는 ≪대동여지도≫와 거의 유사한 윤곽을 가진 지도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둘째,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활발하게 편찬되어, 특수한 목적의 지도나 주제도가 활성화되었다. 중국의 만주 지역과 조선의 서북쪽을 함께 그린 이이명(李頤命)의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1706),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유형의 군사지도, 성곽지도, 해안을 그린 지도, 봉수도(烽燧圖), 궁궐도, 관청을 그린 관아도, 목장지도, 명승도, 도로지도, 천문도, 묘도 등 여러 유형의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이 지도들은 통치와 행정의 수단으로 지도의 효용성이 일반화되고 있음과, 변경지방의 지역 성장, 지도의 대중화 현상 등을 보여 준다.

셋째, 지방 각 군현을 그린 군현지도의 제작이 급증하였다. 군현지도는 지역의 구조와 그 변화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이다. 18세기 이후에 전개된 군현지도의 활성화는 진경산수화의 발달과 어우러져 예술성이 뛰어난 회화식 지도를 발달시켰다. 회화식 지도는 지역의 정보와 지역의 감성을 예술로 승화시켜 예술적 지도 유형을 형성하였다. 1872년(고종 9)에 전국적으로 제작된 회화식지도들은 개항으로 전 국토가 급격한 변화를 겪기 이전, 조선의 전국 각 군현의 모습을 초상화처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전국 각 지방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전국 모든 군현의 지도를 수록한 전국 군현지도집(郡縣地圖集)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6책~8책의 ≪여지도(輿地圖)≫, ≪광여도(廣輿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등의 지도책이 그것이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편찬된 전국 읍지와 군현지도집은 전국의 모든 군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전 국토에 대한 균등한 관심, 지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이해와 파악, 지도의 행정적 이용과 대중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군현지도 중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방안지도(方眼地圖)의 발달이다. 방안지도는 좌표지도, 경위선표식지도로도 불리는데, 일정한 거리의 방안좌표 즉 눈금을 만들고 지도의 모든 부분이 같은 비율이 되도록 한 지도이다. 방안은 일정한 간격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축척의 역할을 한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전국지도인 ≪청구도≫(1834)는 전국을 남북 29층 동서 22판으로, ≪대동여지도≫(1861)는 남북 22층 동서 19판으로 구획하고, 10리를 기본으로 한 방안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조선후기에 활발하게 제작된 방안지도의 전통을 이어 완성한 지도라 할 수 있다.

넷째, 지도의 보급이 확대되어 민간에서 지도의 소장과 제작이 일반화되었으며, 지도의 양적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는 지도책, 목판본 지도, 한글․한문 병용 지도, 지리지에 삽입된 지도, 휴대용으로 지참할 수 있도록 만든 소형 수진본(袖珍本) 지도의 증가로 나타났다.

다섯째, 서양 지도와 서양의 지리지식이 유입, 수용되면서, 지구와 지도 제작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확대되었다.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간행한 한역(漢譯) 세계지도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세계관의 형성에 자극을 주었다. 한역 세계지도 가운데 영향을 주었던 지도는 마테오리치(Matteo Ricci; 利瑪竇)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1602), 알레니(Giulio Aleni ; 艾儒略)의 「만국전도 萬國全圖」,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의 ≪곤여전도 坤輿全圖≫(1674년;북경, 1856년;廣東)와 『곤여도설 坤輿圖說』등이다. 1834년(순조 34)에는 최한기가 ≪지구전후도 地球前後圖≫를, 1857년에는 『지구전요 地球典要』를 제작․저술하는 등 서양 세계에 대하여 당대 지식인들의 관심이 컸음을 보여 준다.

조선후기의 조선전도(朝鮮全圖)의 발달과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조선 후기의 사회변화와 함께 조선의 지도 제작도 18세기 영조․정조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변화가 대축척지도(大縮尺地圖)의 발달이었다. 이 변화는 특히 전국지도 즉 전도에서 현저했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인들도 정확한 지도의 제작에 기여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정상기(鄭尙驥)와 그 후손들, 그리고 고산자 김정호(金正浩)이다.

조선 후기의 대축척지도의 발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지도학자가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이다. 김정호보다 1세기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실학자인 그는 백리척(百里尺)을 사용하여 ≪동국지도(東國地圖)≫를 제작하였는데 이 지도는 조선시대 지도제작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획기적인 지도였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일정한 축척을 사용하여 도별 지도를 합하면 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었으며, 축척인 백리척을 표시하여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점, 축척 약 1:420.000의 대축척지도로 커짐에 따라 도로․봉수․지명 등을 상세하게 나타낸 점, 조선의 윤곽 특히 북부 지방의 윤곽이 정확해진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는 지도와 지지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았던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지리학의 양 분야인 지도와 지지의 제작으로 실천하였다. 김정호는 1830년대~1840년대에 ≪청구도(靑邱圖)≫‧≪수선전도(首善全圖)≫‧『동여도지(東輿圖志)』를, 1850년대인 철종대에 ≪동여도(東輿圖)≫와 『여도비지(輿圖備志)』를, 1850년대 말부터 1860년대 초에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大東地志)』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지도와 지지 편찬 작업에 최한기(崔漢綺), 최성환(崔瑆煥), 신헌(申櫶)과 같은 후원자들이 재정면에서, 또 자료와 정보 제공면에서 도움을 주었음도 밝혀졌다.

≪청구도≫(1834년)는 전국을 동서 22판, 남북 29층으로 구획하여 만든 방안지도로서, 당시까지 제작된 조선전도 중 가장 큰 지도이다. 각각의 격자는 동서 70리, 남북 100리이며, 이것이 지도책의 한 면을 이룬다. 남북 29층을 층별로 나누어 홀수층은 1권에 짝수층은 2권에 수록하였다. ≪청구도≫가 지니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청구도≫는 대형 전도를 기초로 전국을 방안 격자로 나누고, 남북으로 잘라 각 층을 단위로 지도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여 그린 이전의 군현지도책에서 보이는 축척의 불일치나 도면 넓이의 차이를 극복하였다. 또한 방안 격자를 지도 안에 그리지 않고 도곽선에 10리 눈금을 표시함으로써 방안으로 인한 번잡함을 피할 수 있고 도면 외곽의 눈금에 의해 거리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도 안에는 산천을 비롯한 지형 뿐만 아니라 성곽(城郭)‧창고(倉庫)‧역도(驛道)‧봉수(烽燧)‧진도(津渡)‧교량(橋梁)‧제언(堤堰)‧산성(山城)‧서원(書院)‧사찰(寺刹)‧고읍(古邑) 등 경제‧사회․문화적인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각 군현에는 호구‧전결‧곡총‧군병 등의 기초적인 자료가 주기되어 지도와 지지를 결합한 양식을 보여 준다. 이와 더불어 이전의 전도와 달리 각 군현의 경계가 그려져 있어 군현의 영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김정호가 제작한 마지막 지도로서 한국 고지도의 대명사이자 고전이다. 김정호는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 초간본을, 1864년(고종 원년)에 재간본을 간행했다. ≪대동여지도≫는 한국 전역을 대상으로 그린 전도로서, ≪청구도≫ ≪동여도≫와 함께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조선전도 중 가장 큰 지도로서 전체 크기 세로 6.6m 가로 4.2m의 대형지도이다. ≪대동여지도≫의 목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총 11장(지도 25면),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 1장(2면)이 전한다. 현존본 중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이 보물 제850호로, 서울 역사박물관 소장본은 보물 제85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동여지도≫는 내용상으로는 15세기 이후 각 지방에서 편찬되었던 지지(地志)에 기초하여 풍부하고 상세한 정보를 수록함은 물론, 지도학적으로는 조선 후기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지도 발달의 성과를 종합한 지도였다. 김정호는 조선 후기에 발달했던 군현지도, 방안지도, 목판지도, 절첩식지도, 휴대용지도 등 관청과 민간에서 이루어진 지도 성과를 종합하고, 각각의 장점을 취하여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대동여지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조선 후기에 발달했던 대축척지도의 두 계열, 즉 18세기 이후 민간에서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전국지도․도별지도와, 국가와 관청이 중심이 되어 제작했던 상세한 군현지도를 결합하여 군현지도 수준의 상세한 내용을 겸비한 일목요연한 대축척 전국지도를 만든 점이다.

≪대동여지도≫가 많은 사람에게 보급,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목판본 지도 즉 인쇄본 지도이기 때문에 일반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데에 있다. ≪대동여지도≫ 이전에도 내용이 상세하고 풍부한 지도도 있었으나, 이들은 대체로 필사본으로서 제작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며, 일반 국민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관청이나 궁중에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상세하고 내용이 풍부한 지도를 접하기 어려웠던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대동여지도≫는 획기적인 지도였다. 또한 ≪대동여지도≫는 목판본 지도 중에서도 목판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선명함, 정교함과 품격을 갖춘 지도이다. 정밀한 도로와 하천, 정돈된 글씨와 기호들, 살아 움직이는 듯한 힘찬 산줄기의 조화와 명료함은 다른 어느 지도도 따를 수 없는 판화로서의 뛰어남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산자 김정호는 위대한 지도학자이면서 훌륭한 전각가였다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에서 가장 큰 전국지도이면서도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으로 만들어져 소장․휴대․열람하기에 편리한 형태의 지도였다.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남북으로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전국지도가 되도록 하였다. 1층(첩)의 지도는 동서로 80리 간격으로 구분하여 1절(折 또는 1版)으로 하고 1절을 병풍 또는 어코디언처럼 접고 펼 수 있는 분첩절첩식 지도를 만들었다. 22첩을 연결하면 전체가 되며, 하나의 첩(帖)은 다시 절첩식으로 접혀져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형태이다. ≪대동여지도≫를 펴면 가장 상단에 원고지 같이 눈금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의 눈금 즉 10리가 2.5cm이다. 지도상에서 축척은 일반적으로 거리를 가늠하는데 사용된다. ≪대동여지도≫는 한 면이 120리 80리로서 쉽게 거리를 짐작할 수 있도록 고안된 축척지도인 것이다. 분첩절첩식 지도는 휴대, 보관, 열람에 매우 편리함은 물론, 일부분이 필요할 경우 부분만 뽑아서 휴대하며 참고할 수도 있다. 또한 부분으로 자세히 볼 수 있고, 서로 연결해서 볼 수 있어 분합(分合)이 자유롭다는 장점을 지닌다.

≪대동여지도≫는 한국의 고지도 중에서 가장 지도학적으로 우수한 지도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려 온 동양 지도의 지지(地誌, text)적인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대동여지도≫는 지도 내의 글씨를 줄이고, 표현 내용을 기호화하는 방식을 확립해 현대 지도와 같은 세련된 형식을 보여 주었다. 이를 위해 김정호는 현대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地圖標)’라는 방법을 고안했다. 지도 제1층에 수록된 ‘지도표’에는 14개 항목 22종의 내용이 기호로 표시되었다. 예를 들어 능(陵), 역(驛), 창(倉), 방리(坊里), 산성(山城), 진보(鎭堡), 고현(古縣) 등의 경우 지명에서 공통되는 어미(語尾)를 지도에는 기록하지 않아 글자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대동여지도≫에는 총 11,760여 개의 지명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자의 수를 줄인 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특히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등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역사적인 흔적을 ≪대동여지도≫처럼 상세히 기록한 지도는 없다.

≪대동여지도≫의 내용과 표현상 가장 큰 특징은 산의 특징적인 표현과 분별성이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산이 가장 강하게 눈에 띈다. 그 이유는 산을 이어진 산줄기 즉 산맥(山脈)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줄기의 굵기를 달리 표현함으로써 산의 크기와 높이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형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분수계(分水界)와 산줄기가 이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다. ≪대동여지도≫의 장점은 많지만 특히 주목되는 내용이 도로, 군현의 경계 표시, 봉수, 역원(驛院), 1,100 여개에 달하는 섬, 목장, 그리고 앞서 언급한 역사지리적인 옛 지명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도로 표현이 독특하여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대동여지도≫에서 도로(道路)는 직선으로 표시되었는데, 이는 이전의 지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 또한 목판본 흑백지도에서는 도로와 하천의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고 명확히 구별하기 위해 도로에 10리마다 점을 찍었다. 길 위에 표시된 10리 간격의 점은 지도의 축척을 알려 줌은 물론, 길의 거리를 직접 알려 주므로 이용자에게 매우 편리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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