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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악과 우륵, 우리 전통 음악을 발전시키다

<우륵 동상(우륵박물관, 경북 고령군)>   
고령군청

“우리나라 전통악기 중 줄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는 무엇이 있을까요?”

“거문고와 가야금이요.”

“맞아요. 거문고와 가야금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악기지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악기가 만들어졌던 때는 언제일까요? 또 두 악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이와 관련한 음악을 발전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고구려의 왕산악, 거문고를 만들다

거문고는 술대라는 나무 막대기로 줄을 치면서 소리를 내는 악기에요. 고구려의 왕산악이 만들었다고 전해요. 기록에 따르면 3~4세기 즈음 중국 진에서 7줄로 된 칠현금이라는 악기를 고구려에 선물로 보냈대요. 하지만 이 악기의 소리 성질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요.

“칠현금을 연주하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

왕은 칠현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자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왕산악은 칠현금을 연주하기가 어려우니 악기의 본래 모양을 살리면서 고구려 사람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고치겠다고 했어요. 오랜 연구 끝에 왕산악은 드디어 우리 힘으로 연주할 수 있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냈어요. 그 악기가 바로 네 줄로 된 거문고였지요.

새로운 악기를 만든 왕산악은 이후 그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지었어요. 그렇게 해서 백여 곡이 넘는 연주곡을 만들었어요. 거문고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요. 전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날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검은 학이 날아와 곡에 맞추어 춤을 추었대요. 그래서 악기의 이름에 ‘검을 현’, ‘학 학’, ‘거문고 금’ 자를 써서 ‘현학금’이라고 했대요. ‘현금’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거문고는 원래 고구려에 있던 악기인 ‘고’라는 악기를 바꿔 만든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어요. 악기 이름도 ‘고구려의 금’이라는 의미에서 ‘거문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고구려의 독창성을 좀 더 강조하는 주장이지요.

<거문고를 연주하는 왕산악>   

거문고가 만들어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대체로 4세기 무렵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4세기에 만들어진 안악 제3호분 벽화에 거문고 연주 모습이 보여 그 시기를 추정할 수 있지요. 무용총 벽화에도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거문고의 깊고 꿋꿋한 소리는 고구려 사람들의 기상을 닮았다고 해요. 험한 산지를 내달리며 너른 만주 땅을 호령하던 그들의 기상이 느껴지는 소리랍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거문고는 줄이 두 개 더해져 모두 여섯 줄이 되었어요.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거문고 연주 장면>   
국사편찬위원회

가야국의 가실왕, 가야금을 만들다

가야 연맹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 끼어 있었어요. 가야는 두 나라의 압력과 간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질 좋은 철을 수출하며 문화를 발전시켰지요. 음악 부문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남겼어요. 바로 가야금과 그 연주곡을 만든 것이에요.

가야의 가실왕은 중국 악기가 아닌, 우리 악기로 만든 음악을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궁중의 악사들에게 악기를 만들게 했지요. 악사들은 중국 당의 악기인 쟁을 본떠 12줄의 현악기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악기 이름은 국가명 ‘가야’를 넣어 가야금이라고 지었어요.

가야금의 12줄은 12달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가야금의 생김새나 줄의 수에는 각각 의미가 담겨 있어요. 둥근 윗부분은 하늘을, 평평한 아래는 땅을 뜻해요. 12개의 줄은 12달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하늘과 땅의 조화, 12달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악기이지요.

우륵, 열두 곡의 가야금 연주곡을 만들다

가야금을 만든 후 어느 날 가실왕은 궁중 악사인 우륵을 불렀어요.

“나라의 방언이 서로 다른데, 음악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겠는가?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짓도록 하여라.”

명령을 받은 우륵은 ‘하라가도’, ‘상가라도’ 등 12개의 연주곡을 지었어요. 12곡은 가야의 12개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우륵이 지은 12곡은 음악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륵>   

하지만 가야에서 그의 음악을 발전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532년에 이미 신라에 의해 금관가야가 멸망하였고, 대가야도 비틀거리는 상황이었거든요. 우륵은 가야금과 가야금 연주곡을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결심을 했어요.

우륵, 신라로 건너가 제자를 기르다

우륵은 가야의 운명이 다했다고 여겨 신라로 넘어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에 투항한 우륵은 신라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았지요. 그의 연주 실력은 진흥왕에게까지 알려졌어요.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진흥왕은 궁궐로 우륵을 불러들였어요. 우륵은 진흥왕 앞에서 연주했고, 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진흥왕은 그에게 국원에 가서 살도록 했어요. 국원은 지금의 충주 지역이에요. 충주에 가면 탄금대라는 곳이 있는데, 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는 뜻이지요. 우륵은 계고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야금 연주와 노래, 춤을 가르쳤어요. 우륵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가야금 연주를 배우고 새롭게 곡을 정비했어요.

“스승님, 저희가 열두 곡을 다섯 곡으로 줄였습니다. 열두 곡의 연주곡은 번잡하고 바르지 못합니다.”

“어찌하여 내 연주곡을 줄였단 말이냐? 일단 한번 들어나 보자.”

우륵은 자신의 연주곡을 줄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크게 화를 냈어요. 하지만 제자들이 연주한 노래를 들어본 후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즐겁지만 지나치지 않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구나.”

제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자, 우륵은 자신이 가야를 버리고 신라 땅에 온 이유가 더욱 명확해지는 듯했어요. 가야금 연주곡은 이후 신라의 주요 행사에 연주곡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요. 가야금은 9세기에 일본으로 전해지기도 했어요. 신라에서 전해진 가야금이라는 뜻에서 ‘신라금’이라 하지요. 당시 전해진 신라금이 일본의 황실 창고인 정창원에 남아 있답니다.

우리는 왕산악과 우륵을 한국 음악의 악성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악성은 음악을 발전시킨 뛰어난 음악가라는 뜻이지요. 삼국 시대 이후에도 거문고와 가야금을 이용한 연주곡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지금도 전해오는 두 악기가 이렇게 오래전에 만들어진 악기라는 사실이 놀랍지요? 거문고의 음률은 깊으면서도 절제하는 느낌이 들고, 가야금은 밝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답니다. 여러분도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곡을 들으며 왕산악과 우륵의 노력을 떠올려보길 바라요.

<토우 장식 장경호의 신라금 켜는 사람의 모습(국립중앙박물관)>   

[집필자] 황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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