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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 신라 발전의 기반을 닦다

<이차돈 순교비>   
국립경주박물관

“짐이 오늘 신라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겠소, 불교를 정식으로 인정하고자 하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떻소?”

“전하! 아니되옵니다. 이미 신라에는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토착신이 있사옵니다.”

신라 법흥왕은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이차돈이 순교한 덕분에 신라에서 불교가 인정을 받게 되었지요. 법흥왕은 불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비롯하여 어떤 정책을 펼쳤을까요?

율령을 만들어 널리 알리다

신라 법흥왕은 지증왕과 연제부인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역사책에 따르면 어릴 때 이름은 원종이었어요. 514년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어요. 이후 27년 동안 신라를 다스렸지요. 키가 7척(약 170cm 정도로 추정됨) 정도이고, 성품이 너그러워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법흥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귀족들의 힘이 매우 컸어요. 법흥왕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왕권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우선 군사 업무를 총괄하는 병부를 설치했어요. 병부는 오늘날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부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귀족이 아닌 국왕이 직접 군사를 지휘하는 체계를 갖추었어요.

법흥왕은 율령도 제정했어요. 율령은 죄와 벌을 규정한 형법인 ‘율’과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각종 제도 등을 규정한 ‘영’을 아우른 명칭이에요. 국가 운영을 위한 모든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이전에는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규정에 따랐는데, 이제는 율령을 정하여 백성에게 알림으로써 공식적인 국가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던 거예요. 귀족들은 제멋대로 형벌을 내리거나 법을 고칠 수 없게 되었지요. 반면에 왕의 권력은 강력해졌어요.

<병부 설치와 율령 반포>   

법흥왕은 신하들이 업무를 볼 때 입는 옷의 색을 신하들의 위계에 따라 붉은색, 자주색 등으로 정해주기도 했어요. 이로써 신하들은 입는 옷까지 왕의 명령을 따라야 했지요. 법흥왕은 국왕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키워 신하들의 위계질서를 세우려고 했어요.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했어요. 삼국의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였지요. 이 무렵 중국에서 불교가 전해졌어요. 삼국 중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했고, 얼마 후 백제도 4세기 후반 침류왕 때 불교를 받아들였어요.

신라에도 5세기 전반에 불교가 전해졌어요. 하지만 신라는 불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왜냐하면 신라 귀족들이 오랫동안 믿어 왔던 기존의 토착 신앙을 불교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514년 왕위에 오른 법흥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외국에서 들여온 종교인 불교를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귀족들의 반대가 눈에 보듯 뻔했기에 고민이 커졌어요.

‘나의 권위를 높이고 귀족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는 불교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때마침 왕이 아끼던 신하 이차돈이 찾아왔어요. 평소 법흥왕의 고민을 잘 알고 있던 이차돈은 왕과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어요.

“전하! 소인은 전하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제 목을 베어 귀족들의 반대를 막으시옵소서.”

법흥왕은 죄 없는 신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다고 하며 거절했지요. 그러나 이차돈은 또다시 간청했어요. 그의 굳은 결심 앞에 드디어 법흥왕도 생각을 바꾸어 이차돈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음날부터 이차돈은 귀족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숲이 있는 천경림으로 갔어요. 그리고 나무를 베어다가 그곳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지요.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귀족들은 화가 나서 법흥왕에게 항의했어요.

“전하! 이차돈이라는 자가 저희가 토착신을 모시는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절을 짓고 있습니다. 큰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법흥왕은 이차돈을 불러오게 했어요. 이차돈은 자신이 왕의 명령인 것처럼 속여서 나무를 베었다고 했어요. 법흥왕은 이차돈과 미리 약속한 대로 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지어낸 죄를 물어 이차돈의 목을 베게 했어요. 이때 이차돈이 말했어요.

“전하! 부처님이 계신다면 제가 죽은 뒤 신기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를 꼭 받아들이소서.”

  

이 말을 남기고 이차돈은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이차돈이 처형되는 순간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어요. 사람들이 서 있던 땅은 크게 흔들렸어요. 이 광경을 본 귀족들은 깜짝 놀랐어요.

법흥왕은 귀족들에게 힘주어 말했어요.

“그대들은 저 신기한 일을 보았는가? 앞으로 우리 신라는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이다. 앞으로 다른 소리를 한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법흥왕은 이차돈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주고 흥륜사라는 절을 지어 그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어요. 드디어 신라는 이차돈이 죽을 때 나타난 신기한 일들을 계기로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차돈의 죽음 뒤 일어난 신기한 일은 과연 사실일까요? 당연히 사실일 수는 없겠죠. 신라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토착 신앙을 믿는 귀족들의 반대가 매우 심했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어렵사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거치면서 신기한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이 돼요.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528년(법흥왕 15)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되었어요. 불교는 ‘왕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왕을 부처와 같이 섬기도록 해 왕권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어요.

영토를 넓히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다

법흥왕은 여러 정책을 통해 권력을 강화한 뒤 눈을 돌려 영토 확장에 힘썼어요. 당시 신라 주변에는 고구려, 백제 외에 남쪽에 가야 연맹이 있었는데, 특히 법흥왕은 남쪽 지역에 관심을 기울였어요. 이러한 신라의 팽창에 부담을 느낀 대가야가 사신을 보내 결혼을 요청해왔어요. 법흥왕은 귀족 비조부의 여동생을 대가야의 이뇌왕과 결혼하도록 했어요. 여러 해가 지난 후 532년에는 금관가야의 왕이 세 아들과 함께 신라에 항복해왔어요. 금관가야의 항복은 신라가 낙동강과 남해안의 중요한 곳이었던 김해를 발판으로 가야의 여러 나라를 정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어요.

이러한 영토 확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법흥왕은 독자적인 연호인 ‘건원’을 사용했어요. ‘군주가 다스리는 국가에서 연도를 세는 호칭’을 뜻하는 연호는 원칙적으로 중국의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어요. 따라서 신라 법흥왕 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점은 중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자주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만큼 당시 왕과 국가의 힘이 강했음을 의미하지요.

법흥왕이라는 시호가 정해지다

법흥왕 때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불교는 이후 신라 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어요.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할 수 있었지요.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불교는 더욱 발달했어요. 통일 신라는 그 땅을 불국토, 즉 부처님의 나라가 되려고 절, 불상, 탑 등을 많이 만들었어요. 이러한 불국토의 기반을 닦은 왕이 바로 법흥왕이었어요.

540년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불교를 흥하게 한 군주라는 뜻으로 ‘법흥’이라는 시호를 붙였어요. 여기서 ‘법’은 불교의 법 즉, 불법을 뜻해요. 시호란 왕이 세상을 떠나면 신하들이 왕의 일생과 업적을 평가하여 그에 알맞은 이름을 지어 올리는 이름이에요. 그가 생전에 얼마나 불교 공인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법흥왕의 업적을 다시 되새겨볼까요? 병부 설치, 불교 공인, 독자적인 연호의 사용 등은 신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성과예요. 이를 바탕으로 후대의 왕들은 국력을 더욱 키울 수 있었지요. 오늘날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진 성과는 미래에 더 나은 결과로 나타나지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생활해 보아요.

<법흥왕릉>   
문화재청

[집필자] 방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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