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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부처를 찾아 천축국에 가다

<돈황 막고굴(중국 간쑤성)>   

“석굴 속에 많은 두루마리 문서들이 쌓여 있더군요.”

“아주 오래된 것들이지요. 주로 불경이랍니다.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시면 원하는 만큼 가져가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는 둔황의 막고굴에서 천여 년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먼지만 수북이 쌓여 있던 두루마리들을 조사하고 분류하였어요. 그리고 7,000여 점을 프랑스로 가져갔지요.

펠리오가 가져간 두루마리 속에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신라의 승려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도 있었어요. 그 먼 옛날 혜초는 어떻게 중국의 둔황까지 가게된 것일까요? 또 그가 쓴 『왕오천축국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혜초,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으로 가다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공인되었고, 점차 백성들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어요. 삼국을 통일한 이후 신라에서는 불교가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요. 전국 각지에 많은 절과 탑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였지요.

<이차돈 순교비(국립경주박물관)
이차돈의 목을 베자 하얀 피가 솟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전해짐>   

국내에서 불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낀 승려들은 부처의 나라 천축국(인도)에서 새로 들여온 경전과 최신의 불교 이론을 접할 수 있는 당으로 유학을 갔어요. 유학길에 오른 승려들은 열심히 불교 경전을 구하고 깊이 있게 불교를 공부했어요. 당으로 유학을 떠난 많은 신라의 승려 중 한 사람이 바로 혜초랍니다.

혜초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당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당의 남쪽지방인 광저우에서 천축국에서 온 승려 금강지를 만나 제자가 되었어요. 금강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혜초는 인도어로 쓰인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일도 했어요.

“4년 동안 천축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마음속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 부처님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깨달음이 불경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부처님의 나라 천축국에 가보는 것은 어떠하겠느냐?”

혜초의 질문에 금강지가 천축국 순례를 추천하였어요. 그러자 다른 제자가 나서 말을 했어요.

“하지만 스승님! 천축국으로 떠난 많은 스님들 대부분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험한 길을 꼭 가야할까요?”

당시 인도로 가는 길은 높은 파도를 헤치며 오랜 기간 배로 항해를 하거나, 높은 산과 사막을 건너는 방법 밖에는 없었어요. 멀고도 험한 길 뿐만 아니라 가는 도중에 병에 걸리거나 도적을 만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지요. 당시 중국에 유학한 신라의 승려는 180명에 이르렀고, 이중 인도로 떠났던 사람은 15명이었어요. 이들 중 10명이 여행길에서 목숨을 잃었고, 중국이나 신라로 돌아온 사람은 5명뿐이었어요. 이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한 2만km의 인도 여행은 목숨을 건 위험한 도전이었어요.

<혜초의 순례길>   

불교의 성지, 천축국을 가다

깨달음에 목말랐던 혜초는 드디어 인도로의 여행을 결심했어요. 혜초는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바닷길을 이용해 인도로 향했어요. 인도를 향했던 많은 승려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어요. 혜초 보다 200년 앞서 우리나라 승려 중 가장 먼저 인도를 찾은 백제의 겸익 스님도 이 길을 따라 여행을 하였지요.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배를 타고 중국 광저우를 떠난 혜초는 동남아시아 해안을 따라 이동하였어요. 여행이 한창일 때 위의 시 한편을 남겼요. 시에는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담겨있지요. 시 속에 계림은 신라의 도읍 경주를 말하고, 일남은 지금의 베트남일거라 추측하고 있어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혜초는 동천축(동인도)에 도착했어요. 천축국에 도착한 혜초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아이고! 망측해라. 이보시오, 어찌 그리 발가벗고 다니시오? 옷이 없으신가요?”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식물을 살생해야 하지 않소. 우리는 살생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지낸답니다.”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며 혜초는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동천축에 도착한 혜초는 가장 먼저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옛 마가다 왕국의 유적들을 돌아보았어요. 부처가 태어난 곳, 불교를 처음 전파한 곳, 돌아가신 곳 등 불교의 여러 성지들을 찾아 참배하고 돌아보았어요. 그리고 중천축으로 넘어갔지요.

<혜초가 만난 천축국 스님들>   

혜초는 여행을 하면서 절이나 탑 등 불교 유적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보고 느낀 점, 풍습이나 정치 상황까지 기록으로 남겼어요. 혜초가 보았던 천축국의 모습은 이러했어요.

다섯 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거나 매를 때리는 형벌과 감옥은 없다. 오직 죄인에게는 죄의 무거움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도 없다.

이곳은 기후가 아주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은 볼 수 없다. 쌀 양식과 떡, 보릿가루, 우유 등을 먹으며, 간장은 없고 소금을 먹는다. 흙으로 구워 만든 냄비에 밥을 익혀 먹지,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없다.

왕이나 벼슬아치, 부자들은 전포로 만든 옷을 입고, 스스로 지어 입는 사람은 한 가지만 입으며, 가난한 사람은 반 조각만 몸에 걸친다.

낙타, 노새, 당나귀, 돼지 등의 가축은 기르지 않는다. 양과 말은 아주 적어 오직 왕만이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 수령과 백성들은 모두 다른 가축은 기르지 않고 오직 소를 기르는 것만 좋아한다. 우유와 버터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서 가축을 잡는다든가 고기를 파는 곳을 볼 수가 없다.

동천축에서 시작해 남천축까지 둘러 본 혜초는 인도 북쪽의 인더스강까지 나아갔어요. 인더스강 주변으로 서천축이 있었는데 이곳은 종교가 다른 아랍인들의 침략을 받고 있었어요.

설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돌아보다

혜초는 북천축을 지나 카슈미르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불교 미술이 크게 발달했던 간다라에 이르렀어요. 간다라를 지나 아프가니스탄, 이란(페르시아), 이라크(아랍),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지금의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여행을 했어요.

혜초는 중앙아시아의 토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기록을 남겼어요.

가죽 외투와 면직물 옷 등을 입는데,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죽 외투를 겉옷으로 입는다. 낙타, 노새, 양, 말, 면직물, 포도가 풍부하다. 음식은 오직 빵을 좋아한다. 겨울에는 서리와 눈이 내린다. 국왕과 수령과 백성들이 삼보를 깊이 공경하여 절도 많고 스님도 많다.

사막을 넘어 다시 당으로

토하라를 거쳐 세계의 지붕 파미르에 이른 혜초는 이제 중국 땅으로 다시 들어가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 사이로 난 험난한 서역북도를 따라갔어요.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새 한 마리 찾아 볼 수 없는 끝없는 사막,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소용돌이치는 모래 바람 속에서 알 수 없는 죽은 자의 해골을 보며 혜초는 한걸음 한걸음 두 발을 내딛었어요. 그리고 둔황을 눈앞에 두고 왕오천국전의 기록은 끝이 납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을 넘는 혜초>   

당으로 돌아온 혜초는 다시 고향인 신라 계림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당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생을 마친 것으로 보여요. 천축국을 다녀오면서 혜초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가슴에 새기지 않았을까요?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을 것이며, 법에 의지하여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혜초는 4년여 동안 천축국을 여행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했어요.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남겼지요. ‘다섯 천축국을 다녀오다’라는 뜻의 이 책은 6천여 자만 남아있는 짧은 여행기랍니다.

하지만 이 여행기는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보다 무려 500년이나 앞선 것으로, 8세기 인도와 서역의 모습을 담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록이랍니다.

<왕오천축국전
총 길이가 358cm로 닥종이 9장을 이어 붙여 만든 두루마리 문서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집필자] 신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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