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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다

<목면시배유지전시관(경남 산청군)>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이 무명옷과 솜이불 덕분에 올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니 말일세.”

“그러게 말일세. 문익점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아직도 추위에 떨며 살았을 것일세. 생각할수록 참으로 고마운 분일세.”

목화로 따뜻한 무명옷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무명옷을 입게 되었을까요? 문익점은 어떻게 해서 목화씨를 고려에 들여오게 된 것일까요?

원에 사신으로 가다

고려 말기 공민왕 때의 일이었어요. 당시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가지 개혁 정치를 펼치고 있었지요. 원은 이러한 공민왕을 못마땅하게 여겨 왕위에서 내쫓으려 하였어요. 당시 고려의 국왕은 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형편이었지요.

“문익점, 그대를 서장관으로 임명하노니 원으로 떠나주시오.”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공민왕은 원에 사신단을 보내기로 하였어요. 서장관은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벼슬로 사신 일행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어요. 문익점은 사신단과 함께 원으로 떠났어요.

그런데 그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원이 충선왕의 아들인 덕흥군을 고려의 새 왕으로 세우고 공민왕을 몰아내고자 하였어요. 이때 문익점은 덕흥군 편에 섰어요.

하지만 덕흥군 세력은 원의 군사들과 함께 고려를 공격하다 최영과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 패하고 말았어요. 이로 인해 문익점도 그만 벼슬을 잃고 고려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그러다 문익점은 뜻밖에도 아주 중요한 보물을 만나게 되지요.

뜻밖에 목화송이를 만나다

고려로 돌아가려는 문익점의 마음은 무거웠어요. 그러다 새하얀 꽃들의 풍경이 눈에 확 띄었어요. 예쁜 꽃들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였어요.

‘아니, 가을도 끝나가는데 웬 꽃들이지?’

문익점은 궁금하였어요. 태어나 처음 보는 풍경이었거든요.

<목화를 보게 된 문익점>   

목화에는 부드럽고 하얀 솜이 송이송이 달려 있었어요. 아직 터지지 않은 목화 봉오리도 금세 터질 듯 부풀어 있었어요. 목화솜을 실제 만져 보니 푹신푹신 한 것이 참으로 따뜻하였지요. 보기만 해도 예쁜데 이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만 하였어요.

고려에 목화씨를 들여오다

문익점은 목화송이를 하염없이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추위에 떠는 고려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고려 백성들의 의생활을 고민하고 있는 문익점>   

고려의 사람들은 명주, 모시, 삼베와 같은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었어요. 그런데 명주는 너무 비싸서 귀족들과 부자들만 입을 수 있을 뿐이었어요. 많은 백성은 모시와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지요. 하지만 모시와 삼베옷은 여름용 옷이어서 풀이나 털을 넣어도 한겨울이 되면 백성들은 추위에 시달려야 했어요.

“이보시오. 목화씨 좀 얻을 수 있소?”

“그러시오. 음, 그런데 고려는 추워서 키울 수 없을 텐데요...”

원의 사람들은 고려에는 목화가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하였어요. 목화는 우리나라보다 따뜻한 지방에서만 생산되었거든요.

<목화 첫 재배지 산청의 위치>   

하지만 문익점의 생각은 달랐어요. 우리나라도 남쪽 지방은 따뜻하니까 한번 키워 볼 만하다 생각하였지요. 문익점의 집이 겨울에도 따뜻한 편인 경상남도 산청이었거든요. 문익점은 목화씨 여러 개를 따서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어요. 이제 고려로 돌아가는 문익점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어요.

목화 재배에 성공하다

벼슬을 잃은 문익점은 고려에 돌아오자 고향인 경상남도 산청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곧 장인인 정천익을 찾아갔지요.

“장인어른! 저 문익점 돌아왔습니다. 그간 잘 계셨지요?”

“그래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이리 돌아왔으니 참으로 다행일세.”

정천익은 원에서 고생한 사위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어요. 잠시 후 문익점은 품에 넣어 온 목화씨를 조심스레 꺼내 보였어요.

“이것이 무엇인가?”

“목화씨입니다.”

“목화씨? 솜도 만들고 무명도 만든다는 그 목화씨 말인가? 그런데 이 목화씨를 왜 갖고 왔는가?”

“키워보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장인어른과 함께 키워보고자 합니다. 장인어른과 저하고 반씩 나누어 심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성공 가능성은 높겠군. 그래, 최선을 다해 해보세!”

문익점은 정천익과 따로따로 목화씨를 심기로 하였어요. 문익점은 희망을 품고 목화씨를 심었어요.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싹은 나오지 않았어요. 혹여 싹을 틔운 목화도 곧 말라 죽어 버렸어요. 문익점은 실망한 마음으로 장인어른의 집으로 갔어요.

“장인어른! 어찌 되었습니까? 제 것은 그만 다 죽어 버렸습니다.”

“기뻐해라. 내 것은 다행히도 하나가 살아남았다!”

“우와! 정말입니까? 잘 되었습니다. 이걸 잘 키우면 우리나라 땅에서도 목화가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문익점과 정천익은 너무너무 기뻐하였어요. 문익점은 다 실패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뜻밖에 한 송이가 떡하니 자라는 거예요. 이들은 농사 경험도 부족하고 목화 키우는 법도 제대로 몰랐어요.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기에 살아남은 목화 한 송이를 정성껏 키웠어요. 이들의 노력에 하늘도 외면하지 않았는지 그해 가을 하얀 목화솜 사이에 까맣게 박힌 여러 개의 목화씨를 얻을 수 있었어요. 한 개의 목화 씨앗이 훨씬 많은 목화 씨앗으로 불어났어요.

목화씨를 기후와 토양이 다른 땅에 재배하여 성공한 역사적 순간이었어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해에는 더 많은 목화를 길렀어요. 또 그 이듬해 더 넓은 땅에 목화를 심었지요.

<목화 재배에 성공한 정천익과 문익점>   

무명옷이 널리 퍼지다

그렇게 3년이 지난 1366년 가을, 문익점과 정천익은 사람들에게 씨앗을 나눠줄 만큼 목화를 잘 키워 냈어요.

“여러분! 이게 무명을 만드는 목화씨입니다. 정성을 다해 키우세요. 여러분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옷을 입을 수 있소이다.”

사람들은 기뻐하였어요. 그리고 고마워하였어요. 따뜻한 봄이 오자 산청 지역의 농부들은 목화씨를 심었어요. 농부들에게 목화 키우는 방법도 알려주었어요. 가을이 되자 산청 지역 곳곳에는 목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씨를 빼는 게 일이네. 솜에서 실은 또 어찌 만드는 거지?”

“그러게요. 목화만 키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두 사람은 열심히 연구했지만, 이 고민거리를 풀지 못하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원에서 온 홍원이라는 스님이 정천익의 집 앞을 지나가다 목화를 보고는 감격하며 말하였어요.

“우리나라의 목화를 여기서 볼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세상에 우연도 이런 우연은 없었어요. 정천익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의 스님을 그의 집에 묵게 하였어요. 문익점도 허겁지겁 달려왔어요. 두 사람은 스님을 며칠 동안 잘 대접하였어요. 그리고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정중히 부탁하였어요.

“스님,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무명옷을 입으려면 실을 뽑는 기술을 알아야 하는데, 혹시 알고 계신다면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목화를 이용해 천 만드는 과정(목면시배유지전시관)
① 목화송이가 뭉게뭉게 피었어요.
② ‘씨아기’를 사용하여 목화송이에서 목화씨를 따로 빼내요.
③ ‘물레’를 사용하여 둥글게 만 고치의 솜에서 실을 뽑아내요.
④ ‘베틀’에서 씨실과 날실을 번갈아 통과시키며 옷감을 만들어요.>   

하늘이 그들의 정성에 감동해서 도와준다고나 할까요? 다행히도 원의 스님은 목화송이로부터 실과 옷감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알고 있었어요. 원의 스님은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방법을 알려 주었어요. 그리고 목화 기구들도 만들어 주었어요.

“이것은 씨아라고 목화송이에서 씨를 제거하는 도구입니다. 이 씨아에 목화송이를 넣고 돌리면 이렇게 씨는 떨어지고 솜만 나오지요.”

“와, 신기하네. 그럼 솜으로 실은 어떻게 만듭니까?”

“이 물레를 이용하여 솜을 자아내면 무명실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홍원은 베틀을 이용해 뽑아낸 목화 실로 베를 짜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이 기구들을 이용해 무명천을 실제 만들어 보는 것이었어요. 정천익은 집안의 여자종을 불러 물레로 실을 뽑고 베틀로 무명 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무명을 만들어 보도록 하였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어요.

“나리! 가르침대로 하여 무명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명(면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어요. 문익점과 정천익은 기뻐 눈물을 흘렸어요. 지난날의 정성과 고생한 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어요.

두 사람은 무명 만드는 방법을 이웃 마을에 전하고 서로 배워 알게 하였어요. 이들의 노력으로 10년이 되지 않아 무명옷은 나라 곳곳에 널리 퍼지게 되었어요.

무명은 사람들이 평소에 입었던 삼베옷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어요. 삼베옷을 만들 때보다 힘도 훨씬 적게 들었어요. 부자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따뜻한 겨울을 선물한 그들을 칭송하였지요.

“이제 백성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어! 문익점, 만세!”

문익점이 죽은 이후 그의 공로는 더욱 높게 인정받았어요. 조선의 태종 임금은 그를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공신으로 평가하고 벼슬을 내렸어요. 또한 조선의 유명한 학자인 퇴계 이황도 문익점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말을 남겼어요.

문익점이 가져온 작은 씨앗 하나가 사람들의 생활을 엄청나게 변화시켰어요. 벼슬을 잃고 실망만 하고 있었다면, 포기하지 않는 그의 정성어린 노력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여러분도 문익점의 작은 씨앗과 같은 꿈을 품어보면 어떨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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