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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고려의 마지막을 지키다

<선죽교(황해북도 개성)>   
국사편찬위원회

“고려는 나라의 운이 다했습니다. 하늘을 바꾸는 것이 썩은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입니다. 포은! 우리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나에게 하늘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일백 번을 다시 죽는다고 해도 고려를 배신할 수는 없소.”

고려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포은은 정몽주를 말해요. 그는 왜 망해가는 고려를 끝까지 지켰을까요? 정몽주가 개혁하고자 했던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고려, 나라의 근본이 무너지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지 90여 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던 원도 내부의 권력다툼과 수탈에 지친 백성들의 반란으로 점점 힘을 잃어 갔어요. 특히 한족 출신의 주원장이 세운 명의 영향력이 점점 확장되어 갔어요. 이 무렵 공민왕이 원에서 돌아와 고려의 왕이 되었어요. 그의 눈에는 원에 아부하며 권력을 잡은 권문세족들의 잘못된 모습들이 보였어요.

권문세족들은 나라로부터 받은 땅과 백성들에게 힘으로 빼앗은 땅을 이용해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큰 산이나 하천을 경계로 할 정도로 넓은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았지요. 땅을 빼앗기고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진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권문세족의 노비가 되거나, 절에 들어가 중이 되었어요.

농민들이 권문세족에게 땅을 빼앗기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겼어요. 많은 농민이 노비나 중이 되고 세금을 내는 백성의 수가 줄어들자 나라의 재정도 부족해졌어요. 그러자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려고 땅을 가진 농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죠. 원래는 생산한 것의 10분의 1만 세금으로 냈는데,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10분의 8~9를 세금으로 거둬갔어요. 당연히 땅을 가진 농민들의 생활도 갈수록 궁핍해졌지요.

권문세족에 의해 백성들의 삶이 무너져가고 있을 때, 홍건적과 왜구가 고려에 쳐들어 왔어요. 이 도적 무리는 해안가 마을뿐만 아니라 내륙 깊은 곳에 있는 마을까지 약탈하고 백성들을 죽였어요.

그러나 나라의 재정이 부족했던 고려는 제대로 된 군대를 보내 도적들을 몰아낼 힘이 없었어요.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강화도가 왜구에게 공격당하기도 해 백성들에게는 마을을 버리고 작은 섬이나 산으로 도망가 숨어 살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어요. 그러자 심지어 왜구들은 이런 말을 했어요.

“막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으니 고려 땅은 참으로 우리에게 낙원이구나!”

안으로는 권문세족의 약탈에, 밖으로는 왜구들의 노략질에 백성들은 비참한 삶을 이어갔어요. 대부분의 백성이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았어요. 나라의 곳간은 텅텅 비었는데, 권력을 잡은 자들의 창고만은 넘치니 고려의 운이 다했다고 할 수 있지요.

혼란한 고려를 이끌다

1337년, 혼란스러운 고려에 정몽주가 태어났어요. 그의 어머니가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깨트리는 꿈을 꾸고 낳았다 해서 ‘몽란(꿈속의 난)’이라 불렸어요. 나중에 몽주로 이름을 바꾸었지요.

정몽주는 어려서 총명하였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24세에 과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어요. 이때 문익점도 함께 과거에 합격했어요.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된 정몽주와 동료들은 어지러운 고려를 바로잡겠다는 뜻을 함께했어요.

관리가 된 정몽주는 여러 일을 했어요. 이성계와 함께 여진족을 물리치기도 했고, 공민왕이 인재를 양성하고 고려를 개혁하기 위해 다시 세운 성균관의 박사가 되어 젊은 학자들을 키우기도 했어요. 임금이 불교를 따르려 하면 앞장서서 이를 말렸어요. 최고 권력자가 명을 멀리하고 원과 다시 가까워지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 유배를 가기도 했어요.

<일본 관리와 회담을 하는 정몽주>   

정몽주는 외교력도 뛰어났어요. 왜구 문제로 일본에 파견된 정몽주는 협상을 통해 왜구를 막는 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어요. 게다가 포로가 된 백성 수백 명을 다시 고려로 데려오기도 했어요. 힘이 커진 명이 고려에 막대한 양의 공물을 요구하자 명 황제를 직접 만나 많은 양을 줄이기도 했어요. 정몽주는 외교로 혼란한 고려를 지켜냈어요.

토지 개혁을 주장하다

정몽주는 잘못 나아가고 있는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고려를 개혁하려던 이성계나 정도전과도 뜻을 함께했지요. 이성계도 정몽주를 크게 믿어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그를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나랏일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몽주를 추천하여 나라의 큰일을 맡겼어요.

위화도 회군 이후 임금을 바꾸고 권력을 잡은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진 것은 땅과 세금 문제였어요. 권문세족이 빼앗은 땅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야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고, 백성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있어야 나라도 안정시킬 수 있었어요.

“백성의 수를 헤아려 토지를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권문세족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것이 두렵다면 어찌 고려를 개혁할 수 있단 말이오!”

정도전은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토지 개혁을 하려 했어요. 그래서 모든 토지를 나라가 소유하고, 이를 농민에게 골고루 나눠주어 경작하게 하자고 주장하였어요. 그러나 정도전의 토지 개혁에 대한 생각이 너무도 앞선 것이라 많은 땅을 가진 권문세족들의 큰 반발을 샀어요.

개혁의 동지였던 조준은 정도전의 생각을 수정하여 개혁안을 제안하였어요. 개혁의 핵심은 권문세족이 농민들에게 불법으로 빼앗은 땅이나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를 다시 돌려받는 것이었어요. 돌려받은 땅은 이전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리고 관리들에게 세금을 받을 권리를 다시 나누어 주어 제도를 정비하고자 했어요.

이성계는 결국 정도전과 조준의 생각을 받아들였어요. 정몽주도 토지 개혁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였어요.

“모든 땅문서들을 모아놓고 불살라 버리거라!”

<토지 대장을 불태우는 정몽주와 정도전>   

모든 토지 대장을 불태우고, 1391년에 과전법이 시행되었어요. 자기 땅을 되찾아 농사짓는 농민들이 늘고, 농사지을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되었지요. 세금 부담도 줄어들었기에 농민들은 크게 환영했어요. 세금도 제대로 걷혀 나라 살림도 이전보다 좋아졌어요.

이성계와 다른 길을 가다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를 개혁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했어요. 이런 인물 중에는 정몽주의 스승이었던 이색도 있었어요. 토지 개혁 이후 정몽주는 이성계의 이러한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어요.

“고려의 운이 다한 듯하오. 포은(정몽주)과 삼봉(정도전)이 나의 좌우를 받쳐 준다면 그대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 볼 수 있을 터인데…”

“포은께서 말씀하신 백성이 근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두 분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 땅에 고려 외에 다른 나라는 있을 수 없소이다.”

정몽주는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이성계나 정도전의 생각과는 달랐어요. 정몽주는 고려를 개혁해 바른길로 나아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죠. 충실한 성리학자였던 정몽주에게 반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정변을 준비하는 이성계를 정몽주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정몽주는 공양왕과 은밀히 반격할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 기회가 왔어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긴 거예요. 정몽주는 이성계가 없는 틈을 이용해 공양왕과 함께 정도전을 비롯한 이성계를 따르는 사람들을 체포해 귀양을 보내 버렸죠. 그리고 이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임금에게 요구했어요. 물론 이성계를 죽일 계획도 세웠어요.

<정몽주에 의해 귀양 가는 정도전>   

고려와 마지막을 함께 하다

이성계는 정몽주의 재능을 크게 아꼈어요.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정몽주가 귀양을 보내자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포은 선생님! 이런 세상인들 저런 세상인들 무엇이 중요합니까? 백성들이 평안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이보게 방원,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은 고려뿐이네.”

대화를 나눈 이방원은 정몽주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또한 아버지 이성계의 앞길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했어요. 이방원은 부하들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던 정몽주를 기다리게 했어요. 결국 정몽주는 이방원이 보낸 부하의 공격을 받고 죽고 말았어요.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곳이 선죽교였다고 해요.

고려는 마지막 충신 정몽주를 잃었어요. 정몽주가 죽자 이성계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결국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였어요(1392년).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을 두려워해 나라 이름을 얼마간 고려로 유지했어요. 그러다가 그 다음해 초 나라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었어요. 이로써 고려는 태조 왕건이 건국한 지 약 500여 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어요.

고려 말기의 혼란을 이성계는 정변으로 해결하고자 했어요. 정몽주는 이성계와는 다른 생각을 했지요. 정몽주는 왜 기울어가는 고려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을까요? 정몽주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고려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생각해 보아요.

<정몽주의 묘(경기 용인시)>   

[집필자] 신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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