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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북벌을 준비하다

<효종대왕릉(경기 여주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이대로 청에 끌려가면 언제 다시 조선으로 올꼬”

“내 비록 지금은 청에 끌려가지만, 언젠가 힘을 길러 반드시 이 치욕을 갚고 말리라”

이들은 왜 청에 끌려가게 된 걸까요? 이들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친한 형제,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

조선은 인조 때 청의 침입을 받았어요. 이 사건을 병자호란이라고 해요. 병자년에 오랑캐인 청이 쳐들어 와 벌어진 전쟁이란 뜻이에요. 조선은 막강한 청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버티며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그만 항복하고 말았어요.

이때 항복의 조건에 따라 인조의 아들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볼모로 끌려갔어요. 이들은 청에서 갖은 고생과 치욕을 겪었어요.

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소현세자는 청에 들어와 있던 앞선 서양 문물과 과학기술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청의 왕족과 관리들과 친하게 지냈지요. 심지어 청에 와 있던 서양 선교사와도 교류하면서 천주교나 서양의 과학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소현세자는 전쟁보다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청의 서양 선교사와 서양 문물>   

이에 반해 봉림대군은 형인 소현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청에 당한 치욕을 생각하며 복수의 날만을 기다렸죠.

“보게나. 이제 청은 더 이상 무시할 오랑캐가 아니네. 조선도 청의 장점을 하루 빨리 배워야 해!”

“흑!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청에 당한 병자호란의 수모를 잊었습니까? 힘을 길러 청에 복수해야합니다.”

이렇듯 청에 볼모로 잡혀있는 동안 두 형제는 서로 의지하며 친하게 지냈지만, 청에 대한 생각은 너무도 달랐어요.

뜻 밖에 왕위에 오른 효종, 북벌을 준비하다

1645년 소현 세자는 8년의 볼모 생활을 접고 먼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청이 명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하자 더 이상 조선의 세자를 붙잡아 둘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소현세자는 그리운 고국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조선은 아직도 청에 당한 치욕에 복수하고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세자가 원수 같은 청과 친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낯설고 이상한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에요. 아버지 인조나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소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소현세자는 갑자기 죽었고, 뒤를 이어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었어요. 조선의 일반적인 예법에 따르면 세자가 죽으면 세자의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지요. 하지만 인조는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였어요. 이 사람이 바로 효종 임금이에요.

효종은 즉위 후 바로 청에 복수하는 것을 최고의 과제로 삼았어요. 북쪽의 청을 정벌하자고 해서 이를 ‘북벌’이라 하죠.

효종은 그와 뜻을 같이 할 신하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청과 친하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을 내쫓고, 청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등용하였지요.

<북벌을 준비하는 효종>   

효종은 북벌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어요. 무엇보다 허약해진 군사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였죠. 변경의 허물어진 성들을 고쳐 나갔고, 무기들도 새로 수리하거나 만들었어요. 군대의 규모를 늘렸고, 군사 훈련에도 힘썼지요.

효종이 북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조총부대를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조총은 임진왜란 때 그 위력이 입증된 무기죠. 효종은 북벌을 위해 우수한 신무기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이에 조총이 적합한 무기라 판단했지요.

때마침 『하멜표류기』를 써서 유명해진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해 있었어요. 그리고 이미 조선인으로 살고 있는 벨테브레(조선 이름 박연)라고 하는 서양인이 있었어요.

효종은 이들에게 더욱 정교한 서양식 조총과 대포를 만들도록 하는가 하면, 무기 사용법도 가르치고 군사 훈련도 맡게 하였어요. 이들 덕에 효종은 군대를 강하게 키울 수 있었고, 우수한 조총군을 양성할 수 있게 되었어요.

북벌의 시험대, 나선정벌

“듣자니 조선에 조총군이 있다던데, 우리 청을 도와 러시아군을 쫓아내 주시오.”

어느 날 청에서 조선의 조총군을 보내 달라고 하였어요. 당시 러시아군이 자주 청의 변경을 침입했는데, 총포로 무장한 러시아군에 번번이 패했거든요. 효종은 고민했어요.

“북벌을 준비하고 있는데... 청을 도와야 하다니. 이거 거절할 수도 없고. 그래 이참에 우리 조총군의 실력도 시험해 보고 국제 정세도 살펴보자.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효종은 청으로 조총군을 파병하였어요. 조선의 조총군은 청과 함께 러시아군과 맞서 싸웠어요.

“우리는 조선의 조총군이다.”

“탕 탕 탕~”

“헉, 언제 청에 조총군이 생겼지? 으악! 도망가자~”

<조선의 조총군과 효종>   

조선의 조총군은 기대 이상으로 활약을 하였고, 이에 러시아군은 패해 달아나 버렸어요.

조선의 승리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운 이는 효종이었죠.

“음~ 북벌을 준비한 보람이 있어. 조선의 조총군, 자랑스럽다!”

몇 해 뒤 러시아군이 다시 청을 침입하자, 청은 또다시 조선에 조총군의 지원을 요청하였어요. 이때도 북벌을 위해 잘 훈련되었던 조선의 조총군은 청으로 출병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지요.

이 사건은 러시아군을 물리친 싸움이라 해서 ‘나선정벌’이라 불러요. 나선은 러시아를 가리키는 한자말이에요. 효종은 조선군이 나선정벌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자 북벌에 자신감을 갖고 더욱 강하게 자신의 뜻을 펼쳤어요.

<조선군의 원정로>   

날아 가버린 북벌의 꿈

“전국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힘들어 하는데, 왕은 북벌에만 매달려 백성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 있구나.”

“더구나 청이란 나라가 그리 만만한 나라입니까? 강대국이에요. 섣불리 나섰다가 자칫 우리가 망할 수 있어요.”

효종의 북벌 계획은 무르익어 갔지만 북벌은 무리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어요. 당시 조선은 두 번의 큰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어려웠어요. 게다가 잇따른 자연재해에 나라의 재정도 말이 아니었죠. 더구나 일부 대신들은 현실적으로 당시 가장 강한 나라인 청을 정벌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죠.

그럼에도 효종은 북벌의 뜻을 굽히지 않고 추진해 나갔지요. 하지만 1659년 효종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41세의 아직은 젊은 나이였지요. 자연 효종이 추진한 북벌의 꿈도 서서히 힘을 잃어 갔어요.

만약 효종이 일찍 죽지 않고 북벌을 실행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 상황에서 효종의 북벌은 옳은 판단이었을까요?

[집필자] 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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